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벨룽의 반지' 국내 제작 초연…명랑한 바그너 입문

입력 2018-11-15 13:25  

'니벨룽의 반지' 국내 제작 초연…명랑한 바그너 입문
아힘 프라이어의 '라인의 황금' 리뷰…유희적 의상·분장엔 호불호



(서울=연합뉴스) 이용숙 객원기자 = 대한민국 오페라가 70주년을 맞이한 올해 드디어 바그너 '니벨룽의 반지' 국내 제작 초연이 이뤄졌다. 이 공연을 기획하고 제작한 월드아트오페라(예술감독 에스더 리)가 신생 민간오페라단인 까닭에 '무모한 도전'이라는 주변 우려도 컸으나, 지난 14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막을 올린 첫 번째 시리즈 '라인의 황금'은 미덥지 않은 시선을 걷어낼 만했다.
워낙 난해한 작품이란 인상이 강하지만 흥미롭고 친근감 있는 연출 때문에 생각보다 접근하기가 쉬웠다는 평이 많았다. 객석점유율 80%에 유료관객점유율 60%를 넘겼으니 비교적 좋은 성적표도 냈다.
이 공연의 기획 동력은 총연출을 맡은 아힘 프라이어의 세계적인 명성이었다. 브레히트 수제자이자 표현주의 화가, 조형 연극의 대표자로 독자적인 예술세계를 구축한 84세 거장에 대한 깊은 신뢰가 바그너 본고장인 바이로이트 가수와 연주자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었다. 후원기관인 주한독일문화원은 사전에 관련 강연과 토크, 영화상영 등 수준 높은 프로그램을 제공해 관객들의 작품 이해에 도움을 줬다.


프라이어는 건축물 뼈대를 연상시키는 거대한 철제구조물을 무대에 세웠다. 산업화와 자본주의 이후의 '사랑이 불가능해진 세계'를 상징하는 장치인 동시에 게르만 신화의 최고신 보탄이 원한 빛나는 성 '발할'의 건축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오케스트라가 '태초의 자연' 모티프와 '라인강의 물결' 모티프를 연주하기 시작하자 무대 위에는 별들이 반짝이는 광대한 우주가 펼쳐졌다. 더 큰 지혜를 얻으려고 한쪽 눈을 희생해 애꾸가 된 보탄의 눈 하나가 우주를 유영하고, 광선검 같은 보탄의 창이 무대를 가른다.
앞쪽 샤막(투명막)과 무대 안쪽에 투사되는 영상은 프라이어가 직접 그린 무대화를 영상화한 것으로, 탁월한 조명효과와 더불어 무대 위 세계의 신화적 무시간성과 비현실성을 효과적으로 드러냈다. 무대 양옆에 거울을 배치해 무대 위 공간을 복제하고 확장하는 효과도 만들어냈다.
등장인물들의 의상이 인물의 개성과 내면을 표현하는 것도 프라이어 특유의 방식이다. 흔히 두 명의 거인은 통일된 복장이지만, 프라이어는 파졸트와 파프너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무대에 세웠다. 청춘의 여신 프라이아에게 빠져있는 감성적인 파졸트는 가슴에 꽃을 단 예복 차림으로 등장하고, 물질적 욕망으로만 충만한 파프너는 건설 현장에 적합한 안전모에 작업복 차림이다.
보탄은 키와 몸을 확대하고, 난쟁이 알베리히는 가슴까지 내려오는 커다란 탈과 키높이 구두를 이용해 신체 비율을 진짜 난쟁이처럼 만들었다. 보탄의 아내 프리카는 금지와 통제의 표시인 커다란 손을 달고 있다. 보탄의 바람기와 사회적 확장 욕구를 계속 제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서는 호불호가 갈렸다. 바그너의 세계를 엄숙하고 장중하게 체험해보려던 일부 관객은 유희적인 의상과 분장에 실망을 표하기도 했다.
이번 공연에서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세계 최고 권위의 바그너 음악 축제인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가수의 대거 출연이다. '탄호이저'의 볼프람으로 유명한 바리톤 마르쿠스 아이혜가 천둥의 신 도너 역으로 출연하며, 로게 역 테너 아놀드 베츠옌, 프리카 역 미셸 브리트, 에르다 역 나딘 바이스만 등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서 매번 만나게 되는 주요 배역 가수가 배역에 어울리는 뛰어난 가창을 들려줬다.
이들과 함께 한 보탄 역 바리톤 김동섭, 파졸트 역 베이스 전승현 등 한국 출연진도 바그너 전문가수의 역량을 발휘했다. '오텔로'의 이아고 역으로 유명한 러시아의 드라마틱 바리톤 세르게이 레이퍼쿠스의 알베리히도 인상적이었다.


바그너 경험이 많은 노장 랄프 바이커트가 지휘한 프라임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바그너 튜바 및 잉글리쉬 호른, 비올라 주자로 충원된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연주자 6명과 함께 전력을 다한 훌륭한 연주를 선사했다. 초반에는 지나치게 조심스러워 유연함이 다소 부족했으나 3장 니벨하임 장면의 연주는 역동성과 활기로 가득했고 4장 피날레도 장대했다.
4부작을 완주하려는 긴 레이스가 이제 막 시작됐다. 제작 현실의 수많은 난관, 오페라단의 조직력, 재원조달 등을 고려할 때 아직 완주를 확신하기는 어렵다. A, B 캐스트로 진행되며 공연은 18일까지.
rosina@chol.com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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