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카르타=연합뉴스) 황철환 특파원 = 말레이시아 정부가 유엔 인종차별철폐협약(ICERD)을 비준한다는 계획을 중도 철회했다.
20일 국영 베르나마 통신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마하티르 모하맛 말레이시아 총리는 지난 18일 기자들을 만나 ICERD의 비준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인종이나 피부색, 가문, 민족 등에 따른 차별을 금지한 ICERD를 비준하려면, 다수민족인 말레이계를 우대하는 현행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마하티르 총리는 "야권이 동의해야 (헌법 개정에 필요한) 3분의 2 지지를 확보할 수 있는데 이는 거의 불가능할 것이란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현 여권의 실질적 지도자인 안와르 이브라힘 인민정의당(PKR) 총재도 "지금은 ICERD를 비준하기에 적절한 시점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인구의 다수(61.7%)를 차지하는 말레이계와 원주민의 반발이 거세자 ICERD 비준을 포기한 것이다.
그런 가운데 말레이계 야당인 통일말레이국민조직(UMNO)과 범말레이시아이슬람당(PAS)은 인종폭동 발생 가능성까지 언급하며 현 정부에 대한 말레이계의 반감을 부추기고 있다.
다민족 국가인 말레이시아는 지난 수십 년 동안 '부미푸트라'로 불리는 말레이계 우대정책을 펼쳐왔다.
말레이계와 원주민의 '특별한 지위'를 보호해야 한다는 헌법 조항을 근거로 빈곤에 허덕이던 말레이계에 대입정원 할당과 정부 조달 계약상 혜택 등 특혜를 준 것이다.
하지만 이런 정책은 말레이계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향상된 뒤에도 계속 유지돼 중국계(20.8%)와 인도계(6.2%) 등 다른 민족에 대한 차별 정책으로 변질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올해 5월 총선에서 승리해 61년만의 첫 정권교체를 이뤄낸 마하티르 총리와 정부여당은 말레이계 우대정책을 완화하는 방안을 추진해 왔으나, 말레이계의 반발이 심해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hwangc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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