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탄소년단 '광복' 티셔츠가 일본서 불러온 나비효과

입력 2018-11-11 17:47   수정 2018-11-11 18:42

방탄소년단 '광복' 티셔츠가 일본서 불러온 나비효과
방송사 출연 취소에 정치적 갈등 관계·문화적 헤게모니 견제 등 해석 잇따라
가요계, 일본 내 3차 한류 영향에도 주목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세계적인 그룹 방탄소년단의 일본 음악 방송 출연 취소가 불러온 파장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일본 TV아사히 '뮤직 스테이션'이 지난 8일 표면적으로 제시한 취소 사유는 멤버 지민이 과거 입은 이른바 '광복' 티셔츠. 그러나 그 이면에 정치적인 갈등 관계, 문화적인 헤게모니 견제 등이 내포돼 있다는 국내외 해석이 잇따르면서 양국 관계가 새삼 조명되는 나비효과를 불러왔다.
여기에 국내 여야 정치권까지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양국 누리꾼의 뜨거운 '쟁점'으로 비화하자 가요계는 방탄소년단의 글로벌한 영향력을 보여준 단적인 사례라면서도 일본 내 3차 한류에 미칠 영향을 예의주시했다.


◇ "정치·문화적 이유로 극우 세력 저격대상 된 듯"
일본 방송사가 문제 삼은 지민의 티셔츠는 지난해 유튜브에 공개된 다큐멘터리 '번 더 스테이지'(Burn the Stage)에서 몇초간 노출됐다. 셔츠에는 애국심, 우리 역사, 해방, 코리아란 영문 문구와 함께 원폭 투하로 버섯구름이 핀 사진, 광복을 맞아 만세를 부르는 사람들의 사진이 담겼다. 이 셔츠는 한 업체가 일제강점기를 지나 나라를 되찾은 광복절을 알리고, 젊은이들이 우리 역사에 관심을 갖자는 취지에서 제작한 것으로, 지민이 팬에게서 선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CNN과 영국 BBC 등 외신이 '원폭 셔츠'로 표현하자 SNS에서는 팬들을 중심으로 티셔츠의 제작 의미를 알리려는 '#LiberationTshirtNotBombTshirt'(원폭 티셔츠가 아니라 광복 티셔츠)란 해시태그가 급속도로 퍼졌다. 또 이를 계기로 일본의 한국 식민 지배 역사를 들여다본 팬들이 올린 콘텐츠도 잇달았다.
문제는 일본이 이 티셔츠를 문제 삼은 시점이다. 일각에서는 박근혜 정부 시절 위안부 합의에 대한 갈등,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한국 대법원의 일본 기업 배상책임 판결 등으로 양국 관계가 불편해지자 빌보드 1위의 위업을 달성한 방탄소년단이 일본 극우 매체와 혐한 세력의 표적이 됐다는 해석을 내놓았다.
미국 대중음악 매체 빌보드는 지난 9일(현지시간) 기사에서 이 티셔츠를 뒤늦게 문제 삼은 것을 짚고는 "국가 간의 오랜 정치적, 문화적 문제에 뿌리를 두고 있다"며 티셔츠가 방송 취소의 유일한 이유가 아니라고 봤다. 실제 방탄소년단은 지난해 12월 TV아사히의 '뮤직 스테이션 슈퍼 라이브 2017'에도 출연했다.
아울러 아시아 대중문화의 헤게모니가 한국으로 넘어간 데 따른 일본의 견제란 시각도 있다. 세계 시장에서 J팝이 오랜 하락세인 반면, K팝은 방탄소년단의 활약 덕에 세계적인 콘텐츠로 주목받았다. 일본에서도 방탄소년단과 트와이스가 K팝 인기에 다시 불을 붙이며 3차 한류를 견인하고 있다.
빌보드는 일본 내 K팝의 확장을 소개하고는 "일본은 한국 아티스트의 인기와 균형을 맞추려고 고군분투했다"고 짚기도 했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최근 일본에서 K팝 한류가 다시 살아나는 조짐을 보이면서 일본 극우 세력에겐 한류 견제 의식이 생겼고, 또 한국 대법원판결에 대한 불만도 커지면서 세계적인 그룹인 방탄소년단이 저격 대상이 됐다고 본다"고 해석했다.


◇ 3차 한류에 영향?…"유튜브 시대, 대세 지장 없어" vs "외교 갈등되면 위축"
일본 내 한류 붐은 그간 독도, 역사교과서 문제 등 정치적인 요인의 외부 영향을 크게 받았다. 드라마가 견인한 1차 한류에 이어 동방신기와 빅뱅, 소녀시대와 카라 등이 일군 2차 한류는 2012년 이명박 전 대통령의 독도 방문 등으로 양국 관계가 냉각되며 부침을 겪었다. 일본 방송에서 한국 가수의 출연은 물론 한류 콘텐츠가 사라졌고, 양국 관계가 소원해진 틈을 타 혐한의 목소리도 커졌다. 그러자 매년 12월 31일 방송되는 NHK '홍백가합전'에는 2012년부터 5년 연속 한국 가수가 명단에서 빠졌다.
이런 경험을 한 가요계는 이번 사태가 다시 불붙은 3차 한류에 미칠 영향에 주목했다. 다수는 방송 출연 등에선 타격을 받을 수 있지만 콘서트 등 다른 활동에선 위축될 것으로 내다보지 않았다. 유튜브 시대가 되면서 이전 냉각기에도 온라인에선 K팝의 인기가 지속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한 기획사의 해외사업 팀장은 "방탄소년단의 영향력을 보여준 사례"라면서 "향후 일본 정부의 입김이 작용해 방송 출연 등에 문제가 있을 수 있지만, K팝 등 한류 콘텐츠는 이미 유튜브나 각종 SNS로 소비되고 있어 대세에 지장이 없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방탄소년단도 13~14일 도쿄돔에서 시작하는 38만 명 규모의 '러브 유어셀프' 일본 돔투어를 위해 지난 10일 출국했다. 앞서 지난 7일 일본에서 낸 아홉 번째 싱글 '페이크 러브/에어플레인 파트.2'(FAKE LOVE/Airplane pt.2)는 자체 최고 성적으로 오리콘 데일리 싱글차트 1위에 올랐다.
또 오리콘 차트 정상을 여러 차례 밟은 트와이스도 내년 K팝 걸그룹으로는 처음으로 도쿄돔과 나고야돔, 오사카 교세라돔을 도는 돔투어에 나선다. 엠넷 '프로듀스 48'을 통해 결성된 한일 합작 걸그룹 아이즈원은 지난달 말 발표한 데뷔 앨범으로 오리콘 주간 앨범 차트와 주간 디지털 앨범 차트를 석권했다.
다만, 국내 여야 정치권까지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양국의 외교적 갈등이 더 격화한다면 한류가 위축될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중국에서도 한국의 사드 배치로 2016년 7월 이후 소위 한한령이 본격화해 한국 콘텐츠 수출과 연예인 활동이 원천봉쇄된 경험도 있어서다. 대다수 해외 진출 그룹은 여전히 일본 시장 의존도가 높다.
하재근 평론가는 "한류 스타를 캐스팅했을 때 일본 극우 단체가 민감하게 공격할 수 있다는 인식이 퍼지면, 일본 내에서 한류 스타 활동을 용인하는 게 껄끄러워지고, 한류의 위축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mimi@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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