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불 65% 진화되자 일부 주민 귀가 허용…77명 사망·993명 실종
파라다이스 주민은 귀환 엄두 못내…주차장 텐트시티서 한동안 지낼듯
(로스앤젤레스=연합뉴스) 옥철 특파원 = "내게 소중한 것들은 저기 그대로 있잖아요."
미국 캘리포니아주 북부 산불 피해 지역인 뷰트 카운티 내 소도시 치코 주민 로빈 윌슨(34)은 타버린 벽돌 더미 속에서 물건을 뒤지고 있는 세 아이를 가리켰다.
로빈은 지난 8일(현지시각) 캘리포니아주 재난 역사상 최악의 산불로 기록된 캠프파이어가 발화했을 때 새크라멘토의 직장에 있었다. 다행히 남편 로건이 아이들과 애완동물을 데리고 불길을 피해 안전한 곳으로 피신했다.
폐허가 된 '파라다이스'…최악의 산불이 남긴 것? / 연합뉴스 (Yonhapnews)
캠프파이어로 18일까지 주민 77명이 사망했다. 실종자는 1천276명에서 993명으로 줄었다. 18일에는 시신 한 구만 수습됐다. 매일 큰 폭으로 늘던 인명 피해가 줄어들 기미가 보인다.
마을 전체가 통째로 소실된 파라다이스 마을의 피해가 가장 컸고 인근 치코도 타격이 작지 않았다. 시에라네바다산맥 산자락에 자리 잡은 치코는 그나마 협곡에서 큰 도로 쪽으로 많이 내려온 곳이라 파라다이스와 비교하면 인명 피해는 적었다.
뷰트 카운티 소방당국은 18일 오후부터 일부 이재민들의 귀가를 허용했다. 캠프파이어는 진화율 65%를 넘기면서 진정 국면이다.
집으로 돌아간 윌슨 부부의 사연은 19일 캘리포니아 북부 지역지 '더 머큐리 뉴스'에 소개됐다.
연면적 4천700제곱피트(130평)가 넘는 윌슨 부부의 저택은 앙상한 뼈대만 남고 불에 타 사라졌다.
"흙더미 말고 뭔가 더 있을 줄 알았는데, 완전히 사라졌네요."
로빈은 집터를 둘러보며 한숨부터 내쉬었다. 남편과 큰아들이 부삽으로 잿더미 속을 파헤쳤다.
고교 시절 불던 트럼펫이 나왔다. 할아버지가 손자 생일에 선물한 가지치기 연장 세트와 같이 금속으로 된 물건은 그나마 형체를 유지했다.
생후 얼마 지나지 않아 병으로 죽은 넷째의 이름을 새긴 조약돌이 그대로 남아 있어 부부의 눈시울을 붉게 했다. 포트 브래그로 가족여행 갔을 때 새겨온 유리 조각품도 허연 잿가루를 뒤집어 쓴 채 나왔다.
부모의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섯 살 난 막내는 "여기 봐요, 여기"라고 외치며 잿더미 속에서 물건 찾는 재미에 빠졌다.
윌슨 부부는 인근 월마트 주차장에 설치된 텐트시티에 기거하다가 불이 꺼지자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당분간 집에서 살기는 힘든 상태다.
부부가 주변을 돌아보니, 근처에 있던 30여 가구는 모조리 불에 탔다.
로빈은 세 아들과 남편, 집에서 키우던 애완견 두 마리가 함께 있다는 사실에 다시 한 번 가슴을 쓸어내렸다.
치코 협곡 끝자락에 지은 바버라 메이어(61)의 집은 이 동네에서 거의 유일하게 화마를 피했다.
메이어는 "언덕 끝에 있어서 그런지 불길이 피해갔다. 토마토 텃밭까지 훼손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나마 치코 주민은 집터를 돌아볼 수 있는 여유를 찾았지만, 파라다이스 마을 주민은 귀환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다.
머큐리 뉴스는 파라다이스 마을 주민의 상실감을 달래기 위해 치코에 있는 페이스 루터 교회에서 기도회가 열렸다고 전했다.
북캘리포니아 루터 소셜서비스의 캐럴 로버츠는 "정신적·감정적인 치유가 거대 재앙으로부터 주민들을 벗어나게 하는 출발점"이라고 말했다.
파라다이스 마을 이재민의 손을 부여잡은 로드 플랫 목사는 "우리는 잿더미 속에서 일어나야 한다. 새로운 파라다이스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파라다이스 마을에서 평생 살았다는 주민 호프 후드(62)는 "다른 지역으로 이사 가는 건 생각도 하지 않고 있다. 당분간 트레일러에서 자야겠다"라고 말했다.
oakchu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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