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다시·세운 인쇄기술학교'…"창의성과 예술감성 키우는 계기"
(서울=연합뉴스) 윤고은 기자 = "헉! 선생님 원래 고양이 눈에 눈곱이 끼나요?"
"선생님 스킬이 가장 멋지고 사이다였어요!"
"나는 토끼 볼에 붉은색으로 볼터치를 해야지~"
초등학생 17명이 모여 왁자지껄 떠드니 선생님들이 정신이 없다. 나눠준 에코백에 저마다 한 번에 인쇄를 잘해야 하는데 누구는 인쇄가 잘 나오고 누구는 번지고 난리다. 그래도 아이들은 마냥 신기하고 즐겁다. 잉크가 번지면 번지는 대로 손으로 문질러가며 즐거운 인쇄 체험을 한다.
서울시 세운상가군 재생사업 '다시·세운 프로젝트' 2단계 사업인 '충무로 인쇄골목의 부활' 일환으로 진행되는 '다시·세운 인쇄기술학교'의 여러 수업 중 초중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영 메이커(Young Maker) 교육'이 지난 15일 첫 회 수업을 가졌다.
중구 흥인초등학교 5학년 2반 학생들은 이날 충무로 인쇄업체를 견학해 한 권의 책이 만들어지는 과정 등을 지켜봤다. 특수인쇄기술을 활용해서 제작한 다양한 제품도 구경하고, 방탄소년단이 인쇄된 L자 파일을 발견하고는 '꺅~' 소리를 지르며 환호도 했다.
아이들은 이후 진양상가 302호에 자리 잡은 '지붕없는 인쇄소'에서 실크스크린 기법을 통한 에코백 만들기에 도전했다. 천에 인쇄를 하는 과정을 체험하는 것이다.
서울시가 인쇄골목 업체와 창작자를 매개하기 위해 운영하는 '지붕없는 인쇄소'에서는 학생들이 100분 안팎의 과정으로 진행되는 간단한 인쇄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실크스크린 인쇄는 어떤 재료에도 인쇄를 할 수 있어요. 오늘처럼 가방에 할 수도 있고, 유리에도 할 수 있고 옷에도 할 수 있고…."
충무로 인쇄골목에 자리한 삼성스크린재료에서 출장 교육을 나온 현장 전문가의 설명에 아이들은 흥미를 보이며 집중했다.
실크스크린은 판화 인쇄 기법의 하나로 판 재료에 실크가 사용된다. 요즘 장바구니 사용 운동과 함께 널리 쓰이고 있는 에코백에 새겨진 문양은 모두 실크스크린 기법으로 인쇄한 것이다.
아이들은 체험을 위해 긴 앞치마와 토시, 비닐장갑을 착용하고 체험에 나섰다. 실크스크린 판을 만들고 그 위에 유제(디라졸)를 바른 후 감광기를 이용해 원하는 동물문양을 인쇄하는 과정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좇아갔다.
"자, 이 검정비닐이 왜 필요할까요?"
"버스에서 토할 때 필요한 비닐이에요!"
"맞아요. 토할 때 필요한 비닐이에요. 그런데 오늘은 다른 용도예요. 흰색은 빛을 반사하지만 검은색을 빛을 흡수하잖아요? 이 검정비닐이 실크스크린에 인쇄하는 과정에서는 빛을 흡수해줘요."
드디어 완성된 실크스크린으로 나만의 에코백을 만드는 순서. "누가 잘할까요?"라는 질문에 "저요!" "저요!"가 사방에서 터져 나왔다.
토끼, 호랑이, 사자, 팬더, 고양이 등 다양한 동물을 에코백에 원하는 색깔로 인쇄하는 순서에서 아이들은 떨리는 마음으로 에코백에 실크스크린 판을 대고 고무 롤러를 이용해 힘차게 잉크를 발랐다.
"자 실크스크린 판 위에 이런 식으로 잉크를 묻혀주고 고무 룰러를 힘차게 쓱 당기세요. 오! 이 친구 힘이 센 친구죠? 엄청 인쇄가 잘 나왔네요."
인쇄가 깔끔하게 나오지 않아도 아이들은 재미있어했다. 자기 손으로 천 가방에 인쇄를 해보는 경험은 그 자체로 특별했기 때문이다.
"재미있어요. 케이크에 아이싱하는 것처럼 힐링 되는 느낌도 들고, 이 잉크 냄새가 공사장에서 나는 냄새인데 저는 이 냄새 너무 좋아요."(정유진)
"잉크를 바를 때 부드러운 느낌이 좋았어요. 신기하고요. 저는 검은색 고양이를 인쇄했는데 고양이는 심플한 색이 좋을 것 같아서 골랐어요."(곽민주)
"잉크를 싹 눌러서 인쇄가 되니까 되게 통쾌했어요."(정지환)
학생들을 인솔한 김수연 담임 교사는 "학교에서 이런 프로그램이 있다고 추천을 해주셨는데 아이들 반응이 좋아서 오기 잘한 것 같다"며 "아이들이 인쇄물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견학하고 인쇄체험도 하면서 교실에서는 배울 수 없는 것들을 배우는 시간이 됐다"고 말했다.
서울시의 '충무로 인쇄골목 부활' 사업은 을지로와 충무로 일대를 현장 중심의 인쇄기술 교육 장소로 활용하고, 청년들이 찾아오는 인쇄·디자인 혁신 공간으로 탈바꿈시킨다는 목표를 향한다.
이를 위해 '다시·세운 인쇄기술학교'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현장 교육을 진행 중이다. 디자인 전공 학생이나 인쇄에 관심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인쇄 디자인, 레터프레스 교육을 충무로 인쇄 장인들과 함께 펼치고, 초·중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영 메이커 교육' 역시 충무로 현장과 연계해 진행한다.
지붕없는 인쇄소의 이란 소장은 "오늘 아이들과 함께 인쇄골목에 들어서면서 '책 만드는 마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고 소개를 했더니 아이들이 단번에 무슨 말인지 알아듣고 관심을 보이더라"면서 "책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직접 보고 인쇄도 직접 해보는 프로그램을 활성화해서 충무로 인쇄골목을 사람들이 찾아오는 곳으로 만들고자 한다"고 말했다.
양병현 서울시 역사도심재생과장은 "'영 메이커 교육'은 학교 수업에서는 쉽게 접할 수 없는 인쇄기술 체험, 디자인 실습, 종이 공예 등과 같은 현장학습 기회를 제공해 미래의 창작자를 꿈꾸는 청소년들에게 창의성과 예술적 감성을 키우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도 서울시는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세운상가군 일대 주요 산업을 연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해 청소년들을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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