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회 런던한국영화제 개막…전고운 감독, 관객들과 만나
(런던=연합뉴스) 박대한 특파원 = 전고운 감독의 데뷔작 '소공녀'는 집주인이 월세를 올리자 망설임 없이 집을 포기하고 친구들을 찾아다니는 '미소'가 주인공이다.
대학을 중퇴한 뒤 일당 4만5천원의 가사도우미 일을 하는 미소는 집은 쉽게 포기하지만, 자신이 사랑하는 위스키와 담배는 끝까지 버리지 못한다.
월세방을 뺀 미소는 대학 시절 함께 했던 밴드 멤버들의 집을 차례로 돌아다니며 잠자리를 구한다.
하룻밤 재워달라는 미소의 요청을 거절하는 멤버, 좁은 집에서 시댁 식구와 함께 힘든 결혼생활을 하는 멤버, 20년 만기 대출을 받아 아파트를 마련했지만 아내와 이혼하게 된 멤버, 호화로운 단독 주택에 살지만 남편에게 자신의 대학 시절을 숨기고 사는 멤버 등등 한국 사회의 다양한 주거 형태만큼이나 멤버들의 인생도 갈라져 있다.
지난 1일(현지시간) 런던 피카딜리 서커스 인근 영화관인 픽처하우스센트럴에서 개막한 제13회 런던한국영화제.
청년 주거문제 등을 다룬 '소공녀'는 이날 개막작으로 선정돼 300여명의 영국 관객들을 만났다.
'소공녀'는 최근 뉴욕아시아영화제에서 '타이거 언케이지드 최우수 장편 영화상'을 받았고, 전 감독은 대종상영화제에서 신인감독상을 수상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부동산 가격이 비싼 도시인 런던에 살기 때문일까. 이날 영화 관객들은 '소공녀'의 주제의식에 깊은 공감을 나타냈다.
영화가 끝났을 때는 일제히 박수를 치며 만족감을 표시하기도 했다.
영화 상영 뒤 관객들을 만난 전 감독에게도 찬사가 이어졌다.
전 감독은 영화 주인공 캐릭터 탄생 배경을 묻는 말에 "나 자신이 서울의 비싼 집값으로 많은 취향을 포기해야 했다"면서 "담배를 피우고 위스키를 마시기 위해, 즉 취향을 위해 집을 포기하는 (나와) 반대되는 인물을 그리고 싶었다. 그렇게 주인공인 '미소'가 탄생했다"고 설명했다.
전 감독은 "보통 집은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요소로 생각되는데 너무 비싸다 보니 방 한 칸을 위해 포기하는 게 많다"면서 "욕망을 버리면 많이 심플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전 감독은 "런던에서는 일상일 수 있지만 한국에서 위스키는 그리 일반적이지 않은 사치스러운 술이다. 술과 담배를 하는 여성에 대한 이미지도 부정적이다. 이들에게 바치는 영화"라고 말했다.
한 영국 관객은 런던에서도 비싼 주택가격 때문에 도시를 떠나는 젊은이들이 늘어나고 있다며, 서울이 전 감독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물었다.
전 감독은 "영화를 만들면서 서울의 의미를 계속 생각했는데, 애증의 공간인 것 같다. 시골에서 자라 서울에서 사는 것이 꿈이었는데, 막상 서울의 집값 등은 충격적이었다"면서 "혐오스러운 곳이지만 청춘을 흩뿌린 곳이라 아직은 사랑하는 것 같다. 버릴 수가 없다"고 말했다.
올해 런던한국영화제에서는 '일상의 조각'(A Slice of Everyday Life)을 주제로 55편의 한국영화가 시네마 나우, 인디영화, 여성영화, 고전영화, 애니메이션 등 7개 부문별로 나뉘어 소개된다.
올해 영화제는 오는 13일 런던에서 폐막작을 상영한 뒤 노팅엄, 셰필드, 글라스고, 맨체스터, 벨파스트, 에든버러 등 6개 도시에서 순회 상영을 할 예정이다.
pdhis9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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