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대중교통, 공공서비스로 남아야 한다는 민의 표출"
(로마=연합뉴스) 현윤경 특파원 = 달리는 시내버스에서 불이 나고, 지하철 에스컬레이터가 고장 나 수십 명이 바닥으로 내동댕이 쳐지는 등 위험천만한 서비스로 악명을 떨쳐온 이탈리아 로마의 대중교통의 민영화가 좌절됐다.
11일(현지시간) 로마시 대중교통의 민영화 방안을 둘러싸고 실시된 주민투표가 투표율 미달로 부결됐다고 코리에레 델라 세라 등 현지 언론이 12일 보도했다.
이날 투표에는 유권자 총 240만 명 가운데 약 40만 명만이 표를 행사해 16.3%의 저조한 투표율을 보였다. 로마시는 앞서 주민투표의 효력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유권자의 최소 3분의 1이 참여해 최저 투표율이 33.3%를 넘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비록 투표율 미달로, 주민투표가 부결되긴 했으나 참가자들 가운데 약 75%는 찬성표를 던져 로마시교통공사(ATAC)가 독점하고 있는 열악한 대중교통 서비스의 개선을 위해 민간업체에 운영권을 개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상당히 크다는 점을 웅변했다.
14억 유로(약 1조8천억원)의 천문학적 부채를 안고 있어 사실상 파산 상태에 놓인 ATAC은 차량의 유지·보수 작업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직원들 월급도 제대로 주지 못하는 처지에 몰려 있다.
로마에서는 빈번한 파업과 고장 등의 이유로 버스와 지하철의 정시 운행은 기대조차 못 하고 있고, 각종 사고마저 빈발하는 터라, 대중교통 대신에 오토바이와 자전거 등에 의존하는 시민들이 최근 급격히 늘고 있다.
대중교통 서비스의 민영화를 반대해 온 비르지니아 라지 로마 시장은 "로마 시민 대다수가 대중교통이 공공 서비스로 남아있길 원한다는 것이 이번 투표로 확인됐다"며 투표 결과를 환영했다. 라지 시장은 "이제 대중교통의 개선 작업에 전력을 다할 것"이라며 새로운 버스 구입 등에 시 예산을 투입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주민투표 가결 시 정치적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됐던 집권 '오성운동' 소속의 라지 시장은 투표율 미달로 부결된 이번 주민투표 결과에 한시름을 놓게 됐다는 평가다.
라지 시장은 로마의 비효율적인 대중교통과 만성적인 쓰레기 수거난 등 일상적인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공약을 내걸고 2016년 6월 로마 최초의 여성 시장이자, 역대 최연소 시장으로 당선됐으나, 그의 취임 이후 로마의 고질적인 병폐들은 개선되기는커녕 더 악화했다는 비난을 받아왔다.
라지 시장이 속한 오성운동은 로마 시장 선거에서 역사적 승리를 거두며 올해 3월 총선에서 수권 정당으로 도약해 창당 9년 만에 집권의 꿈을 이루는 기틀을 다졌으나, 수도 로마에서만큼은 시정의 난맥상에 발목을 잡혀 지지율이 오히려 후퇴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시의 인사 문제와 관련해 위증한 혐의로 기소됐던 라지 시장은 앞서 지난 10일에는 법원으로부터 무죄 판결을 받아 최대의 정치적 위기에서도 벗어났다.
라지 시장은 만약 이날 유죄 판결을 받았다면, 정치의 투명성을 강조하는 오성운동의 당규에 따라 시장 직에서 사퇴할 것으로 점쳐졌다.
한편, 이번 주민투표 실시를 밀어붙인 급진당은 로마시가 주민투표의 효력을 위해 최저투표율을 설정한 것은 위법이라며, 로마시를 행정법원에 제소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ykhyun1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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