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이후 법률가, 반성하지 않아야 영광 누렸다"

입력 2018-11-20 16:26  

"해방 이후 법률가, 반성하지 않아야 영광 누렸다"
김두식 교수, 해방 직후 법조계 분석한 '법률가들' 출간
"사법파동, 법관 개개인이 독립하는 계기 돼야"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한국 법조계 병폐와 치부를 낱낱이 드러낸 '불멸의 신성가족' 저자인 김두식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해방 전후부터 한국전쟁까지 법조인들을 분석한 '법률가들'로 돌아왔다.
출판사 창비가 펴낸 692쪽 분량의 책에서 김 교수는 일제가 물러나면서 공백이 생긴 법조계가 사람을 어떻게 충원했는지 파악하고, 법률 엘리트의 탄생과 기원을 추적했다.
김 교수는 20일 마포구 창비서교빌딩에서 열린 출판 간담회에서 "해방 당시 조선인 판사와 검사는 전체의 30%가 되지 않았기에 국권을 되찾은 뒤 법조계는 인물도, 제도도, 돈도 부족했다"며 "이 시기에 과연 존경할 만한 법조인이 있었는지 찾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법관사', '한국사법사', '한국법조인대관' 등 여러 기록물을 조사해 보니 사소한 부분에도 오류가 많았다"고 지적하면서 관보, 자서전, 평전, 신문기사, 합격자 명단, 판결문, 공소장, 미군 노획문서를 참고해 광복 시점부터 군사정변이 일어난 1961년 5월 16일까지 법률가 약 3천 명에 대한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이를 바탕으로 김 교수는 1945년 이후 법조계에 몸담은 사람들을 5가지 부류로 구분했다. 이 가운데 일제강점기에 주로 활동한 원로 그룹을 제외하면, 네 집단은 정전 협상이 체결된 뒤 법조계의 기둥이 됐다.
김 교수는 일제강점기에 일본에서 고등시험 사법과에 합격한 인물을 1그룹으로 분류하고, 이들이 박정희 정부까지 법조계를 주도했다고 말했다.
2그룹은 1922년부터 시행된 조선변호사시험 출신이고, 3그룹은 일제강점기에 서기 겸 통역관으로 일하다 판사와 검사에 임용된 사람을 아우른다. 4그룹은 해방된 다음 각종 시험에 합격해 법조계에 입문한 법률가들이다.
김 교수는 "독자들이 흥미를 느끼도록 사람 중심으로 서술했다"며 그룹별로 대표적인 인물을 뽑아 소개했다.
예컨대 1그룹에서는 김영재와 민복기가 대비되는 삶을 살았다.
독립운동가 가문에서 태어난 김영재는 경성제대를 졸업한 뒤 서울과 평양에서 검사로 근무했다. 그러나 해방 이후 친일 행위를 반성하는 의미에서 3년간 자숙했다가 서울지검 차장검사로 복귀한 뒤에는 남로당에 가입했다. 제1차 법조프락치 사건에 연루된 그는 한국전쟁이 터지면서 월북했다가 행방불명이 됐다.
반면 친일 가문 출신인 민복기는 김영재처럼 경성제대에서 공부해 판사가 됐고, 해방 이후에도 법무부 검찰국장과 대통령 법률비서관을 지냈다. 한국전쟁 당시 성북동에 은신한 그는 박정희 정부에서 법무부 장관과 대법원장을 역임하며 승승장구했다.
김 교수는 "과거를 반성하고 돌이킨 사람은 예상한 것 이상의 불행을 맛봤고, 끝까지 개인의 안위만 추구한 사람은 기대한 것 이상의 영광을 누렸다"며 "누구도 이러한 역사 흐름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고 말했다.



해방 직후 법률가들 가운데 흥미로운 집단은 3그룹이다. 경력 7년이 넘는 서기들은 시험 없이 판사나 검사에 임용되는 특혜를 누렸다.
대법관을 지낸 이회창 전 자유선진당 대표 부친인 이홍규가 대표적인 3그룹 법조인으로, 그는 경성법전을 졸업하고 15년간 서기 겸 통역관으로 일하다 1945년 12월 20일 순천지청 검사가 됐다.
김 교수는 4그룹 중 법조계 최대 스캔들로 평가되는 '이법회'(以法會, 혹은 의법회) 출신을 처음으로 소상히 밝히기도 했다.
이법회는 1945년 8월 14일 시작된 조선변호사시험에 응시했다가 해방을 맞으면서 감독관이 사라지자 응시자들이 결성한 단체다. 이들은 합격증을 요구했고, 실제로 남쪽에 있던 106명이 합격증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 교수는 "1948년 이전 시험에서 필기를 면제받은 사람은 이법회 출신이라고 보면 된다"며 "전두환 정권에서 대법원장 자리에 오른 유태흥과 인권 변호사 홍남순이 이법회 멤버였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들은 법조계 골칫거리인 동시에 중요한 인력 풀이 됐지만, 대부분 이러한 경력을 감췄기 때문에 전체적인 규모를 알아내기 쉽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오늘날 법률가들은 어려운 시험에 당당하게 합격해 자신들이 향유하는 권력에 정당성이 있다고 보지만, 실상은 그 뿌리가 그렇게 단단하지 않다"며 "해방 정국에서는 시험에 붙지 않고도 법률가가 된 사람이 적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그는 최근 법조계를 달구는 현안인 사법농단에 대해 "법원과 검찰 사무실에 돈이 돌던 1990년대와 비교하면 많이 나아졌다"면서도 "헌법에 적힌 대로 법관 개개인이 독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현 정부가 출발할 때는 검찰이 개혁 대상이라고 했는데, 1년 반 만에 검찰 대신 법원이 문제가 됐다"며 "단시간에 검찰이 주도권을 회복했다는 점이 놀라우면서도 놀랍지 않다"고 말했다.
"빛이 강하면 그림자가 긴 법이죠. 해방 이후 법률가도 다면적으로 볼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반쯤은 농담입니다만, 독자가 법조계 엘리트가 되려면 반성은 하지 말고 자기 이익만 취해야 한다고 느낄지도 모르겠습니다."
psh59@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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