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업계 지각 변동 올까…닛산 로그 생산 르노삼성 공장도 '불똥'
(서울=연합뉴스) 정성호 기자 = 자동차업계의 스타 경영인 중 한 명인 카를로스 곤 르노-닛산 얼라이언스(동맹) 회장이 소득을 축소해 신고했다는 혐의 등으로 일본 검찰에 체포되면서 또 한 명의 경영인 신화가 무너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닛산자동차 임원의 제보로 곤 회장의 비위에 대한 수사가 시작된 것으로 나타나면서 이번 사태의 본질을 두고 다양한 관측이 나온다.
자동차업계에서는 르노-닛산의 동맹이 앞으로도 원만히 유지될지에 주목하고 있다. 르노-닛산 얼라이언스는 2016년 미쓰비시자동차까지 동맹에 끌어들이며 글로벌 2위 완성차업체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프랑스 르노그룹 소속이면서 닛산의 자동차를 위탁 생산하고 있는 르노삼성자동차에도 이번 사태의 불똥이 튈지 우려된다. 동맹의 와해로 자칫 르노삼성차가 일감을 잃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 르노-닛산 넘어 프랑스-일본 정부 간 갈등이 원인?…동맹 유지될까
21일 자동차업계와 외신에 따르면 표면적으로 이번 사태는 곤 회장의 개인 비위로 비치고 있다. 일본 검찰이 밝힌 곤 회장의 혐의가 수억엔 규모의 임원 보수를 축소해 신고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르노의 최대 주주인 프랑스 정부가 최근 닛산을 합병하려고 시도하는 과정에서 이번 사태가 불거졌다는 점에 주목하는 시각도 있다.
현재 르노는 닛산 지분을 43.3%, 닛산은 르노 지분을 15.0%씩 보유하고 있다. 상호출자 구조인 것이다.
르노의 닛산 지분 인수는 1999년 당시 경영난에 처해 있던 닛산에 구원의 손길이었다. 곤 회장은 르노에서 닛산으로 파견돼 최고운영책임자(COO)를 맡으며 철저한 경영 합리화로 닛산의 실적을 'V'(브이)자로 반등시켰다.
양사 간 동맹이 20년 가까이 원만하게 유지된 것도 전 세계 비즈니스 업계에서 이례적인 일로 평가된다.
하지만 최근 양사의 위상은 과거와 사뭇 달라졌다. 19일 기준 시가총액은 닛산이 4조2천439억엔(약 42조6천억원)으로 르노의 174억6천500만유로(약 22조4천억원)의 2배에 가깝다.
한때 경영난으로 르노의 도움을 받기는 했지만 과거 '기술의 닛산'으로 불릴 만큼 기술력에서는 외려 닛산이 르노를 앞선다는 게 자동차업계의 일반적인 평가다.
이런 상황에서 닛산으로서는 르노가 자신을 인수하려는 것을 자존심상 용납할 수 없었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곤 회장의 비위에 대한 제보가 닛산자동차 내부에서 나왔다는 점은 바로 이런 정황을 시사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자동차산업이 국가경제에 미치는 파급력 때문에 프랑스와 일본 정부까지 막후에서 움직였을 것이란 분석도 있다.
자동차산업은 1·2·3차 협력업체로 이어지는 방대한 산업 생태계와 그로 인한 고용 창출 효과 등으로 중요성이 큰 산업이기 때문이다.
다만 자동차업계의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고, 자율주행차나 전기차, 수소전기차 등 다양한 신기술 투자에 많은 비용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양사가 동맹 체제를 유지할 거란 전망도 많다.
실제 르노-닛산-미쓰비시 동맹은 올해 상반기 폭스바겐그룹을 제치고 글로벌 자동차업계에서 생산 1위에 올랐는데, 여기에는 3사 동맹의 효과가 절대적이었다.
또 자동차산업의 특성상 생산 규모가 커질수록 부품 조달 등에서 단가를 낮출 여지가 확대된다.
강화되는 환경 규제에 따른 배기가스 배출 기준 충족이나 자율주행차, 커넥티드카, 전기차, 수소전기차 등 각종 신기술이 쏟아지면서 자동차업체가 투자해야 할 비용도 천문학적으로 커지고 있다.
중국이나 유럽, 북미 등 시장에 따라 소비자들의 차량 선호나 자동차 문화가 제각각이어서 단일 플랫폼으로 모든 시장에 대응하기 어렵다는 점도 동맹 체제의 강점이다.
요컨대 '규모의 경제'가 가진 장점이 명백한 상황에서 섣불리 동맹 관계를 깨뜨리기에는 르노나 닛산 모두 부담이 크다는 것이다.
브뤼노 르메르 프랑스 재정경제부 장관과 세코 히로시게(世耕弘成) 일본 경제산업상이 20일 성명을 내고 "프랑스와 일본 간 산업협력의 가장 위대한 상징 중 하나인 르노와 닛산의 동맹을 강력히 지지한다"고 밝힌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산업 특성상 자동차는 규모의 경제를 통한 비용 절감의 효과가 크고, 특히 최근에는 신기술이나 환경 규제 등으로 연구개발에 막대한 투자가 필요해졌다"며 "르노나 닛산의 동맹은 여전히 양사 모두에 절실한 문제"라고 말했다.
◇ 르노삼성차에도 후폭풍 불까
이번 사태로 르노삼성차에도 불똥이 튈지도 관심이다. 르노삼성차 부산공장이 생산하는 자동차의 약 50%는 닛산의 북미 수출형 중형 스포츠유틸리티차(SUV) '로그'다.
부산공장의 연간 생산능력은 27만대 수준으로 알려졌다.
르노삼성차는 르노그룹이 지분 79.9%를 가진 대주주로, 닛산과는 직접 연관이 없지만, 르노-닛산 얼라이언스를 지렛대 삼아 로그 생산을 일감으로 확보했다.
문제는 르노-닛산 얼라이언스에서 곤 회장의 영향력이 매우 컸다는 점이다. 곤 회장은 르노 수석부사장을 하다가 2001년부터 닛산 사장 겸 최고경영자(CEO)를 맡았고, 2005년에는 르노 사장 겸 CEO에 올라 양사의 CEO직을 한꺼번에 수행했다.
곤 회장이 곧 르노-닛산 얼라이언스의 핵심이었던 셈이다.
2013년 르노삼성차가 로그 생산 일감을 따내는 데도 곤 회장이 어느 정도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로그 생산계약은 내년 9월 만료될 예정이다. 르노삼성차로서는 이번 사태가 아니더라도 르노의 다른 글로벌 생산공장들과 생산성, 품질 등을 두고 경쟁해 새 일감을 따내야 하는 상황인 셈이다.
르노삼성차는 이미 르노와 이를 두고 협상을 하고 있다.
르노삼성의 일감 감소는 부산 지역경제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다만 이번 사태가 아니더라도 르노삼성차 부산공장이 로그를 계속 생산하기는 힘들 것이란 관측도 있다. 닛산이 로그 생산을 위탁한 것은 당시 닛산의 생산능력이 부족했기 때문인데 지금은 직접 생산할 수 있는 생산능력을 갖췄다는 것이다.
르노삼성차 관계자는 "곤 회장의 닛산 경영 퇴진으로 당장 르노삼성차의 경영에 미치는 영향은 없다"며 "르노-닛산은 튼튼한 동맹 관계이고 양사에서도 동맹을 유지하겠다는 방침을 공개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르노와 닛산 간 갈등은 이미 수년 전부터 불거져 나왔던 문제"라며 "앞으로 갈등의 골이 깊어진다면 지금처럼 긴밀한 동맹이 아닌 더 느슨한 형태의 동맹, 즉 공동경영이 아닌 기술 협력 수준의 동맹으로 전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선임연구위원은 "르노-닛산 얼라이언스에 균열이 생기면 르노삼성차에도 좋을 것은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sisyph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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