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권력 박해에 맞선 조선 동정녀, '고즈시마 수호성인' 되다

입력 2018-11-09 14:36  

최고권력 박해에 맞선 조선 동정녀, '고즈시마 수호성인' 되다
신간 '오타 줄리아'…포로 출신 천주교 신자, 서슬퍼런 도쿠가와 회유에도 요지부동

(서울=연합뉴스) 이승우 기자 = 누구나 최고 권력자 앞에서는 두렵다. 권력이 탄압하거나 회유할 때는 뜻이 옳더라도 지키기 쉽지 않다.
조선인 포로 출신인 '동정녀(童貞女)' 오타 줄리아가 일본 고즈시마(神津島) 수호성인이자 성녀(聖女)로 추앙받는 이유다.
천주교도였던 오타는 에도 시대 절대권력자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가 금교령을 내리고 자신을 화형 또는 참수하는 대신 배교하고 측실이 되라고 한 요구를 단호히 거부했다.
특히 오타는 "지상의 왕을 위해 하늘의 왕을 불편하게 할 수 없다"며 천주교도로 순교하고 성모 마리아처럼 동정을 지키겠다고 맞선다.
오타(大田)의 일대기를 다룬 신간 '오타 줄리아(이른아침 펴냄)'는 그래서 종교적 신념에 대한 이야기인 동시에 우리가 각자 지키려던 숭고한 가치를 새삼 일깨우고 용기를 북돋는 자극제다.
오타의 운명은 소녀 시절이던 임진왜란 기간 포로로 잡혀 일본에 끌려가면서 큰 전기를 맞는다.
오타는 왜군 제1군 선봉장인 고니시 유키나가의 영지로 보내지는데, 공교롭게도 고니시는 용맹한 엘리트 군인이면서도 크리스천이었다. 고니시의 부인과 모녀처럼 지내던 오타는 서양인 신부에게 세례를 받고 천주교에 입교한다.
조선 본명이나 가계가 알려지지 않은 오타가 이때 받은 세례명이 '줄리아'다.
오타는 고니시 멸문과 함께 도쿠가와 궁으로 보내지지만, 그곳에서도 고결한 언행과 헌신적 태도로 모든 이의 칭송을 받았고, 도쿠가와로부터도 인정을 받는다. '마이너' 출신이지만 하인을 부릴 정도로 부와 명성을 얻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나 오타는 여전히 겸손했고 부와 힘을 전국통일 이후 박해받기 시작한 교회를 살리는 데 온통 쏟아부었다. 특히 그는 순교자가 되는 것이 소망이었던 만큼 천주교를 탄압하는 분위기 속에서 이런 활동을 드러내놓고 했다.
도쿠가와는 축첩을 전제로 한 사면 제안이 거부된 뒤에도 여전히 오타를 회유할 수 있다고 판단했으나 착각이었다. 사형 대신 오타를 도쿄도 남쪽 178㎞ 해상에 있는 절해고도, 고즈시마에 유폐했다.
오타는 유배지로 가는 길에 십자가를 메고 골고다로 향하던 예수의 고행을 따랐으며, 주민들에게 신앙과 글을 가르치며 영적인 삶을 살았다.
오타를 수호성인으로 추앙한 섬사람들은 아직도 매년 5월 '줄리아제(祭)'를 연다. 일본 내 많은 천주교인이 제사를 찾는다. 오타의 무덤으로 알려진 곳에 기도하면 병이 낫는다는 전설이 400년째 전해온다.
그동안 한일 양국에서 오타에 대한 소설, 영화 등이 적잖이 출간됐지만, 저자들은 현장 답사와 철저한 고증을 통해 책에서 과거 잘못된 여러 가지 정보를 바로잡았다고 한다.
예컨대 오타가 도쿠가와 사후 유배에서 풀려 본토에서 생활했다거나 현재 알려진 무덤도 사실이 아닐 가능성 등이다. 한국 천주교가 절두산에 있는 오타 묘지를 최근 철거하면서 비판이 일었던 사실도 전한다.
안병호 안토니오가 전기(1부)를, 장상인이 현지 답사(2부)를 각각 집필했다. 천주교인인 안병호는 자신을 '작가'로만 소개했고, 장상인은 부동산신문 발행인이자 JSI파트너스 대표이사다. 268쪽. 1만5천 원.
lesli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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