유니버설발레단 '라 바야데르' 리뷰
(서울=연합뉴스) 임수정 기자 = 발레 '라 바야데르'의 백미로는 3막 '망령들의 왕국' 도입부 부분이 꼽힌다. 새하얀 튀튀(발레 스커트)를 입은 32명의 발레리나가 아라베스크(한쪽 다리를 뒤로 90도 들어 올리는 자세) 동작을 반복하며 가파른 언덕을 내려오는 장면은 발레 역사상 최고의 군무 중 하나로 꼽힌다.
그러나 지난 1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개막한 유니버설발레단의 '라 바야데르'에서는 유독 한 사람의 몸짓이 객석에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13년 만에 내한한 러시아 볼쇼이발레단 수석무용수 스베틀라나 자하로바(39)가 그 주인공.
자하로바는 마치 발레 교본에서 튀어나오는 듯한 아름다운 몸 곡선과 서정적 표현으로 객석의 탄성을 자아냈다.
173㎝의 큰 키, 기이하게 느껴질 정도로 긴 팔다리, 쏙 들어간 무릎에 부드럽게 튀어나온 발등, 작은 얼굴은 이상적인 발레리나를 그린 한 폭의 '명화'처럼 다가왔다.
1996년 마린스키발레단에 입단한 이후 볼쇼이발레단과 라 스칼라 발레단 등을 거치며 20년 넘게 세계 최정상 발레리나로 활동한 그는 무용계 최고 권위의 '브누아 드 라 당스(Benois de la Danse)' 최고 무용수상을 두 차례(2005·2015년)나 수상한 바 있다.
그는 이날 인도의 힌두사원을 배경으로 아름다운 무희(舞姬) '니키아' 역을 연기하며 전사(戰士) 솔로르와의 신분을 초월한 사랑을 연기했다.
그는 사랑에 배신당한 니키아의 좌절과 분노, 슬픔의 감정을 서정적이면서도 우아하게 표현했다.
명료한 테크닉과 비현실적으로 매끈한 신체 라인이 워낙 강조되다 보니 2막의 하이라이트인 솔로르의 약혼자 감자티 공주와의 팽팽한 신경전은 다소 재미가 덜 살아났다.
감정을 극적으로 드러내는 표현력보다는 테크닉과 우아함에 훨씬 큰 강점이 있는 무용수였다.
이 때문에 니키아와 솔로르, 감자티의 삼각관계와 복수극이 끝나고 펼쳐지는 3막에서 자하로바는 단순한 화해와 용서 차원을 넘어서는 아름다움을 펼쳐냈다. 클래식 발레의 정석이라 할 만한 테크닉과 조형미가 일품이었다.
현실에서 못다 이룬 사랑을 스카프로 연결하는 장면에서는 아름답고 깊은 몽환이 느껴졌다.
이날 자하로바와 함께 호흡을 맞춘 볼쇼이발레단 수석무용수 데니스 로드킨(27)은 자하로바만큼 유명세를 자랑하는 발레리노는 아니지만 화려한 테크닉과 수려한 외모로 박수갈채를 받았다.
UBC 단원들도 전반적으로 안정적인 연기로 인도 사원과 왕궁을 배경으로 한 이국적 화려함을 잘 보여줬다. 원색의 인도풍 옷을 입은 채 부채춤과 물동이춤, 앵무새춤, 전사들의 북춤 등을 무리 없이 소화했다.
특히 질투에 눈이 먼 감자티 역의 강미선은 UBC 간판다운 연기를 선보였고, 온몸에 황금 칠을 한 황금 신상(神像)의 강민우 역시 에너지 넘치는 무대를 선보여 큰 박수를 받았다.
공연은 오는 4일까지 이어진다. 자하로바와 로드킨은 마지막 날 공연에 한 번 더 출연한다.
sj997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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