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등의결권 등 상장 개혁, 홍콩거래소 'IPO 세계 1위' 이끌어"

입력 2018-11-05 07:00  

"차등의결권 등 상장 개혁, 홍콩거래소 'IPO 세계 1위' 이끌어"
유태석 홍콩거래소 전무 "거래소 경쟁력은 시장과 끊임없는 대화서 나와"
'적자기업 상장' 허용으로 바이오기업 상장 봇물…"韓 기업도 추진"



(홍콩=연합뉴스) 안승섭 특파원 = "홍콩거래소는 뉴욕증권거래소(NYSE)를 제치고 올해 기업공개(IPO) 시장에서 세계 1위를 차지했습니다. 그 비결은 시장과의 끊임없는 대화를 통한 상장 제도 개혁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유태석 홍콩거래소 전무는 5일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홍콩거래소의 경쟁력 비결을 묻는 말에 이같이 답했다.
지난해 1분기 세계 IPO 시장에서 4위까지 밀려났던 홍콩거래소는 올해 들어 9월까지 84개 기업, 286억달러(약 32조원) 규모의 상장에 성공해 세계 IPO 시장에서 '왕좌'를 차지했다.
같은 기간 뉴욕증권거래소의 신규 상장 기업 수는 48개에 그쳤고, 자금조달액 역시 251억달러로 홍콩에 뒤졌다.
유 전무는 "2014년 알리바바 상장을 뉴욕에 뺏긴 후 홍콩거래소는 절치부심하며 상장 제도 개혁을 위해 노력해왔다"며 "차등의결권 허용, 적자기업 상장 허용 등 올해 들어 이뤄진 개혁이 그 노력의 산물"이라고 설명했다.
차등의결권은 1개 주식마다 1개 의결권을 주는 것이 아니라, 특정 주식에 많은 수의 의결권을 부여해 대주주의 지배권을 강화하는 제도다.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맞선 기업의 경영권 방어수단으로 꼽힌다.
미국은 적대적 인수·합병이 만연했던 1980년대 이후 많은 기업의 요구로 차등의결권 제도를 1994년 도입했다. 그 덕분에 뉴욕증권거래소는 구글, 페이스북, 알리바바 등 많은 혁신기업을 유치할 수 있었다.
홍콩거래소는 30년 만의 상장 제도 개혁을 통해 올해 4월 차등의결권을 도입했다. 그 결과 올해 세계 IPO 시장에서 가장 주목받았던 중국 IT기업 샤오미(小米)의 상장 유치에 성공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도 벤처기업의 원활한 자금조달을 위해 차등의결권을 도입하는 내용의 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다.
신사업 개발과 기획을 맡고 있어 차등의결권 도입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 유 전무는 상장 제도 개혁의 성공을 위해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시장과의 끊임없는 대화'를 꼽았다.
유 전무는 "상장 제도 개혁을 위해 지난해 8월부터 4개월 동안 미국, 유럽, 아시아 등 세계 각국의 기관투자가와 시장 참여자들을 직접 만나 개혁 구상을 설명하고 그들의 피드백을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이어 "이 같은 적극적인 대화 노력이 있었기에 시장 참여자들이 홍콩거래소의 상장 제도 개혁을 전폭적으로 지지했던 것이며, 제도 개혁이 적용된 바로 다음 날 샤오미가 상장을 신청하는 성과를 끌어낼 수 있었다"고 밝혔다.



홍콩거래소가 올해 세계 IPO 시장에서 1위를 차지할 수 있었던 또 다른 배경으로는 적자기업의 상장 허용이라는 과감한 개혁 조치가 꼽힌다.
통상 기업이 거래소에 상장하기 위해서는 매출, 순이익, 현금흐름 등 엄격한 요구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그래야 투자자들이 분식회계 등의 피해를 보지 않고 안심하고 상장기업에 투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홍콩거래소는 올해 상장 개혁에서 아직 매출이나 수익이 발생하지 않은 바이오기업도 상장할 수 있도록 규정을 바꿨다.
유 전무는 "바이오 산업은 미래 성장산업 중에서도 가장 유망하다고 여기는 산업"이라며 "바이오기업 성장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신약 개발 초기단계에서 대규모 자금을 지원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바이오기업이 신약 개발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동물실험에 이어 임상시험을 성공리에 마쳐야 한다. 임상시험은 개발 중인 약의 효과와 안전성을 알아보기 위해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시험을 말한다.
여기에는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지만, 신약을 개발 중인 바이오기업은 매출이나 수익이 발생하지 않아 상장을 통한 자금 조달이 어렵다.
만약 적자 바이오기업의 상장이 허용된다면 이들은 임상시험에 필요한 자금을 조기에 확보할 수 있어 신약 개발의 성공 가능성이 훨씬 더 커지게 된다.
유 전무는 "상장을 통해 자금을 확보한 바이오기업이 신약 개발에 성공한다면 홍콩거래소로서는 결과적으로 유망 성장기업을 조기에 확보한 것이 된다"며 "이러한 취지로 적자 바이오기업의 상장을 허용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대신 부실기업 상장이라는 위험을 차단하기 위해 적자 바이오기업의 상장은 전문 위원회의 엄격한 심사 등을 거쳐야 한다.
그는 "적자기업 상장이 쉽지 않은 한국의 바이오기업들도 홍콩거래소 상장을 탐색하고 있다"며 "홍콩거래소 상장에 성공하면 거대한 중국 시장 공략도 수월해져 한국 바이오기업들의 관심이 많다"고 전했다.
홍콩거래소는 이 같은 상장 제도 개혁을 통해 올해 중국 최대 통신인프라기업 차이나타워(China Tower·중국철탑), 스마트폰 제조업체 샤오미, 중국 온라인 음식 배달업체 메이투안디엔핑(美團点評) 등 굵직굵직한 기업의 상장에 성공했다.
적자 바이오기업의 상장도 벌써 5건이나 이뤄졌다. 내년에 상장을 준비하는 적자 바이오기업은 무려 25곳에 달한다.
유 전무는 "2014년 후강퉁, 2016년 선강퉁, 지난해 채권퉁을 도입하는 등 홍콩거래소는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고자 항상 노력하고 있다"며 "거래소의 경쟁력 유지는 시장과의 대화를 통한 끊임없는 혁신 노력에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들 제도는 중국 본토와 홍콩의 거래소를 연결해 두 지역의 주식 및 채권을 상호 거래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후강퉁은 상하이와 홍콩 증시 간, 선강퉁은 선전과 홍콩 증시 간 교차 매매를 허용한다. 채권퉁은 중국과 홍콩 간 채권의 상호 거래를 가능케 한다.
유 전무는 세계 최대 상품 거래소인 시카고상품거래소(CME)에서 14년간 재직하면서 아시아 사업 개발을 책임지는 자리에까지 올랐다.
2011년 홍콩거래소로 옮긴 후 기획과 신사업 개발을 맡으면서 후강퉁, 선강퉁, 채권퉁 등의 도입과 상장 제도 개혁 등 홍콩거래소의 혁신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ssah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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