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개입 의혹엔 "억지로 고치라는 뜻 아니었다"…검찰, 구속영장 검토
'지록위마' 김동진 판사·'미스 함무라비' 문유석 판사도 '블랙리스트'
(서울=연합뉴스) 이지헌 방현덕 기자 =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에 연루된 박병대(61) 전 대법관이 검찰 조사에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거나 "사후보고를 받았을 뿐"이라며 혐의를 대부분 부인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박 전 대법관의 진술이 지시를 받아 의혹 문건을 작성한 법원행정처 심의관 등 관련자 진술과 어긋나는 부분이 많다고 보고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서울중앙지검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은 20일 오전 10시께 박 전 대법관을 소환해 그가 직·간접적으로 연루된 사법행정권 남용 관련 30여개 혐의에 관해 조사를 이어갔다.
박 전 대법관은 전날 오전 9시 30분 검찰에 출석해 14시간가량 조사를 받았다. 재출석은 전날 귀가한 지 약 10시간 만이다.
검찰은 전날 옛 통합진보당 의원 지위확인 소송 개입 등 헌법재판소와 위상경쟁 과정에서 법원행정처가 벌인 여러 불법행위에 대해 집중적으로 조사했다.
박 전 대법관은 "보고받은 기억이 없다", "보고받았더라도 사후에 보고를 받았다"며 의혹에 적극 개입하지 않았다는 입장이라고 한다. 자신의 지시가 있었다는 진술이 확보된 일부 혐의에는 "실무선에서 적절히 처리하라는 뜻이었다"거나 "업무는 (법원행정처) 실장 책임 하에 하는 것"이라며 책임을 회피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통진당 소송과 한정위헌 취지 위헌심판제청에 대한 일선 재판부 결정에 개입했다는 의혹에는 "억지로 고치라는 뜻은 아니었다"고 해명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박 전 대법관이 혐의를 사실상 전면 부인하는 데다 앞서 5개월여 동안 조사한 전·현직 판사들과 크게 다른 진술을 내놓음에 따라 증거인멸 등 우려가 있다고 보고 구속 수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박 전 대법관이 처장으로 재직하던 시기 법원행정처가 사법행정에 비판적인 판사들에게 인사 불이익을 줬다는 이른바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 수사도 속도를 내고 있다.
당시 법원행정처가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판결을 비판한 김동진 부장판사와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주장한 문유석 부장판사를 '물의 야기 법관'으로 규정해 인사 불이익을 검토한 정황이 추가로 드러났다.
김 부장판사는 수원지법 성남지원에 근무하던 2014년 9월 원 전 원장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무죄를 선고한 1심 판결을 놓고 "지록위마(指鹿爲馬·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한다)의 판결"이라고 비판하는 글을 법원 내부망에 올렸다.
그는 같은 해 12월 정직 2개월의 징계를 받고 이듬해 인천지법으로 전보됐다.
문 부장판사는 2014년 8월 한 일간지 기고문을 통해 "원칙을 생명으로 하는 법도 꼭 필요한 경우에는 예외를 인정한다"며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했다. 특별법 제정을 놓고 피해자 유족과 박근혜 정부가 대립하던 때였다. 문 부장판사는 '개인주의자 선언'과 '미스 함무라비' 등 저서로 대중에도 잘 알려진 법관이다.
검찰은 이들을 비롯해 사법행정에 비판적인 의견을 낸 판사 여러 명의 이름이 포함된 '물의 야기 법관 인사조치 보고' 문건을 확보해 분석 중이다.
2015년 1월 작성된 이 문건에는 두 법관 이외에도 송모·김모 부장판사 등 당시 대법관 인사 등 사법행정을 비판한 판사들의 이름이 들어있다.
이달 초 법원행정처 압수수색에서 발견된 이 문건은 애초 음주운전 등 비위를 저지른 판사들에 대한 인사조치를 위해 작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법원행정처가 여기에 비판적 목소리를 내는 법관들을 끼워넣어 사실상 '판사 블랙리스트'를 만들었다고 보고 실제 인사 불이익이 있었는지 확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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