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부도의 날' 김혜수 "시나리오 보며 피가 거꾸로 솟는 줄"

입력 2018-11-20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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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부도의 날' 김혜수 "시나리오 보며 피가 거꾸로 솟는 줄"



(서울=연합뉴스) 김승욱 기자 = "저는 시나리오를 주로 밤에 봐요. 처음에는 반쯤 누워서 보다가 점점 똑바로 앉아서 보게 됐고, 나중에는 화가 나서 검색하면서 봤어요.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 들더라고요."
현역 여배우 중 독보적이라 할 수 있는 카리스마의 주인공 김혜수가 1997년 외환위기를 소재로 한 영화 '국가부도의 날'로 스크린에 복귀한다. 그녀는 국가 부도 사태를 가장 먼저 예측한 한국은행 통화정책팀장 '한시현' 역을 맡아 위기를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인간상을 그렸다.
20일 팔판동 한 카페에서 김혜수를 만났다. 외환위기 당시 그는 이미 성인 연기자였지만 구체적인 상황은 알지는 못했다고 했다.
"저는 외환위기를 직접 겪은 세대잖아요. 친구와 함께 시사회를 갔는데 그 친구가 울면서 보더라고요. 그때 월급도 삭감되고 회사에서 어려웠나 봐요. 정말 친한 친구인데 그런 이야기는 한 적이 없었어요. 당시는 알지 못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 집안 친인척 중에서도 피해갈 수 없었던 부분이 있었더라고요."
김혜수 역시 완성본을 본 것은 전날 시사회가 처음이었다고 한다. 다 아는 이야기고 본인이 연기한 작품인데도 눈물이 났다고.



"외환위기를 겪었음에도 내가 알지 못한 것이 많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허준호 선배가 연기한 '갑수'라는 인물이 여러 가지로 와 닿았죠."
김혜수가 맡은 '한시현'은 즉시 위기를 국민에게 알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인물이다. 반면 그와 대척점에 선 '재정국 차관'은 위기를 비밀로 하고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재정국 차관'과 한시현의 대립은 영화의 골간을 이룬다. 김혜수는 상대역을 맡은 조우진에 대해 '천재'라며 극찬했다.
"저는 연기 잘하는 분에 대한 경외심 같은 게 있어요. 제 연기 인생에 그렇게 느낀 분이 많지 않은데 그중 한 분이 조우진 씨에요. 정말 천재적인 부분이 있어요. 거기다 노력까지 하잖아요. 정말 연기 잘하는 배우하고 호흡을 맞추는 그 순간이 좋아요. 배우에게 그만한 자극은 없거든요."
그가 호흡을 맞춘 또 한 사람은 IMF 총재 역을 맡은 프랑스 배우 뱅상 카셀이다. 김혜수가 전부터 좋아한 배우라고.
"뱅상 카셀이 IMF 총재 역을 맡기로 했다는 말을 듣고 '오마이 갓' 했어요. 워낙 좋아한 배우였거든요. 이분을 어떻게 캐스팅했냐고 물으니까 본인이 시나리오를 보고 흥미가 있어서 출연하겠다고 했다더라고요."



극 중 뱅상 카셀과의 대화는 영어로 진행된 데다 온갖 경제용어가 난무한다. 김혜수로서는 이중의 장벽을 넘어야 했던 셈이다. 뱅상 카셀의 대사까지 통째로 외우는 수밖에 없었다고. 자다가도 그의 대사를 할 정도였다고 한다.
"일주일에 최소한 두 번, 많게는 다섯 번까지 연습했어요. 사실 그건 당연하죠. 말이 안 되는데 어떻게 연기를 하겠어요. 실제 본 뱅상 카셀은 젠틀하고 나이스한 배우였어요. 저는 외모를 좋아해서 팬이 됐지만 연기는 더 끝내주더라고요."
극 중 한시현은 '은행원 계집애'라는 비하를 받으면서도 점령군 수장과도 같은 IMF 총재 앞에서 당당히 자기주장을 펼친다. 그를 감당할 수 없다고 여긴 IMF 총재가 한시현을 협상팀에서 배제할 것을 요구할 정도다.
'한시현'은 당당한 여성의 표상과도 같은 모습을 보였지만 김혜수는 남성 권력에 도전하는 여성 투사와 같은 생각으로 연기하지는 않았다고 강조했다.



"사실 한시현이라는 인물은 남자가 하든 여자가 하든 상관없는 캐릭터에요. 성별을 바꿔놓으면 마치 엄청난 도전을 한 것 같은데 저는 그런 생각이 없었어요. 여성이라는 것을 어필하고 싶지는 않았죠. 묵묵히 자기 일을 하고 이 일이 아니었어도 할 말은 했을 인물이라고 이해했어요."
김혜수는 이 영화의 강점으로 단순한 재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유의미한 논의와 대화를 끌어낼 수 있는 점을 들었다.
"이 영화는 온몸으로 IMF 시대를 살아낸 사람들의 이야기죠. 저는 젊은 관객들이 많이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안다고 생각했던, 혹은 알 수 없었던 1997년을 떠올릴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영화를 본 분들이 이 영화를 매개로 많은 대화를 나눴으면 좋겠어요."


kind3@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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