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선친이 보유했던 주식을 상속받아 그룹 지주회사인 ㈜LG의 최대 주주가 됐다. 장남인 구 회장과 두 딸인 연경·연수 씨가 낼 상속세는 9천억원 이상 될 것이라고 한다. 상속세로는 역대 최대 규모다. LG는 성실 납세를 약속했다. 재벌가가 주식 지분을 상속하면서 법정 세율에 따라 곧이곧대로 상속세를 납부하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흔치 않은 일이다. 이 때문에 구 회장의 거액 상속세 납부는 세간의 주목거리다.
구 회장은 상속세 부담을 줄이기 위해 일부 지분을 공익재단에 출연하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있었으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공익재단이 경영권 유지와 승계에 악용되는 사례가 적지 않은 만큼 바람직한 결정이라 하겠다. 편법·불법 상속은 한국 재벌이 비판받는 문제 중 하나다. 대기업 집단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역할,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할 때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할 개혁 과제 중 하나다.
한국 대표 기업인 삼성그룹조차 지분과 경영권 대물림에 관한 한 유구무언 처지다. 2세인 이건희 회장은 그룹을 물려받으면서 불과 70억 원의 상속세를 납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아들인 이재용 부회장은 아버지에게 증여받은 61억원을 종잣돈으로 삼아 전환사채 헐값 배정 등의 방법으로 그룹 경영권을 확보했다. 이는 큰 물의를 빚었으나 편법 승계 시도는 거기서도 끝나지 않았다. 이 부회장의 그룹 지배력 강화를 위한 것으로 보이는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은 최순실 국정농단과 연결됐다. 외국 펀드는 이 합병 때문에 손해를 봤다며 정부에 수천억 원대의 소송을 제기하는 등 후폭풍은 끝나지 않고 있다.
고 정주영 현대 회장 유족은 고작 300억원가량을 상속세로 신고한 바 있고, 현대차 그룹의 3세 경영인 정의선 부회장도 편법 승계 의혹에서 예외가 되지 못한다. 물론 과거의 상속액을 지금 기준으로 판단할 수 없지만, 그동안 재벌가 상속세가 상식을 벗어난 수준이었던 게 사실이다.
재벌이나 대기업의 성실 상속·증여세 납부 사례가 없지는 않다. 2003년 타개한 신용호 교보생명 창립자 유족은 1천830억 원대의 상속세를 냈다. 지난해 세상을 떠난 이수영 OCI 회장의 장남인 이우현 사장은 1천450억원을 납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함영준 오뚜기 회장은 2016년 함태호 명예회장이 별세하자 1천500억 원대의 상속세를 5년 분할 납부하기로 했다. 신세계그룹 오너 일가는 2007년 증여세로 시가 3천500억원에 해당하는 주식을 현물로 납부했다.
재계 일각에서는 상속세 부담 때문에 경영권을 물려받을 수 없다며 부담 완화를 주장한다. 중소기업주들이 법정 세율의 상속세를 납부하는 상황에서 재벌과 대기업 상속세를 줄이는 것은 형평에 맞지 않는다. 재벌가 후손이 경영권을 물려받아야 한다는 생각부터가 글로벌스탠더드에 맞지 않고 옳지 못하다. 경영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재벌 3, 4세의 경영권 승계는 한국 주요 기업들의 안정성을 해치는 위험요인이기도 하다. LG의 투명하고 성실한 상속세 납부가 재계에 새로운 전통을 세우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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