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천여명 차 얻어 타고 수도 멕시코시티 진입…시 당국, 5천명 수용 준비 마쳐
1차 캐러밴 후발 무리 합류 기다린 뒤 투표 거쳐 향후 진로 결정 방침
(푸에블라[멕시코]=연합뉴스) 국기헌 특파원 = 퉁퉁 부은 발, 걸을 때마다 욱신거리는 물집, 끊이질 않는 기침….
5일(현지시간) 멕시코 동부 베라크루스 주 코르도바에서 중부 푸에블라 주의 주도인 푸에블라로 향하는 고속도로.
이곳을 지나는 중미 출신 이민자 행렬(캐러밴·Caravan)한테서 3주가 넘는 고된 강행군과 풍찬노숙 탓에 안게 된 생채기와 아픔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살갗을 따갑게 파고드는 땡볕 속에 1차 캐러밴을 실은 트레일러와 트럭이 간간이 눈에 띄었다.
이민자들은 이날 도보 대신 지나가는 자동차를 얻어 타는, 이른바 '히치하이크'를 하려고 여러 고속도로 요금소에서 장사진을 이뤘다.
운전자들이 고속도로 이용료를 내려고 속도를 줄이는 지점에서 간절한 눈빛으로 무료 탑승을 호소했다.
캐러밴을 돕는 가톨릭 구호단체에서 일하는 수녀들과 시민단체 자원봉사자들도 수건을 흔들며 도움을 청했다.
해가 떠 있는 동안 코르도바에서 수도 멕시코시티까지 장장 286㎞를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다.
이날 이동 거리는 1차 캐러밴이 지난달 19일 멕시코에 진입한 이후 최장거리다.
이동 경로 중간에 해발 3천∼5천m에 달하는 여러 산이 있어 걸어서는 도저히 해가 질 때까지 목적지에 도달할 수가 없다.
운 좋게 트레일러와 트럭에 올라탄 이민자들은 피로가 누적된 탓에 초췌한 모습이었다.
자신들의 희망과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사연을 토로하는 눈빛에는 절박함이 가득했다.
같은 처지의 이민자 30여 명과 함께 고속도로 갓길에서 트레일러가 출발하기를 기다리던 루이스 보니야(38)는 가난과 정치 위기, 갱단의 살인 위협 등을 피해 식솔 4명과 함께 지난달 12일 온두라스의 산 페드로 술라 시를 출발했다.
고국에서 전기공 일을 했던 보니야는 "우리는 단순한 이민자들이 아니다"라며 "고국의 암울한 현실을 벗어나려고 도망친 사람들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의 목표는 (미국을 향해) 계속 가는 것이다. 우리는 살기 위해 멈추지 않겠다"며 "캐러밴을 향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엄포는 사지로 내몰린 사람들에게 '그냥 죽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고 비판했다.
캐러밴은 세계에서 가장 살인율이 높은 온두라스를 비롯해 엘살바도르, 과테말라 등 중미 국가에서 폭력과 마약범죄, 가난을 피해 고국을 떠나 도보나 차량으로 미국을 향해 이동하는 이민자 행렬을 가리킨다.
미국으로 망명해 일자리를 얻고 자녀들이 더 나은 교육 등 밝은 미래를 꿈꾸며 살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다.
캐러밴은 최근 수년 사이 정기적으로 결성돼 세간의 주목을 받지 않은 채 미국 국경으로 향했다.
그러나 올해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반갑지 않은' 관심 탓에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시민단체 '인권을 위한 연합 네트워크'에 소속된 오스카르 에스피노(38)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지키려고 행동에 나섰다. 더는 말이 필요 없다"며 자원봉사에 나선 배경을 설명했다.
캐러밴의 입국을 막기 위해 남부 국경에 현역 군인을 배치하도록 지시하는 등 이민자 문제를 중간선거의 쟁점으로 연일 부각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대한 쓴소리도 잊지 않았다.
에스피노는 "(캐러밴에 범죄자가 포함돼 있다고 주장하는) 트럼프 대통령 자체가 범죄자 같은 말을 하고 있다"며 "캐러밴이 형성되는 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자국 이기주의적인 정책 탓"이라고 목청을 높였다.
3천여 명의 1차 캐러밴은 미국의 중간선거 전날인 이날 멕시코시티에 있는 헤수스 마르티네스 경기장에 도착해 짐을 풀었다.
일부는 성지 순례지인 과달루페 성당에 들러 지금까지 자신들을 무사하게 지켜 준 성모 마리아에게 감사 기도를 올렸다.
앞서 전날 1차 캐러밴 본진보다 속도를 낸 먼저 경기장에 도착한 선발대 1천여 명은 모처럼 주어진 한가로운 여유를 즐기는 모습이었다.
선발대는 이날 급식을 받아먹으며 휴식을 취하고, 물집 등 발 부상과 질병 치료를 위해 의료 봉사단이 세워놓은 텐트를 찾았다.
고단한 강행군에 징징대던 아이들은 경기장 부속 시설로 외곽에 세워진 놀이터에서 미끄럼틀을 타고 숨바꼭질을 하며 해맑게 웃었다.
남편, 5명의 딸과 함께 고향 온두라스 산 페드로 술라를 떠난 로사 레이예스(28)는 생후 9개월 된 막내딸의 고열에 발을 동동 굴렀다.
그는 의료 봉사에 나선 수녀들에게 도움을 요청, 막내딸에게 해열제와 항생제를 먹이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멕시코시티 인권 당국은 최대 5천 명에 이르는 캐러밴을 수용할 준비를 마쳤다.
1차 캐러밴은 현재로선 멕시코시티에 당분간 머물며 자신들과 같은 경로를 따라 북상 중인 2ㆍ3차 캐러밴을 기다린 뒤 투표를 거쳐 차기 경로를 정할 방침이다.
멕시코 내무부에 따르면 전날 기준으로 모두 5천 명이 넘는 캐러밴과 소규모 이민자 무리가 중남부 지역에서 이동 중이다. 지금까지 3천230명이 멕시코 정부에 망명 신청을 했으며 약 500명은 고국으로 돌아가기 위한 도움을 요청했다.
penpia21@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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