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천만 대리수술] ①유형 천태만상…뿌리깊은 의료계 '흑역사'

입력 2018-11-17 07:00  

[위험천만 대리수술] ①유형 천태만상…뿌리깊은 의료계 '흑역사'
간호조무사 710여 차례 수술, 의료기 판매사원이 수술한 환자 뇌사
'마취하면 누군지 모른다'…일부 의사 도덕불감증 한계치 넘어

[※ 편집자 주 = 최근 의료계에서 대리수술에 따른 환자 사고가 잇따라 사회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대리수술을 막을 수 있는 예방대책은 아직 미흡한 실정입니다. 이에 전국적으로 계속되는 대리수술 사고 현황 및 문제점, 대책을 아우르는 기획기사 두편을 제작, 일괄 송고합니다.]


(전국종합=연합뉴스) 지난 5월 울산 모 병원에서 간호조무사가 수술을 집도한 의혹이 제기됐다.
해당 병원 관계자가 언론사에 제보한 영상에는 간호조무사 A씨가 수술용 가위와 메스 등 도구를 들고 실제 수술하는 장면, 수술 시간에 의사가 수술실 밖으로 나서는 모습 등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문제가 불거지자 해당 병원 측은 "뉴스에 보도된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며 성명까지 냈으나 경찰 조사 결과, 대리수술은 사실로 드러났다.
간호조무사 A씨가 2014년 12월부터 3년 6개월가량 제왕절개 봉합 수술, 요실금 수술 등을 710여 차례나 한 것이다.
A씨는 "의사들 수술 장면을 어깨너머로 보고 배웠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병원에선 간호사 1명도 제왕절개 봉합 수술을 10여 차례 한 것으로 확인됐다.
또 의료 관련 자격증이 없는 사람이 수술 환자 환부 소독 등 수술실 보조업무를 맡기도 한 것으로 밝혀졌다.
수사가 시작되자 이 병원에서 수술을 받은 일부 환자가 후유증을 호소하기도 했다.
경찰은 지난 9월 보건범죄단속법(부정의료업자) 위반 등으로 이 병원 원장 등 의사 8명과 간호사 8명, 간호조무사 6명 등 모두 22명을 불구속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넘겼다.
무자격 수술, 대리수술 사례는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 9월 부산 영도구 모 병원에선 원장이 환자 어깨 부위 수술을 의료기 판매사원과 간호사, 간호조무사에게 시키고 환자가 뇌사상태에 빠지자 진료기록을 위조한 혐의로 검찰에 넘겨졌다.
이 병원 수술실 외부 폐쇄회로(CC)TV에는 환자가 수술을 받기 전 영업사원이 수술복으로 갈아입고 수술실에 들어가는 모습이 찍혀있다.
또 2015년 5월 부산 모 정형외과에선 병원장이 의료기기 판매사원과 간호조무사 등에게 무릎 인공관절 삽입 수술을 맡긴 혐의로 경찰에 입건됐다.
의료기기 판매사원과 간호조무사, 간호조무사 실습생 등은 병원장 지시로 환자 9명에게 무릎 관련 수술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대리수술은 대형병원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부산대학교병원에선 B 교수가 지난해 수술 23건을 후배인 조교수에게 대리 집도하게 한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은 후 올해 1월 검찰에 넘겨졌다.
B 교수는 수술이 자신의 출장 일정이나 외래진료와 겹치자 대리수술을 하도록 한 것으로 조사됐다.
B 교수는 혐의를 부인했지만, 경찰은 진료기록부 일부가 조작된 사실을 토대로 대리수술을 입증했다.
앞서 2016년 삼성서울병원에서는 산부인과 분야에서 명성이 있는 C 교수가 해외학회 참석 등을 이유로 자신이 담당한 수술을 후배 의사에게 맡긴 정황이 폭로되기도 했다.
대리수술로 환자가 사망한 의혹도 있다.
경기도 파주시 모 병원에선 지난 4월 70대 환자가 척추 수술을 받다가 숨졌는데, 기록상 수술한 것으로 돼 있는 의사가 경찰 조사에서 "다른 의사가 수술했다"고 진술한 것이다.
경찰은 대리수술 의혹에 대해 여러 관계자 진술을 확보하고 수사 중이다.

대리수술 문제로 수천만원을 환자에게 배상하도록 한 판결이 나기도 했다.
서울 강남 유명 성형외과 원장은 자신이 수술할 것처럼 환자 33명을 속이고 실제로는 치과의사 등에게 수술하도록 했다가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당해 2017년 8월 서울중앙지법에서 8천800만원 상당 배상액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이 원장은 마취되면 누가 수술하는지 모르는 점을 악용해 성형외과 전문의보다 급여가 낮은 치과·이비인후과 의사 등에게 수술을 맡긴 것으로 조사됐다.
환자들은 수술 후 하악골 비대칭, 뼈 부정유합 등 증상을 겪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사례들을 종합해볼 때 지금까지 의료계에서 성행해온 대리수술은 크게 3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 의료인 면허가 없는 의료기기회사 영업사원이 의사를 대신해 수술하는 경우 ▲ 유명 의사가 수술할 것처럼 안내한 뒤 실제로는 수술경력이 짧은 '신참' 의사가 수술하는 경우 ▲ 지도교수가 전공의 또는 간호사, 간호조무사에게 수술을 시키는 경우다.
의료계 관계자들 사이에선 '의사처럼 수술을 잘하는 간호조무사'나 의료진에게 의료기기 용도, 시술 방법 등을 직접 설명하는 과정에서 실제 수술에 나서는 '베테랑' 영업사원이 있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히 나돈다.
하지만 이런 대리수술은 환자와 보호자의 동의를 구하지 않아 윤리적인 문제를 일으킬 수 있고, 수술 중 사고나 수술 후 부작용 발생 시 책임소재가 모호해진다는 점에서 반드시 근절돼야 한다는 게 의료계의 중론이다.
한 대학병원의 교수는 "유형에 따라 조금씩 다를 수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대리수술은 환자를 기만하기 때문에 사기죄 구성 요건에도 부합한다"면서 "사고 후 처벌 여부를 떠나 윤리 도덕적인 측면에서 볼 때 환자를 다루는 의사가 해서는 절대 안 될 일"이라고 지적했다.
canto@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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