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시민들, 거리의 유대인 희생자 동판에 촛불과 꽃…80주년 추모
만행 담은 전시회 등 열려…시민 수천명, 극우 시위예고에 거리로
켐니츠 극우시위서 유대인 음식점 공격…메르켈 "유대인 박해 기억 떠올라"
[※편집자 주 = 일곱 번째 이야기. 독일 수도 베를린은 유럽에서 가장 '힙(hip)'한 도시로 부상했습니다. 2차 세계대전과 냉전체제의 유산을 간직한 회색도시는 전 세계에서 몰려든 젊은 예술가들로 인해 자유분방한 도시로 변모했습니다. 최근엔 유럽의 새로운 IT와 정치 중심지로도 주목받습니다. 이런 복합적인 특색 탓인지 베를린의 전시·공연은 사회·정치·경제적 문제의식이 짙게 배어 있습니다. '힙베를린'에서는 다양한 문화적 현상을 창(窓)으로 삼아 사회적 문제를 바라봅니다.]
(베를린=연합뉴스) 이광빈 특파원 = 지난 9일 베를린의 한 좁은 인도에 꽃과 함께 놓인 촛불이 바닥에 박힌 구릿빛 동판을 비추고 있었다.
촛불에 비친 동판에는 라파엘 바엘이라는 유대인의 이름과 출생·사망 연도, 사망장소인 아우슈비츠가 표시돼 있었다.
그날 베를린 거리에서는 구릿빛 동판 옆에 놓인 꽃과 촛불을 흔히 볼 수 있었다. 인근 주민들이 가져다 놓은 것이다.
이 동판은 나치에 희생당한 유대인들을 추모하기 위해 그들이 살던 집 앞에 설치한 '슈톨퍼슈타인'(걸림돌)이다.
베를린 시민의 문 앞에, 발 앞에 놓인 가로·세로 10㎝ 크기의 작은 추모물을 통해 일상에서 추모와 반성을 하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졌다.
1992년 예술가 귄터 뎀니히가 설치하기 시작해 베를린에서만 7천600여 개에 달한다.
이날은 1939년 유대인 대학살의 전주곡이 됐던 '수정의 밤'(크리스탈나흐트)의 80주년이었다.
당시 하룻밤 사이에 유대인 상점 7천500여 개와 유대인 예배당 1천400여 곳이 공격당했다. 살해되거나 자살한 유대인이 1천300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날 밤 이후 며칠간 유대인 3만 명은 강제로 수용소로 끌려갔다.
당시 유대인 상점의 깨진 유리가 길바닥에서 수정처럼 빛났다고 해서 '수정의 밤'이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수정의 밤'이 이날의 비극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대학살의 밤'이라고도 불린다.
베를린에서는 80년 전의 만행을 기억하고 추모하기 위한 여러 행사가 열렸다.
나치의 만행을 알리는 사료박물관으로 도심 한복판에 있는 '테러의 지형학'에서는 당시의 만행이 담긴 사진을 보여주는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불타는 예배당과 이를 구경하는 시민들, 산산이 조각난 유리가 어지럽게 흩어진 상점, 물건 약탈을 위해 나치가 동원한 트럭,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나치에게 끌려가는 유대인들.
전시관 안팎에 걸린 사진들은 당시의 폭력성과 잔인함을 여실히 보여준다.
나치가 전화로 공격을 지시하고 조직적으로 움직인 정황도 설명돼 있었다.
나치 돌격대뿐만 아니라 경찰 등 공권력도 '유대인 사냥'에 앞장섰다.
국가조직까지 동원된 학살, 탄압, 약탈을 독일 국민은 묵인했다. 다른 국가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거칠 게 없어진 나치는 이날 밤을 계기로 유대인에 대한 탄압을 본격화했다. 결국,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600만 명의 유대인이 나치에 의해 목숨을 잃게 됐다.
베를린뿐만 아니라 독일 도시 곳곳에서 80년 전 유대인 대학살을 추모하고 반성하기 위한 전시와 행사가 열렸다.
뮌헨의 유대인박물관에서는 박물관들이 당시 유대인들로부터 약탈한 유대교 유물 등을 보여주는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나치 독일은 '수정의 밤' 이후에도 2차 세계대전 과정에서 유럽 각지의 유대인들로부터 미술품 등을 빼앗았고, 상당수가 반환되지 않았다. 독일 당국은 관련 예산을 3배로 증액해 미술품 반환에 나섰지만, 여전히 원활하지 않다는 지적이 많다.
9일 오후 수천 명의 베를린 시민이 도심에서 '수정의 밤'의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행진을 벌였다. 이들은 극우세력이 2016년부터 '수정의 밤'에 베를린에서 시위를 벌이는 것에 대항하기 위해 거리로 나왔다. 이들 시민의 힘에 눌린 탓인지 시위를 벌인 극우세력은 100여 명에 불과했다.
올해 독일인들에게 '수정의 밤'은 더욱 특별하게 다가왔다.
80주년인 데다, 반(反)유대주의에 대한 경고음이 여느 때보다 커졌기 때문이다.
옛 동독지역인 작센 주의 켐니츠에서 벌어진 극우세력의 폭력시위에는 6천 명이 참석해 독일 사회에 충격파를 던졌다. 집회가 열린 과정에서 극우세력이 기성 사회가 생각해온 것 이상으로 조직적이라는 것이 드러났다. 이들은 반(反)난민 구호를 외쳤다. 일부 참석자들은 나치 상징물을 사용하고 나치 구호를 외쳤다.
특히 켐니츠 사태에서 독일인들에게 강렬하게 남은 구호가 있다. "유대인 돼지 떠나라". 극우세력으로 보이는 이들이 켐니츠의 유대인 음식점 병과 돌을 던졌다. 깨진 창문 조각들은 80년 전 '수정의 밤'처럼 쏟아져 내렸다.
앞서 올해 베를린 도심에서 유대인들이 공격을 당하는 사례가 많아졌다. 최근 몇 년간 이스라엘과 상극인 시리아 등에서 난민이 대거 몰려오면서 반유대주의 문제가 커졌다. 독일인 일부가 가진 반유대인 정서도 여전했다.
최근 라이프치히대학의 '극우 극단주의·민주주의 연구소'가 독일 시민 2천416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응답자 10명 중 1명은 유대인들이 여전히 사회에 많은 영향력을 가진다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더구나 응답자의 3분의 1은 사회적으로 이뤄지는 반(反)유대주의적 발언에 부분적으로 동의한다는 의사를 보였다.
독일 기성 사회에서는 점증하는 반유대주의를 끊임없이 견제하고 있다.
'수정의 밤' 80주년 기념일에 연방하원에서 열린 기념식에서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은 "(민주주의 바이에른 공화국이 세워진) 1918년 11월의 독일이, 독일인들이 어떻게 1938년 11월에 그렇게 행동할 수 있었단 말인가"라며 "이방인에 대한 증오는 독일 국기의 정신에도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같은 날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베를린의 유대인 예배당에서 열린 기념식에서 켐니츠 유대인 음식점에 대한 공격을 언급하며 "1930년대 유대인을 박해하기 시작한 나쁜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면서 "사회적 배제, 반유대주의 인종차별, 극우주의에 단호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메르켈 총리는 16일에는 켐니츠를 찾아 2시간 동안 시민과 대화를 나눴다. 그는 "극우의 시위는 어떠한 정당성도 없다"면서 "외모로 다른 사람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독일 정부는 올해 '반유대주의 커미셔너'라는 자리를 만드는 등 적극 대응에 나서고 있다. 반유대주의 범죄를 파악하기 위해 전국적으로도 데이터베이스 구축을 시작했다.
그러나 유대인을 상대로 한 공격 소식은 잊힐만하면 신문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다.
lkbin@yna.co.kr #힙베를린 #hipberl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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