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면 폭발로 베트남전 당시 기뢰 무더기로 폭발

입력 2018-11-12 11:05  

태양면 폭발로 베트남전 당시 기뢰 무더기로 폭발
미 해군 1급비밀 문서 기밀해제…정전·통신 장애 넘어 큰 위협 될 수 있는 사례


(서울=연합뉴스) 엄남석 기자 = 베트남전 당시 일시적인 태양면 폭발(solar flare)로 미군이 북베트남의 혼라 항구를 봉쇄하기 위해 설치해 둔 기뢰가 무더기로 폭발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태양의 활동이 정전이나 통신 장애를 넘어 훨씬 더 위험한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우주기상 전문 웹사이트인 '스페이스 웨더'(Space Weather)는 최근 기밀이 해제된 미 해군 보고서를 인용해 이런 사실을 처음으로 밝혔다.
비밀보고서에 따르면 미군 태스크포스 77 항공기 승무원들은 1972년 8월 4일 혼라 해역 상공을 비행하던 중 20~25개의 기뢰가 30초 사이에 잇따라 터지는 것을 목격했으며 인근 수역에서 25~30개의 흙탕물 흔적도 발견했다.
이 해역은 미 해군이 북베트남의 주요 항구인 혼라항을 봉쇄하는 포켓머니 작전에 따라 '디스트럭터(Destructor)'라는 기뢰를 촘촘히 설치해 놓았던 곳이다.
이 기뢰들은 자폭장치가 있었지만 30일 뒤에나 작동하도록 조정돼 있었기 때문에 의문의 폭발로 여겨졌으며, 해군 당국은 즉각적으로 폭발 원인 조사에 착수했다.
당시 태평양함대 사령관 버나드 클레어이 제독은 사건 10여일 뒤 태양 활동으로 기뢰가 폭발했을 가능성에 관해 물은 것으로 보고서에 나와있다. 혼라 해역에 배치된 기뢰 중 상당수는 자기장의 변화가 감지됐을 때 폭발하도록 설계돼 있었기 때문이다.
태양 활동으로 지구 자기장이 변할 수 있다는 것은 당시에도 잘 알려진 사실이었지만 그렇다고 기뢰까지 폭발시킬 수 있는지에 관해서는 명확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 해 8월 초는 태양 활동이 가장 강력했던 시기 중 하나로 기록돼 있다. 태양의 'MR11976' 지점에서 강력한 폭발이 연쇄적으로 이어지면서 바깥 대기인 코로나에서 전하를 가진 입자들이 대량으로 방출돼 빛에 가까운 속도로 움직였다.


해군 담당 조사관들은 미국국립해양대기국(NOAA) 산하 우주환경연구소(SEL)를 찾아가 1급 비밀이었던 혼라 사건에 관해서는 밝히지 않은 채 태양 활동에 따른 기뢰 폭발 가능성에 대해 문의를 한 것으로 밝혀졌다.
해군 보고서는 디스트럭터 기뢰가 8월 초의 태양 폭발 활동으로 폭발했을 "개연성이 상당히 높다"고 결론을 내린 것으로 나타나 있다.
태양면 폭발은 자기장을 크게 변화시켜 대형 전력시설에 충격을 주며 특히 위도가 높은 지역이 더 취약하다.
1972년 8월 초의 태양면 폭발 때도 마찬가지로 북미 곳곳에서 정전과 전신 장애가 발생한 것으로 보고돼 있다. 당시 8월 4일 오후 3시21분(한국시간) X급 태양면 폭발이 일어나면서 절정에 달했는데, 당시 코로나에서 분출된 전하를 띤 입자들은 지구까지 보통 2~3일씩 걸리던 것과 달리 14.6시간 만에 도달하는 기록을 세웠다.
과학자들은 이보다 앞서 이뤄진 태양면 폭발이 길을 닦아놓았기 때문에 이런 기록이 수립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하지만 지구 자기장의 교란 정도를 나타내는 Dst 지수로만 따졌을 때 당시는 -125nT(나노테슬라)로 2015년 3월(-222nT)이나 2003년 11월(-383nT)의 태양면 폭발 때보다 훨씬 낮은 것으로 나타나 있다.
이런 불일치는 우주기상을 연구해온 과학자들에게 태양에 관해 더 많은 연구를 해야 하는 과제를 던져주는 것으로 지적됐다.


미국 온라인 매체 '더 컨버세이션(The Conversation)'은 1972년 기뢰 폭발 사건이 우주기상이 지구 기술에 미치는 영향을 분명하게 보여준 또 다른 사례라면서 태양에 관한 지식을 넓힘으로써 미래의 위험에 더 잘 대처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eomns@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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