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계 대모' 박성연 "야누스 50년, 60년 이어가길"

입력 2018-11-22 13:52  

'재즈계 대모' 박성연 "야누스 50년, 60년 이어가길"
박성연이 이끈 국내 첫 토종 클럽 야누스 40주년
23일 기념 공연…박성연 투병 중 특별 무대·재즈 뮤지션 총출동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계속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죠. 후배 말로에게 무거운 짐을 지워줬지만 '야누스'가 50년, 60년 이어가길 희망해요."
국내 첫 토종 재즈클럽이자 '한국 재즈 산실'로 불리는 야누스가 23일 40주년을 맞는다. 3년 전까지 이곳을 이끌어온 '재즈계 대모'인 보컬리스트 박성연(63)은 "벌써 40년이 됐네란 생각이 든다"라고 첫 마디를 뗐다. 목소리는 낮고 거칠었지만, 말투의 유쾌함은 30주년 인터뷰 때 그대로였다.
박성연이 1978년 11월 23일 순댓국집이 즐비하던 신촌 시장 골목에 문을 연 야누스는 대학로, 이화여대 후문, 청담동을 거쳐 지금의 위치인 서초구 서초동으로 옮겨 명맥을 유지했다. 박성연은 2015년 운영난과 지병 악화로 운영에서 손을 떼고 후배 재즈 보컬 말로에게 클럽을 물려줬다.
지난 21일 전화로 만난 박성연은 서울 은평구의 한 요양 병원에 입원 중이었다.
건강은 괜찮으냐는 물음에 "내가 지금 걷지는 못한다"면서도 "오전 5시 30분에 일어나 7시에 아침 식사를 한다. 하루를 일찍 시작한다"고 웃으며 말했다.
그가 평생을 바친 야누스는 재즈 불모지에서 무대가 없던 뮤지션들이 모여든, 기회의 공간이었다. 1세대 재즈 뮤지션부터 지금 세대까지 수많은 음악인이 거쳐 갔다. 이곳이 '재즈 산실', 박성연이 '재즈계 산 역사'로 불리는 이유다.
"남들은 헌신이라 볼지 모르지만, 그저 제가 행복했어요. 금전적인 것 외엔 행복했죠. 절실하게 노래하고 싶었던 저나 후배들을 위한 무대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야누스는 꼭 필요했다고 믿어요. 그렇게 시작한 것이 재즈의 뿌리가 됐고, 산실이 된 거죠."
그는 "병원에 있으면서 기억이 자꾸 잊힌다"면서도 처음 신촌에서 문을 열 당시를 또렷이 기억했다.
"그곳이 그전에 화실이었나 봐요. 장소를 보러 갔더니 그림 그리는 종이들이 바닥에 흩어져 있었죠. (로마신화의 신) 야누스란 상호는 번역 문학가인 문일영 선생이 제안했고요. 여러 분 의견을 듣고 메모를 했는데, 야누스가 '시작의 신, 보호의 신'이거든요. 두 개의 얼굴이란 뜻보다 '과거와 미래를 본다'란 의미가 마음에 들었죠."


재즈에 빠져든 것은 중학교 시절이었다. 10살 위 오빠가 음악을 들었고, 오빠가 없으면 그 방에서 친구와 음악을 들었다. 그땐 재즈가 뭔지도 몰랐다.
그는 "처음엔 무슨 곡인지도 모르고 들었다"며 "폴 앵카의 '다이애나'(Diana)를 비롯해 고교 시절까지 정말 많은 노래를 듣고 익혔다. 고등학교 때 오락 시간이 되면 친구들이 노래를 부르라고 해 팝을 부르곤 했다"고 떠올렸다.
고교를 졸업한 그는 친구의 제안으로 미 8군 무대 가수를 뽑는 오디션에 응모했다.
"고교 시절 서울대에 가고 싶었어요. 집안에 돈이 없는데 학비가 싸니. 그런데 들어갈 때 보니 공부를 안 해서 시험을 봐도 소용없겠더라고요. 하하. 노느니 해보자는 심정으로 미 8군 무대에 응모해 '저스트 인 타임'(Just In Time)을 불렀는데 붙은 거예요. 그 시절 '스타더스트'(Stardust)처럼 어려운 곡을 부르고 싶어했던 기억이 나요."
음대에서 작곡을 전공한 그는 노래를 계속하고 싶어 야누스를 열었지만, 긴 세월 경제적 어려움과 싸워야 했다. 여러 곳을 옮겨 다닌 것도 그런 이유다.
"건물주가 세를 올려서였죠. 한번은 병원 건물 지하에 있었는데 나가라고 했고요. 한번은 경영난으로 남자 두 분이 투자했는데, 상업적으로 운영하려 해 항의하면서 나왔고요."
2012년 그는 운영 자금을 마련하고자 1950년대 후반부터 모은 LP를 경매로 처분해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그중 아까운 앨범이 무엇이었느냐고 묻자 "다 아깝다"는 말이 돌아왔다.
"어렸을 때 처음 샀던 음반도 있었고 줄리 런던, 존 콜트레인, 엘라 피츠제럴드…. 그땐 돈이 없어서 할 수 없었어요. 제가 몇장을 팔아먹었는지도 모르겠네요. 하하. 좋아하는 재즈 뮤지션도 너무 많았어요. 빌리 홀리데이, 엘라 피츠제럴드, 사라 본…."
'재즈와 결혼했다'는 세간의 평에 대해선 "결혼할 뻔한 사람도 더러 있었다"며 손사래를 쳤다. "재즈는 제 운명이고 생명"이라고 말을 보탰다.


그는 23일 오후 6시 30분 열리는 '재즈클럽 야누스 40주년 기념 공연' 무대에 오른다. 휠체어를 타고 무대에 올라 '인생곡'들을 부르며 1부 특별 무대를 꾸민다.
그는 재즈 피아니스트 임인건이 1세대 재즈 뮤지션들과 2016년 발표한 앨범 '야누스, 그 기억의 현재'에서 부른 노래인 '길 없는 길'과 '바람이 부네요' 등을 선곡할 예정이라고 했다. 게스트로 나온 말로와 듀엣 무대도 선보인다.
2부는 잼 세션으로 꾸려진다. 재즈 1세대 뮤지션 김수열(색소폰), 최선배(트럼펫)를 비롯해 현재 국내 재즈계를 이끄는 민경인, 오종대, 임미정, 고희안, 김가온 등 21명의 뮤지션이 무대에 오른다. 이들은 사전에 순서와 레퍼토리 등 어떤 약속 없이 무대에 올라 즉흥 연주를 펼칠 예정이다.
그는 클럽을 이어받은 말로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묻자 잠시 숨을 골랐다.
"전 재즈계에서 말로를 제일 믿어요. 다른 사람들이 가요를 부르면 그냥 가요지만, 말로가 내는 모든 소리는 재즈죠. 적자로 운영하다가 손을 털고 보니 제 빚이 1억원이더라고요. 제겐 무척 버거운 빚이었는데, 예전에 사둔 작은 땅을 팔아 갚고 보니 몇푼 안 남더라고요. 말로에게 무거운 짐을 지워줬지만, 잘 해내리라고 믿어요."
mimi@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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