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으로 관객 유인해 복잡한 대화로 이끄는 것이 목표"

입력 2018-11-08 06:00  

"아름다움으로 관객 유인해 복잡한 대화로 이끄는 것이 목표"
영국 유명 미술가 리엄 길릭, 갤러리바톤 개인전 '새로운 샘들이…"
오브제·텍스트 병렬한 작업 전시…"소비 아닌, 생산의 조건에 주목"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모든 것은 불협화음으로 유지돼야 한다' '어떠한 사람들은 더 이주해야 한다' '공간을 낭비하는 것은 장려돼야 한다' '유니콘이 곧 출몰할 것 같은 느낌이 있어야 한다'…….
종잡을 수 없는 문구 정체는 미술가 리엄 길릭(54)이 미국 뉴욕 컬럼비아대 학생들과 '가상의 학교를 설립하기에 이상적인 조건'을 토론하며 얻은 결과물들이다.
실없이 주고받은 말 같지만, 다시 보면 학교가 창의력, 관대함, 개방성, 순수함, 포용성 등을 품어야 한다는 학생들 생각을 읽을 수 있다. 이들은 학교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조건들이다. "이 문장들은 여타 개정된 제도권에 적용될 수 있는 집단 갈망을 담은 성명서이기도 하다."(갤러리바톤)
최근 서울 강남구 압구정에서 용산구 한남동으로 이전한 갤러리바톤의 첫 전시 '새로운 샘들이 솟아나야 한다'는 이를 바탕으로 한 길릭 작업을 소개하는 자리다.
영국 출신인 길릭은 동시대 미술을 논할 때 반드시 언급되는 작가다. 1980년대 후반 이후 영국 현대미술 부흥기를 주도한 이른바 'yBa'(young British artists) 초기 작가 중 한 명으로, 다양한 매체를 상호작용하면서 그 관계를 고찰해 왔다.
길릭은 특히 사회 현실과 삶을 구획하는 여러 시스템에 주목한다. 저술과 비평에도 매진하면서 현대미술사 중요 개념인 '관계미학' 성립에 큰 공헌을 한 그는 이론가로서 성격도 강하다. 이러한 점을 인정받아 2002년 터너상 후보에 올랐고, 2009년 베니스비엔날레 독일관 대표작가로 호명됐다.



독서당로변 갤러리바톤 전시장 유리 너머로 보인 길릭 작업은 매끈한 인테리어 같은 인상을 줬다. 얼추 30개 정도의 색 막대가 피아노 건반처럼 가지런히 늘어서고 옆에는 '모든 것은 불협화음으로 유지돼야 한다'는 영어 문장이 있다.
"여러분이 보는 막대 색상은 1927년 독일에서 만든 색 체계에서 따온 것입니다. 당시 그 체계에 따라 각종 건물과 물건 색상이 정해졌죠. 이 작품은 산업적인 시스템으로 생성된 색들을 노련하게 배치하고 일종의 놀이를 한 결과물이죠."
추상적인 오브제(막대)와 시사적인 텍스트는 리듬감 있게 어울리면서도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알루미늄으로 된 오브제의 도드라진 형태와 다채로운 색깔, 텍스트의 평평한 면과 검은 색깔 또한 이를 증폭하는 요인이다.
작가는 "텍스트는 구조물(오브제)에 의문을 제시하는 역할을 한다"라면서 "두 개는 함께 배치되면서 텐션을 만들어낸다"고 설명했다.
오브제와 텍스트가 병렬한 리엄 길릭 작업은 구경만으로도 흥미롭다. 이들을 둘러본 작가는 "미적인 요소를 많이 신경 쓴다"고 강조했다.
"아름다움은 어떠한 대화를 끌어내기 위한 초기 단계라고 할 수 있지요. 일단 사람들이 그 아름다움에 반응해서 작품에 다가가고, 이를 통해 역사적이고 정치적이며 사회적인 복잡한 대화 속으로 빨려 들어갈 수 있게 하는 게 목표입니다."
작가가 요즘 가장 몰두하는 주제는 '생산의 조건'이라고 했다. 팝아트를 비롯해 많은 현대미술이 '소비' 관점에 매몰됐다는 것이 작가 주장이다. 가령 아이폰을 들여다볼 때 가격이나 모양, 브랜드만을 주목하지, 그 생산자와 생산과정 등은 소외되고 있다는 것이다.
"소비는 너무 단순하고, 풀어낼 이야기도 별로 없습니다. 반면 생산을 주목하게 되면 작품이 누가 어떠한 조건에서 어떻게 만들었는지를 생각하게 돼서 훨씬 흥미롭지요."
전시는 23일까지. 문의 ☎ 02-597-5701.


aira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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