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회사, 열악한 노동환경 알면서도 일 맡겨서 이득 얻어"
해외파견 북한노동자 인권문제 다시 도마에…추가 소송 주목
(브뤼셀=연합뉴스) 김병수 특파원 = 폴란드의 조선소에서 수년간 일했던 북한 노동자가 8일 이 조선소에서 선박 선체를 건조한 네덜란드 회사를 대상으로 소송을 제기했다.
폴란드 조선소에서 일하는 북한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 상황을 잘 알면서도 네덜란드 회사가 이 조선소에 선박 건조와 수리를 맡겨서 이득을 봤다는 이유에서다.
외화벌이를 위해 외국에 파견된 북한 노동자가 제3국 기업을 대상으로 소송을 제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네덜란드 법률회사 '프라켄 돌리베이라'는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폴란드의 '크리스트 SA'라는 조선소에서 노예와 같은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수년간 일했던 북한 노동자가 이 조선소에서 선박의 선체를 건조하고 수리했던 네덜란드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고 밝혔다.
법률회사는 소송을 제기한 북한 노동자의 신변 안전을 위해 이름과 나이 등 자세한 신상에 대해 밝히지 않았으나 법적 소송이라는 행동에 나선 것으로 미뤄 짐작할 때 폴란드 조선소에서 일하다가 탈출한 탈북 노동자로 추정된다.
법률회사는 고소장에서 이 노동자는 하루 12시간씩 위험한 환경 아래서 일했고, 대부분의 임금은 노동자가 아닌 북한 당국으로 흘러들어 갔으며 임금지급서의 서명도 위조됐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네덜란드 회사는 북한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는 크리스트 SA의 열악하고 노예와 같은 노동환경에 대해 잘 알면서도 수주를 줬고 이득을 봤다고 지적했다.
이 법률회사는 폴란드 노동감독청의 조사에서도 북한 노동자가 일했던 크리스트 SA 조선소가 안전과 보건 관련 규정을 조직적으로 무시했고, 최소한 한 차례 이상 인명사고 발생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고 밝혔다.
그뿐만 아니라 이 조선소에서 일하는 북한 노동자들은 이동의 자유도 제한받아서 수년간 매우 열악한 상황에서 고된 노동을 한 이후에야 북한으로 돌아가는 게 허용됐다고 법률회사는 주장했다.
법률회사는 이날 북한 노동자가 소송을 제기한 네덜란드 회사의 이름도 공개하지 않았다. 이는 검찰의 수사를 방해하지 않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
이번 소송을 지원하는 인권단체인 글로벌리걸액션네트워크 측은 "노동력 착취에 초점을 맞춘 이번 소송은 강제노동으로부터 이득을 보는 다국적기업들에 이런 관행이 심각한 법적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점을 명확하게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은 외화벌이를 위해 전 세계 수십 개국에 노동자들을 파견하고 있으며, 최근 연구 자료에 따르면 현재 약 15만 명의 북한 노동자들이 외국에서 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들의 외화벌이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 프로그램에 주요한 '돈줄'이 된다는 의혹도 받아왔다.
폴란드 조선소에서 일했던 북한 노동자가 노동력을 착취당했다며 네덜란드 회사를 대상으로 소송을 제기한 것은 네덜란드 법에서는 어떤 회사가 부당한 노동력 착취를 통해 이득을 봤을 경우 처벌할 수 있는 근거가 있기 때문이라고 법률회사 측은 설명했다.
이 법률회사 변호사는 "네덜란드 법률은 노동력 착취를 통해 이득을 본 데 대해 유일하게 처벌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번 소송제기로 해외 파견 북한 노동자의 인권문제가 다시 부각되는 계기가 될 것으로 예상되며 특히 제2, 제3의 소송으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bingso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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