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석ㆍ정일, '마랑' 실체, 43년만에 풀어
"4세기 무렵 신라에 바둑 전래…신라 해양교류 가능성 커"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경주 황남대총 남분에서 출토한 칠기에 적힌 명문인 '마랑'(馬朗)의 실체를 알려주는 획기적 연구 결과가 고분 발굴 43년 만에 나왔다.
이 칠기는 중국에서 제작했다는 사실이 확인됐지만, 칠기 바닥에 새긴 글자가 도대체 무엇인지 파악되지 않아 학계에서 오랫동안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신라고고학을 전공한 이은석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해양유물연구과장과 정일 목포대 중국언어와문화학과 교수는 "마랑은 3∼4세기대 중국 서진(西晉·266∼316) 시기에 활약한 바둑 최고수로 바둑 성인인 '기성'(棋聖)이라는 칭호를 얻은 인물"이라고 7일 말했다.
중앙문화재연구원이 발간하는 학술지 '중앙고고연구' 최신호에 게재한 논문에서 두 사람은 "5세기 초중반에 조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신라 고분에서 중국 기성 이름을 적은 칠기가 나온 점으로 미뤄 서진 바둑문화가 4세기 무렵 신라왕조에 전해졌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고 강조했다.
마랑에 대한 단서는 중국 사상가 갈홍(葛洪·284∼363)이 저술한 '포박자'(抱朴子)에 있는 문장인 "마랑은 자가 수명(綏明)이며, 바둑 기술에서 적수가 없으니 기성(棋聖)이라는 칭호가 있다"(馬朗,字綏明,圍棋藝無敵,有棋聖之稱)에서 잡혔다.
정 교수는 "마수명(馬綏明), 즉 마랑이 기성이었다는 사실은 다른 문헌에서도 확인된다"며 송나라 학자인 정초(鄭樵·1104∼1162)가 펴낸 '통지'(通志)에 나오는 "원강(元康) 연간(291∼299)에 조왕 (사마)륜의 사인(舍人·개인 저택 관리인)인 마랑이 '위기세'(圍棋勢) 29권을 편찬했다"는 대목을 주목했다.
그는 "조왕 사마륜은 반란을 일으켰다가 301년에 죽었고, 그를 따른 많은 사람도 목숨을 잃었을 것"이라며 "마랑도 이때 반역에 연루돼 주살되고 바둑 전문서 위기세도 소실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정 교수와 이 과장은 "마랑은 서진 때 실존했고 바둑 서적 29권을 기술할 만큼 바둑 실력이 뛰어났으며, 마랑명 칠기는 마랑이 전성기였던 290년대에 제작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
그런데 황남대총 남분 주곽(主槨·으뜸덧널) 청동시루에서는 마랑명 칠기와 크기가 동일하고 똑같이 화염무늬가 있는 또 다른 칠기 한 점이 나왔는데, 이 칠기에는 글자가 없었다. 두 칠기는 지름 9㎝, 높이 4㎝로 추정된다.
이에 대해 이 과장은 "두 칠기는 바둑돌을 넣는 통이었다"며 "기성인 마랑의 기운을 받고자 하는 사람이 마랑명 칠기를 쓰고, 상대는 이름이 없는 칠기에 바둑돌을 담았다고 본다"고 말했다.
황남대총 남분에서 나온 소형 자갈 243개는 마랑명 칠기가 바둑돌을 담는 통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한다.
굽다리접시에 담긴 채로 출토된 자갈은 직경 1∼2㎝, 두께 0.3∼0.7㎝이며 색상은 검은색, 회색, 흰색이다.
이 과장은 "자갈은 검은색이나 흰색으로 칠했을 확률이 높다"며 "고분 내 환경적 요인으로 칠이 벗겨졌거나 발굴 이후 세척 과정에서 칠이 지워졌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삼국이 중국과 바둑으로 교류했다면 마랑이라는 명문이 있는 최고급 칠기는 신라 상류층이 소장하고 싶어 했을 물건"이라며 "신라에도 중국 칠제품이 유입돼 문화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고 판단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이 과장은 마랑의 실체가 기성으로 확인됨에 따라 여러 가지 추론이 가능해졌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금까지는 학계에서 신라가 백제만큼 중국과 통교하지 않았고, 주로 북방 실크로드를 통해 문화를 받아들였다고 봤다"며 "오키나와산 조개와 마랑명 칠기를 통해 신라가 남쪽 해로로도 다른 나라와 활발히 교류했음이 차츰 드러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피장자가 여자로 추정되는 황남대총 북분에서는 바둑돌이 나오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하고 "바둑을 남자들의 전유물로 볼 수 있고, 그와 관련된 유물이 무덤에도 부장되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과장은 마랑의 실체 규명으로도 황남대총 남분 피장자가 402년 사망한 내물왕인지, 458년 세상을 떠난 눌지왕인지 알기는 어렵다면서도 "마랑은 신라문화와 서진문화를 연결하는 매개체였음이 틀림없다"고 결론지었다.
psh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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