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의도용 당한 IT업체 서류상 대표에 6억 세금…법원 "무효"

입력 2018-11-13 09:00   수정 2018-11-13 09:21

명의도용 당한 IT업체 서류상 대표에 6억 세금…법원 "무효"
"실질 대표 아닌 점 쉽게 알 수 있는데도 세무당국 간과…명백한 하자"


(서울=연합뉴스) 이보배 기자 = 불법도박에 이용된 회사의 대표로 이름이 올라 있는 사람에게 세무 당국이 명의도용 여부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채 거액의 세금을 부과한 것에 대해 법원이 "하자가 명백하다"며 무효라고 판단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5부(박양준 부장판사)는 김모씨가 "법인세 등 부과 처분이 무효임을 확인해달라"며 노원세무서장 등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고 13일 밝혔다.
2011∼2012년 노원세무서는 김씨가 법인등기부상 사내이사 및 대표이사로 등재된 소프트웨어개발업체 A사에 대해 세무조사를 했다.
그 결과 A사 은행 계좌에 인터넷 도박 관련 돈이 입금된 사실을 확인하고 A사에 법인세, 부가가치세를 결정 고지했다.
A사가 세금을 납부하지 않자, 노원세무서는 김씨가 회사의 주식 100%를 보유하고 있다고 보고 그를 제2차 납세의무자로 지정해 세금을 부과했다.
그에게 부과된 세금은 종합소득세, 지방소득세까지 합쳐 총 6억3천여만원에 달했다.
김씨는 "일반 회사원으로 A사를 알지도 못하고, 설립과 운영에 전혀 관여한 바가 없다"며 세무 당국이 이를 충분히 알 수 있었음에도 세금을 부과했다며 지난해 10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그는 2011년에 전화로 대출을 받으려고 주민등록증과 인감증명서 등을 팩스와 우편으로 보낸 적이 있는데 누군가 이 서류를 이용해 명의도용 범행을 저지른 것 같다고 추측했다.
재판부는 "통상의 주의력과 이해력을 가진 공무원의 판단에 의했더라면 김씨가 A사 운영에 관여할 수 있는 실질 주주나 대표자가 아니었단 사실을 쉽게 알 수 있었다"며 "이를 간과하고 이뤄진 모든 처분은 위법하고, 그 하자가 중대·명백하여 당연무효라고 봐야 한다"고 밝혔다.
특히 노원세무서가 서울지방국세청의 '인터넷 불법도박 사업자 등 조사계획 및 대포통장 조사계획'에 따라 A사에 대해 세무조사를 했고, A사와 비슷한 형태로 설립돼 불법도박에 이용된 법인들이 여럿 있는 상황이었던 점 등에 비춰 김씨가 실질 사업자인지를 의심할 만한 충분한 사정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또 "A사가 그 무렵 조직적인 불법도박에 이용된 여러 회사 가운데 하나였다는 점에 비춰 김씨가 명의도용을 당했을 가능성이 크고, 설령 대가를 받고 명의대여를 한 것이라고 해도 A사를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운영한 당사자는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boba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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