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치사 자료집 번역한 박찬승 교수 "지배정책사 사전처럼 활용되길"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강제동원에 관한 일련의 움직임은 일제가 펴낸 관찬 사서를 봐야 정확히 이해할 수 있어요. 신문이나 관보에도 법령에 관한 기사가 나오지만, 배경 설명이 없거든요. 전체적 맥락을 파악하려면 사서를 반드시 읽어야 합니다."
박찬승 한양대 사학과 교수가 최근 연합뉴스 기자와 만나 일제 지배정책사 연구에 필요하다고 강조한 서적은 '시정(施政) 25년사'와 '시정 30년사'.
시정 25년사는 일제가 조선 지배 25주년을 기념해 1935년 간행한 책이고, 시정 30년사는 5년 뒤인 1940년에 제작한 자료집이다.
두 책은 일제가 조선 통치를 위해 시행한 각종 정책과 법령을 자세히 기록해 학계에서 중요성이 인정됐지만, 정작 번역은 되지 않았다. 원서 영인본도 시정 30년사만 출판된 상태였다.
이에 박 교수는 2012년 대학원생이던 김민석 한양대 강사, 최은진 국가보훈처 학예연구사, 양지혜 씨와 함께 번역을 시작해 윤독과 교열을 거쳐 6년 만에 3권짜리 '국역 조선총독부 30년사'(민속원 펴냄)를 내놨다.
박 교수는 "사학계에서 독립운동사 연구는 활발하지만, 지배정책사 연구는 상대적으로 부진하다"며 "지금까지 학자들이 주로 참고한 책이 1973년 일본에서 간행된 뒤 1986년 역서가 나온 '일본 제국주의의 조선지배'였다"고 설명했다.
그는 "강의를 하거나 논문을 쓸 때 시정 25년사와 시정 30년사 번역본이 없어 아쉬워하는 연구자가 많았다"며 "조선총독부 30년사를 보면 무수한 논문거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역설했다.
시정 30년사는 앞쪽에 시정 25년사를 축약해 싣고, 1935년 이후 5년간 벌어진 일을 상세하게 정리해 뒤쪽에 수록했다.
제7대 조선총독인 미나미 지로(南次郞)가 시정 30년사 간행을 주도했는데, 당시 일제는 전시에 돌입해 강제동원 정책을 펼쳤다.
박 교수는 "미나미 총독이 욕심이 많았던 인물 같다"며 "시정 30년사를 통해 이주나 관 알선 형태로 강제동원이 이뤄진 과정을 면밀히 살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일본어에 능숙한 역사학자들이 적지 않지만, 시정 25년사와 시정 30년사에는 현대에 사용하지 않는 생소한 용어가 많아 정작 읽으려고 하면 속도가 잘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천황이 내는 칙어나 담화문이 특히 어렵더라고요. 자연과학이나 금융처럼 전문적인 분야에 대한 번역도 까다로웠어요. 인명이 나오면 누구인지 하나하나 확인했습니다. 중요한 인물 정보는 따로 수록하고, 어려운 용어는 각주를 달아 설명했습니다."
박 교수는 조선총독부 30년사가 지배정책사 사전처럼 활용되기를 희망한다면서 식민사학에 관한 연구가 더 활성화해야 한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그는 "국내 역사학계가 식민사학의 뼈대는 비판했지만, 일제 역사학자들이 펼친 구체적 내용은 분석하지 못했다"며 "식민사학의 정수를 담은 책인 '조선사대계'조차도 지금까지 번역되지 않았다"고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번역서는 학교에서 교수 평가를 할 때 논문이나 단행본보다 점수가 낮아 학자가 번역 작업에 뛰어들기 어려운 실정이다.
박 교수는 "대학원생들과 정기적으로 일본어 자료를 강독하고 번역을 하고자 하는 책도 있지만, 엄두가 나지 않는다"며 "지원을 받아 프로젝트 형식으로 하지 않으면 결과물을 내놓기 어렵다"고 말했다.
근대사를 전공한 박 교수에게 내년이면 100주년이 되는 3·1 운동과 임시정부에 관한 학계 연구 상황을 묻자 "3·1 운동은 생각보다 연구가 미흡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는 "해방 직후와 50주년이었던 1969년에 잠시 조명을 받은 뒤에는 연구가 많이 이뤄지지 않았다"며 "3·1 운동 1차 사료는 판결문이라고 할 수 있는데, 양이 엄청나서 전체가 번역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3·1 운동 생존자가 없고, 북한에 남은 재판기록은 망실됐을 가능성이 커서 연구가 어렵다"며 "재판 과정에서 피고인이 주동자를 숨겼을 수도 있어서 다양한 측면에서 자료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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