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티풀 데이즈' 감독 "시스템에 속하지 않은 경계인에 관심"

입력 2018-11-22 12:02   수정 2018-11-22 14:02

'뷰티풀 데이즈' 감독 "시스템에 속하지 않은 경계인에 관심"
"이나영,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른 매력 발산"


(서울=연합뉴스) 조재영 기자 = 영화 '뷰티풀 데이즈'의 윤재호(38) 감독은 지난달 중순 프랑스를 국빈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참석한 엘리제궁 국빈만찬에 참석했다.
"부산영화제 개막 다음 날, 메일을 열어보니까 엘리제궁에서 초청장이 왔더라고요. 저는 당연히 스팸 메일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알아보니까 진짜 맞더라고요. 제 인생에 언제 두 나라 대통령을 만날 수 있을까 싶어서 사비를 들여갔죠.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 등 문화인들과 프랑스 정치인들이 많이 참석하셨더라고요."
윤 감독이 프랑스 정부로부터 초청장을 받은 데는 이유가 있다. 그는 낭시 국립보자르미술학교 등 프랑스 학교 3곳에서 미술과 사진, 영화를 공부했다.
이후 2009년 중편 '어둠속에서'를 시작으로 다큐멘터리 '북한인들을 찾아서'(2012), 단편 '돼지'(2013)로 주목받았다. 2016년에는 단편 '히치하이커'와 다큐멘터리 '마담B' 2편이 칸국제영화제에 초청돼 이름을 알렸다.

최근 광화문 한 카페에서 만난 윤 감독은 '중세풍'의 프랑스 국빈만찬을 떠올리며 "제 삶에 기억될 만한 일이었다"면서 웃었다.
그는 부산에서 대학을 다니다가 2001년 스물한살 때 프랑스 낭시로 갔다.
"그 당시 많은 20대가 그랬던 것처럼,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어디로든지 가고 싶었죠. 처음에는 낭시가 프랑스인 줄도 몰랐어요. 인터넷에 뜬 낭시 사진만 보고 선택했거든요. 불어도 현지에 가서 배웠죠."
그렇게 무작정 찾아간 프랑스에서 15년 가까이 지냈고, 그곳에서의 삶은 작품의 토양이 됐다. 그 역시 한국과 프랑스 사이에 놓인 경계인으로 살아왔기에 탈북민, 중국 교포(조선족) 등 현지에서 만난 '경계인'에게 저절로 눈길이 갔다.

21일 개봉한 그의 장편 상업영화 데뷔작 '뷰티풀 데이즈'(21일 개봉)도 한 탈북 여성의 고통스러운 삶을 14년 만에 만난 아들의 눈으로 반추한 작품이다.
"파리에서 아르바이트하면서 민박집에 묵었어요. 그때 민박집 아주머니가 중국에서 온 조선족이셨죠. 불법체류자로 살고 계셨는데, 8∼9년째 중국에 두고 온 아들을 보지 못하셨죠. 그분과 인연을 통해 어떤 시스템에 속하지 않는 사람들에 관해 관심을 갖게 됐어요."
윤 감독은 민박집에서 만난 조선족 아주머니의 사연을 담은 단편을 찍었고, 그 뒤 아들을 찾으러 중국에 갔다가 다양한 탈북민, 중국 교포 등을 만나면서 다큐멘터리 '마담 B'를 찍었다. 이 과정에서 극영화 3부작을 기획했고, '뷰티풀 데이즈'가 첫 번째 영화다.

1편이 엄마와 아들의 이야기라면, 2편은 한국에 정착한 탈북 여성 이야기, 3편은 한국에 온 탈북 남성이 딸을 찾으러 가는 이야기라고 윤 감독은 귀띔했다. 등장인물들은 모두 탈북민이지만,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는 가족, 포용, 관용, 화해와 같은 근본적인 질문이다.
"제가 프랑스에서 살 때 꽤 오랫동안 가족을 만나지 못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기울어진 것 같아요. 또 제 작품은 대다수가 여성 이야기인데, 엄마에 대한 연민이 담겨있는 듯합니다. 자신에게 불리한 환경 속에서도 꿋꿋하게 헤쳐나가고 극복하는 여성들을 보면 제 엄마처럼 느껴지거든요. 무엇보다 제가 던지는 질문은 인간과 사회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질문이에요. 인간에 대한 기본 권리만 잘 존중된다면 괜찮은 사회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죠."
'뷰티풀 데이즈'는 한 여성이 겪은 엄청난 고통을 굉장히 덤덤한 시선으로 그린다. 대사가 거의 없을뿐더러 감정의 진폭도 크지 않다. 극 중 엄마(이나영)는 14년 만에 자신을 찾아온 아들 젠첸(장동윤)을 마치 어제 본 사람처럼 '밥 먹고 가라'고 무심히 말한다. 우리가 흔히 예상했던 엄마의 모습은 아니다.

윤 감독은 "관객에게 어떤 감정을 강요하고 싶진 않았다"면서 "극 중 엄마의 경우 많은 시련을 겪었지만 그런 감정을 속으로 삼키고 내면으로 지탱하되, 자식에게는 일직선인 감정선을 표현하도록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 영화는 제작비 3억2천만원에, 15회차 촬영으로 완성된 한국-프랑스 합작영화다. 한국에서 촬영하고 후반 작업은 프랑스에서 했다. 저예산 영화지만, 이나영이 6년 만에 복귀작으로 선택하면서 제작에 탄력을 받았다.
윤 감독은 "이나영 씨는 위나 아래, 옆에서 보는 각도, 조명의 방향에 따라 각각 다른 느낌을 주는 굉장히 독특한 매력의 배우"라며 "제가 찾고 있던 뭔가 달라 보이는 엄마 느낌을 주는 배우였다"고 말했다.
윤 감독은 차기작으로 호러영화를 준비 중이며 현재 캐스팅 단계에 있다. 그는 "항상 최고만을 요구하는 우리 사회에 질문을 던지고, 주인공 스스로 가치관을 찾아가는 영화"라고 소개했다.

fusionjc@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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