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그니츠키, 9년 전 러시아 고위관리 비리 폭로 뒤 사망
러 검찰, 마그니츠키 살해 배후로 브라우더 지목…재수사 나서
브라우더의 '마그니츠키, 러 고문으로 사망' 주장과 배치
(모스크바=연합뉴스) 유철종 특파원 = 지난 2009년 러시아 정부 고위관리들의 부패를 폭로한 뒤 감옥에서 의문사한 러시아인 변호사 세르게이 마그니츠키 사건을 둘러싸고 또다시 논란이 일고 있다.
러시아 검찰이 19일(현지시간) 1990년대~2000년대 초중반 러시아에서 활동한 영국계 투자펀드 '허미티지 캐피털'의 최고경영자(CEO)인 영국 국적의 윌리엄 브라우더를 마그니츠키 피살 사건의 배후로 지목하고 이 사건에 대한 재수사에 착수하면서다.
브라우더의 동료로 허미티지 캐피털의 모스크바 사무소에서 일한 마그니츠키는 2008년부터 자국 검찰과 경찰, 판사, 세관원 등 고위공무원들이 연루된 대규모 비리사건을 파헤치다 오히려 탈세 방조 혐의로 기소돼 조사를 받던 중 2009년 11월 모스크바 구치소에서 의문의 죽임을 당했다.
러시아 검찰은 "마그니츠키를 포함한, 피살당한 브라우더의 파트너 4명 모두에게서 알루미늄이 포함된 독극물 중독 증세가 발견됐다"면서 "브라우더가 자신의 범죄 사실을 숨기기 위해 감옥에 있던 마그니츠키 독살을 지시한 혐의가 있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지난 16일 브라우더를 국제범죄조직 구성과 운영 혐의로 입건했다"면서 "조만간 그에 대해 국제수배령을 내리고 그의 자산을 동결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같은 러시아 검찰의 주장은 마그니츠키가 구치소 내에서의 고문으로 숨졌다는 브라우더와 러시아 인권단체의 주장과 배치되는 것이다.
마그니츠키 사망 후 구치소 측은 마그니츠키가 심장마비로 사망했다고 밝혔지만, 브라우더와 대통령 산하 인권위원회를 비롯한 러시아 인권단체 등은 마그니츠키가 구치소 내에서의 폭행으로 숨졌다고 주장했었다.
마그니츠키 피살에 대한 러시아 당국의 책임을 물으려는 브라우더의 끈질긴 노력 등으로 미국은 지난 2012년 마그니츠키 사망 사건 연루자들에 대한 제재를 규정한 대러시아 인권법인 '마그니츠키법'을 채택했고 영국도 올해 비슷한 법을 통과시켰다.
유럽연합(EU) 28개 회원국은 20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EU 차원의 마그니츠키법 제정 논의를 위한 회의를 연다.
러시아 검찰의 브라우더 수사는 바로 마그니츠키 사건과 관련한 국제사회의 대러 비난과 제재 확산 움직임을 차단하기 위한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브라우더는 러시아 검찰의 혐의 제기에 대해, 지난 3월 영국에서 발생한 러시아 출신 이중스파이 세르게이 스크리팔 독살 미수 사건에 러시아가 개입한 것이 드러나면서 궁지에 몰린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마그니츠키 독살 등 4건의 살인 혐의를 자신에게 뒤집어씌우려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러시아 검찰의 브라우더 수사 개시 발표가 오는 21일로 예정된 국제형사경찰기구(인터폴)의 새 총재 선출을 앞두고 이루어진 점도 의혹을 사고 있다.
새 인터폴 총재 선거에서는 러시아 내무부 고위간부인 알렉산드르 프로콥축 부총재가 유력 후보 중 한 명으로 올라 있다.
프로콥축의 총재 선출을 적극 지원하고 있는 러시아가 자국 사법당국의 명예회복과 이미지 개선을 위해 마그니츠키 사건의 배후로 브라우더를 지목하고 나섰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브라우더에 대한 새로운 수사는 스크리팔 사건이나 국제 상황과 전혀 관련이 없다"고 반박했다.
cjyou@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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