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이야' 소리에 아비규환…"301호서 불길 시작 천장까지 번져"(종합2보)

입력 2018-11-09 14:38  

'불이야' 소리에 아비규환…"301호서 불길 시작 천장까지 번져"(종합2보)
처참한 종로 고시원 화재현장…거주자들 속옷 차림으로 대피
"비상벨 안 울렸다…소방 당국 초동대처 늦어" 지적도


(서울=연합뉴스) 성서호 강애란 기자 = 7명이 사망하는 등 20명에 가까운 사상자를 낸 서울 종로구의 국일고시원 화재현장은 사고 당시의 긴박함을 짐작게 했다.
경찰과 소방당국에 따르면 9일 오전 5시께 종로구 관수동 청계천 인근에 있는 고시원 건물 3층에서 시작된 불은 소방관 100여명과 장비 30대가 투입된 끝에 발생 2시간 만인 오전 7시께 완전히 진압됐다.
1층 복요리집과 주점은 비교적 온전한 상태였지만, 불이 시작된 3층은 시커멓게 그을린 흔적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건물 내부는 앙상하게 철골만 남았다.
3층 출입구 쪽에서 불이 난 데다 불길이 거셌기 때문에 제때 탈출하지 못해 당시 현장은 아비규환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오래된 건물이라 스프링클러는 없었고, 그나마 설치돼있던 비상벨과 완강기는 정작 아무도 활용하지 못했다고 소방 당국은 전했다.
종로 고시원에 불…6명 사망·12명 부상, 피해 늘 듯 / 연합뉴스 (Yonhapnews)


화재가 발생한 3층의 외부로 향한 창문은 곳곳이 깨져 있고, 'ㄴ'자 모양으로 솟아오른 4층 창문도 부서져 있었다. 3층 창문 바로 위에 붙은 간판도 형체를 알 수 없는 상태다.
거주자들이 모두 대피한 2층에서도 건물 바깥으로 간이 철골 구조물이 연결된 창문이 활짝 열려있었다.
화재 당시 상황을 직접 목격한 3층 거주자 심모(59)씨는 301호 방안에서 불이 시작됐다고 목격담을 전했다.
심씨는 "담배를 피우러 옥상에 올라갔는데 (건물에서) 연기가 올라와 다시 내려갔다"며 "301호가 (3층 출입구) 초입에 있는데 가보니 (301호 거주자인) 형이 문을 열었는데 천장까지 불이 붙어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물을 뿌렸는데 불이 안 꺼졌고 소화기가 있어 쏘려고 했지만 바닥으로 (분사물이) 쏟아졌다"며 "나도 살아야 하니까 3층과 2층 비상벨을 누르고 소리를 지르며 뛰어나왔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301호 거주자가 불길 속에서 당황해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다만 상황이 급박해 불이 어떻게 났는지, 어디서 시작됐는지 등은 듣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고시원에 사는 사람들이 모두 제각각인데 외국 사람도 있다"며 "사망자 중에 일본인도 있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화재 직후 고시원 2층 거주자들은 맨몸에 외투만 걸치는 등 옷을 제대로 갖춰 입지 못한 상태로 급히 대피했다.
2층 거주자인 50대 남성 김 모 씨는 "누군가 '불이야' 하고 외치는 소리를 듣고 대피했다"며 "(건물 밖으로) 나왔을 때는 이미 3층에서 연기가 나고 있었다"고 말했다.

가까스로 바깥으로 대피한 한 중년 여성은 당시 상황을 묻는 취재진의 말에 "내가 반찬도 해주고 했는데 죽은 사람들 불쌍해서 어떡하느냐"고 울다가 자리에 주저앉기도 했다.
고시원 거주자 가운데 대다수는 일용직 노동자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거주자들이 대피한 종로1·2·3·4가동 주민센터 3층 강당에는 한 남성이 속옷 차림으로 담요만 덮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2층 거주자인 한 남성은 강당 바닥에 엎드려 "시험이 얼마 남지 않았다"며 회계사 시험 문제집을 풀기도 했다. 그는 빈손으로 대피하는 바람에 소방관에게 부탁해 어렵사리 문제집을 구했다고 했다.
당뇨를 앓고 있는 2층 거주자 이 모(64) 씨는 "아무것도 못 챙기고 속옷만 입고 나왔다"며 "약도 챙기지 못했다"고 발을 동동 굴렀다.

거주자 가운데는 베트남 국적 2명, 중국 국적 1명도 있었다. 2층에 거주하던 20대 베트남 남성은 "고시원에서 4개월 정도 살았다"며 "고시원장님이 소리를 질러서 듣고 뛰쳐나왔다"고 전했다.
화재가 시작된 3층 거주자들은 비상구 사다리를 이용해 스스로 대피하거나 소화기로 화재 진압을 시도하기도 했다.
3층 거주자인 한 남성은 "우당탕 소리가 나길래 바지만 입고 방문을 여니 복도에서 불길과 연기가 확 다가오더라"라며 "비상구 쪽에 사다리가 있어서 타고 내려왔는데 등 쪽에 화상을 입었다"고 말했다.
그는 "평상시에는 비상벨이 잘 울렸는데 오늘은 안 울린 것 같다"며 "누군가 비치된 소화기를 뿌리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대피한 거주자 조 모(40) 씨는 "2층 사람들은 거의 다 계단 통로로 나왔는데 3층에서 구조된 분 중에 (건물에서) 떨어져 다리를 다친 사람도 있다"며 "(창문에) 매달려 있다가 구조된 사람도 있었다"고 말했다.

대피한 거주자들 사이에서는 소방 당국의 초동대응이 늦었다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2층 거주자 50대 남성은 "(화재가 나고 처음) 30분 동안 사다리차를 (소방대원) 2∼3명이 설치하지 못했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고시원 인근에서 장사하는 상인들도 불이 난 고시원 주변을 서성이며 안타까워했다.
인근에서 철물점을 운영하는 이재호(61) 씨는 "오전 4시 58분께 누군가 '아악'하는 큰 비명을 질렀다"며 "나가 보니 건물 앞뒤로 불길이 치솟고 있었고, 연기가 정말 많이 났다"고 당시 급박했던 상황을 돌아봤다.
이 씨는 "건물 안에는 노점상 아주머니들이 사는데 지인 1명의 생사가 불분명하다"고 걱정하며 "원래 오래된 건물인데 2년 전쯤 건물 내외부 일부분을 리모델링했다"고 전했다.
고시원 주변에서 30년간 조명기기, 소화 장비 등을 판매해온 상인 이 모(63) 씨는 "이 근방에 불이 자주 나는데 이렇게 사람이 많이 죽은 건 처음"이라며 "지나가며 눈인사하던 사람들인데 안타깝다"고 말했다.
또 다른 상인 박 모(70) 씨는 "여기 주변에 고시원들이 많다"며 "숙박시설로 운영해야지 고시원으로 운영하니 문제다. 언제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화재였다"고 말했다.
아직 정확한 화재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가운데 경찰은 방화 등 범죄 혐의점이 있는지, 고시원이 불법으로 건축됐는지 등을 조사할 계획이다.
[현장브리핑] 소방 "고시원 화재, 3층 출입구쪽서 발생 추정" / 연합뉴스 (Yonhapnews)
soho@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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