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문·비봉폭포·옥류계곡·구룡연에 방북단 탄성 '연발'
평양통일예술단 장구춤·열창에 환호…만찬에선 관광재개 '한목소리'
(금강산=연합뉴스) 이승관 기자 = 남북 군사분계선을 나타내는 1천292개의 표지판 가운데 1천290번째라는 낡은 시멘트 말뚝이 북한의 '시작점'이었다.
언덕 위에는 여전히 포신이 설치된 군 기지가 보이기도 했지만 추수가 끝난 들판에는 소와 돼지, 닭이 주인 없이 다니는 모습이 이채로웠고, 자전거를 타고 시골길을 가는 주민들의 모습은 평화로웠다.
예정 시간인 18일 오전 10시 30분 정각 군사분계선을 통과한 뒤 북측 통행검사소에서 간단한 입경 수속을 마치고 북측 땅을 밟았을 때 북측의 '언론인 안내인'이라는 3명이 다가와 기자의 이름을 부르며 인사말을 건네 깜짝 놀라기도 했다.
온정리 마을을 지나 '금강산 국제관광 특구 방문을 환영합니다'라는 문구의 플래카드가 걸린 금강산호텔로 들어선 방북단은 일제히 버스에서 내려 북한 인사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리택건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 황호영 금강산특구지도국장과 잇따라 손을 맞잡았고, 임동원·정세현·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과 민주평화당 박지원 의원 등 과거 남북화해 무드를 주도했던 인사들은 감회에 젖은 모습으로 북측 인사들과 "오래간만입니다"라는 인사를 주고받았다.
1999년 2월 당시 청와대 공보수석 자격으로 출입기자단과 금강산관광을 했던 박 의원은 소감을 말해달라는 기자의 질문에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지 않느냐. 산천도 변하고 인걸도 간데없다"고 웃으면서 말했다.
평양 옥류관을 본뜬 식당인 옥류동면옥에서 꿩 육수로 만든 냉면을 즐긴 방북단은 공식 행사인 기념식과 기념식수, '평양 통일예술단'의 축하공연 등에 잇따라 참석했다.
전자음악 반주에 민요, 장구춤, 무용, 합창 등이 이어지자 방북 인사들은 환호와 박수갈채를 보냈고, 흥을 돋우기 위해 무대 아래로 내려온 예술단원과 함께 어깨춤을 추는 장면도 연출했다.
특히 행사장을 가득 채운 온정리 일대 주민 400여명은 어색함 없이 방북단 인사들에게 인사를 건네며 공연에 대한 소감을 묻기도 했다.
공식 행사가 끝난 뒤 숙소인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연회에는 닭고기 편구이, 메추리완자탕, 송이버섯볶음, 얼레지토장국 등 이채로운 음식과 함께 평양주, 대동강맥주, 오미자 단물 등이 테이블에 올랐다.
이 자리에서는 남북 인사들이 건배사를 통해 한목소리로 금강산관광 재개에 대한 희망을 나타냈다.
현정은 회장은 "열려라, 열어라, 열린다 금강산"을 외쳤고, 리금철 북한 사회민주당 부위원장은 "금강산관광 정상화를 위하여, 축배"를 제안했으며,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도 "금강산관광, 열자, 열자, 열자"를 선창했다.
관광 개척기인 1999년, 절정기인 2007년에 이어 중단된 2018년에 세번째로 금강산을 찾았다는 박지원 의원은 남측 젊은 세대의 표현이라며 "가즈아(가자), 금강산"을 외쳐 박수를 받았다.
방북단은 이틀째인 19일 무려 10년 만에 남측 방문객들에게 '비공식적으로' 문을 연 금강산 구룡연 코스를 참관하며 만추를 만끽했다.
바닥까지 투명하게 보이는 계곡 물 위를 가로지르는 목란다리를 건너 거대한 바위 사이로 신비롭게 난 금강문을 지나 할딱고개를 힘겹게 오른 방북단은 비단 폭처럼 내려오는 옥류계곡이 눈 앞에 펼쳐지자 절로 감탄을 쏟아냈다.
옥류 계곡의 감동이 채 가시기도 전에 비봉폭포가 눈에 들어왔고, 최종 목적지인 구룡폭포와 구룡연, 관폭정에서는 "최고다" "천하 절경이다" 등 환호와 함성이 이어졌다.
10년 만에 모습을 드러낸 금강산의 절경에 반한 방북단의 참관 일정이 지연되면서 당초 예정됐던 신계사 참관은 버스 안에서 승려들의 인사에 손을 흔들어 답례하는 것으로 대체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구룡연 참관을 안내한 20대 초반의 북측 해설원은 이달초 민족화해협력 범국민협의회(민화협)와 북측 민족화해협의회의 금강산 공동행사에서 남측 주민을 처음으로 만났다고 소개한 뒤 "우리와 다른 게 하나도 없어서 어이가 없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행사 중에 방북단 가운데 한 인사가 '북한'이라는 표현을 쓴 데 대해 북측 인사가 "그런 분단을 고착화하는 표현은 쓰지 않는 게 좋다"고 지적해 어색한 분위기가 연출되기도 했다.
humane@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