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이 없는데 위법?" 규정공백 속 가상화폐·P2P업계 철퇴

입력 2018-11-25 07:19  

"법이 없는데 위법?" 규정공백 속 가상화폐·P2P업계 철퇴
'가상화폐 펀드' 만든 지닉스·'트렌치' 내놓은 피플펀드, 檢 수사 앞두고 당혹
"법·전례 없는 탓에 위법성 자체판단 어려워"…P2P·가상화폐 계류법안만 10여건

(서울=연합뉴스) 김경윤 기자 = 정부와 국회의 외면에 P2P(개인간 거래)금융업과 가상화폐 거래소를 규제할 명확한 법이 제정되지 않으면서 업계가 혼란에 빠져들고 있다.
최근 가상화폐 거래소 지닉스와 P2P금융업체 피플펀드가 이른바 '업계 최초'로 새 상품을 내놨다가 연달아 금융당국의 철퇴를 맞고 검찰수사에 직면하게 됐다.
당장 해당 상품의 위법성이나 미비점을 업체가 자체적으로 판단할 법적 틀이 없다는 점이 문제의 단초가 됐다.
이 때문에 업권별로 관련 법이 제정돼야 한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25일 업계에 따르면 지닉스는 23일을 기점으로 입·출금을 비롯한 모든 서비스를 종료했다.
서버 운영을 26일 자로 중단하고 법인 폐업신청 절차도 밟을 예정이다. 정식으로 영업을 시작한 지 고작 반년만의 일이다.
지난 9월 국내 최초로 가상화폐 펀드를 만든 것이 화근이었다.
이 펀드는 투자자가 이더리움을 내면 ZXG 토큰을 제공하고, 모집한 이더리움으로 가상화폐공개(ICO) 프로젝트 등에 투자해 수익을 내는 식으로 설계됐다. 토큰 보유량에 따라 추후 이더리움과 ICO 코인을 제공한다.
기존 금융시장의 펀드와 유사하지만, 원화가 아니라 가상화폐를 기반으로 하고 ICO 코인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 다르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지난달 보도참고자료를 통해 해당 펀드가 자본시장법 위반 소지가 있다며 주의를 당부하고 검찰수사를 의뢰했다. 이에 지닉스는 펀드의 추가 모집을 취소하고 폐업 수순을 밟았다.
당국은 위법소지가 있었다고 하지만 지닉스 측은 법무법인에 자문해 적법하다고 판단하고 상품을 만들었다고 항변했다.
양측의 이런 시각차는 관련법 부재에 따른 혼란으로 풀이된다.
금융당국은 가상화폐 펀드가 '펀드'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만큼 금융투자상품으로 간주하고 자본시장법을 위반했다고 봤다.
하지만 국내에서 가상화폐가 증권에 해당하는지, 가상화폐 펀드가 금융투자상품인지는 정의된 적은 없다.
국제적으로도 가상화폐를 증권으로 정의할지 자산으로 볼지를 두고 의견이 분분한 상황이다.
지닉스 관계자는 "금전이 오가는 거래가 아니고 가상화폐만 오가서 증권법에 해당하지 않을 것으로 봤다"고 설명했다.
관리 감독의 주체도 불분명하다.
지닉스가 가상화폐 펀드를 만드는 시점부터 폐업을 결정할 때까지 금융당국의 직접적인 관여는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 관계자는 "지금까지 당국에서 연락받은 바가 없다"며 "금융당국에서는 자신들이 관리기관이 아니라서 직접 연락할 일이 아니라고 했다"고 말했다.



P2P업계 2위 업체인 피플펀드도 새로운 상품을 운용하다가 별반 다르지 않은 상황에 놓였다.
피플펀드는 개인 채권을 기초자산으로 잡고 선순위와 후순위로 상환 순서와 수익률을 달리 가져가는 구조화 상품인 '트렌치'를 업계 최초로 내놨다.
피플펀드 측은 개인투자자가 원금손실의 위험을 덜고 중수익을 거둘 수 있는 상품을 만들었다며 이를 주력상품으로 내세웠다.
당국은 이 복잡한 구조화 상품이 위법성 소지가 있다고 봤다. 개인채권 질권 중복설정이 문제가 됐다.
트렌치 상품을 내놓을 때 상환 예정인 기존 개인 채권도 포함했는데, 투자자 모집을 시작하는 시점부터 질권을 설정하면서 2∼3일씩 담보가 중복되는 사례가 발생한 것이다.
피플펀드는 올해 초 롤오버(만기연장)에 따른 중복담보에 대해 인지하고 6월께 이를 개선했다고 밝혔다.
이어 9월 금융감독원의 검사 당시 과거 피플펀드 트렌치 상품의 이중담보 문제가 지적되자 현재는 이중담보가 없다는 증빙자료를 제출하기도 했다.
피플펀드 관계자는 "사기 의도도 없었고 이로 인한 피해자도 없었다"며 "자체적으로 파악해 금감원 검사 이전에 해결했던 문제"라고 해명했다.
당국은 소명자료를 받아간 뒤 별다른 언질 없이 두 달 뒤에 돌연 피플펀드 트렌치에 사기성이 있다며 검찰에 수사 의뢰했다고 밝혔다.
금감원은 대부업법에 따라 P2P금융업체의 자회사인 대부업 법인만을 관리한다.
하지만 이는 P2P금융을 제대로 정의하지 못한 임시방편일 뿐이다. 대부업법이 차주 보호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만큼 P2P금융의 중요한 축인 투자부문은 법적 테두리에 들어와 있지도 않다.
금감원이 이번에 직접 피플펀드에 제재를 가하지 않고 수사 의뢰의 방식을 택하는 것도 이 때문으로 풀이된다.


업계에서는 결국 법제화가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관련 법이 없는 상황이다 보니 업체들이 제각기 법무법인에서 얻은 조언에만 의지하게 되고, 전례가 없는 새로운 상품을 취급하는 과정에서 이 같은 혼란이 거듭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현재 국회에는 P2P금융과 가상화폐 거래소 관련 법안 10여개가 계류 중이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국회에 발의된 P2P금융 관련 법안은 총 5건이다. 민병두, 김수민, 이진복, 박광온, 박선숙 의원 등이 차례로 대표 발의했다.
가상화폐 관련 법안은 이보다 더 많다.
제윤경, 박용진, 정태옥, 정병국, 채이배, 김선동 의원 등이 제각기 암호화폐, 가상통화, 암호통화 등으로 이를 정의하며 법안을 내놨다.
대부분 올해 초 가상화폐 급등락을 기점으로 나온 법안이지만 한 해가 다 가도록 진전이 없는 상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정확히 무엇이 가능하고 무엇은 하면 안 되는지에 대한 명확한 근거가 필요하다"며 "당국 눈치만 보다 보면 산업도 성장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heev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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