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34년전 도쿄전화국 화재 후 예방책 도입…국내선 통신망 사고 되풀이
전문가들 "IT분야 공공성 확보 필요…안전 분야 투자 의무화해야"
(서울=연합뉴스) 홍지인 기자 = KT 아현지사 화재로 서울 서대문·용산·마포 일대의 일상이 사실상 마비된 사고는 현대 대도시처럼 고도로 집적된 공간에서 통신시설의 장애가 얼마나 큰 혼란을 초래하는지를 새삼 실감케 했다.
이번 화재를 계기로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근간인 정보기술(IT) 기반 시설의 방재 대책을 확고히 수립해 유사 사고의 재발을 예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이웃 일본에서는 지난 1984년 전신전화공사(NTT) 도쿄도 세타가야(世田谷) 전화국에서 회선 증설 공사 도중 불똥이 지하 케이블로 옮겨붙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화재로 관내 전화 8만9천여 회선이 일제히 끊겼다. 또 미쓰비시(三菱)·다이와(大和) 등 일부 은행의 온라인시스템이 작동을 중단했고 경찰·소방 등 행정관청 연락망도 불통이 되는 등 한바탕 혼란이 일어났다.
불은 발생 17시간 만에 진화됐지만, 화재로 끊겼던 통신망이 다시 복구되는 데는 9일이 걸렸다.
당시 화재를 계기로 일본은 지하통신구 300㎞ 전 구간에 집중 감시장치를 설치했다. 또 통신구의 케이블을 난연 재질로 바꾸고 화재 확산을 막는 방호벽을 설치하는 등 조처도 단행했다.
이후에도 일본에서는 지진과 폭우 등 자연재난에 따른 통신망 유실 사고는 이따금 일어났지만, 세타가야 전화국 화재처럼 큰불이 일어나 대도시 통신망이 마비되는 사태는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유사 사고가 되풀이 되고 있다.
일본 세타가야 전화국 화재 사고 10년 후인 1994년 서울 종로5가 통신구에서 불이나 선로 32만1천회선이 손상되고 방송사 송출이 중단되는 대형 사고가 발생했다.
통신구 화재는 같은 해 11월 대구, 2000년 2월 여의도 등 그 뒤로도 심심찮게 일어나 통신망 마비를 초래했다.
비근한 예로는 공공시설은 아니지만 지난 2014년 경기도 과천 삼성SDS 건물에서 불이 나 삼성카드[029780]와 삼성생명[032830] 등 일부 금융 서비스가 중단됐고 인터넷 전화가 한때 끊기기도 했다.
또 재난·재해는 아니지만, 클라우드 서비스를 제공하는 아마존웹서비스(AWS)의 일부 서버가 지난 22일 오전 한때 장애를 일으키면서 웹사이트와 오프라인 결제 등 광범위한 피해가 일어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사회기반시설 가운데 정보기술(IT)이 차지하는 비중이 갈수록 커지는 만큼 사회에 큰 혼란을 초래할 관련 시설의 재난·재해를 예방할 수 있는 당국의 관리·감독 수준도 그에 상응하는 수준으로 올라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안종주 사회안전소통센터장은 "IT분야에 사고가 생겼을 때 사회에 끼치는 파급력은 20~30년 전보다 지금이 몇십배는 더 크다"라며 "IT는 수도·가스·전기 등처럼 공공재 성격이 있기 때문에 일정 금액 이상을 반드시 안전에 투자하도록 법으로 강제하거나 유도하는 등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류상일 동의대 소방방재행정학과 교수는 "통신은 마비되는 순간 인터넷과 통신·뱅킹 등에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으므로 국가 기반산업에 준하게 관리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국가적으로 통신망 이원화 등 백업을 유도하고 케이블 등이 밀집된 곳에서 발생할 수 있는 전기 화재 대책을 집중적으로 점검하고 관리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참여연대 김주호 민생팀장은 "만약 5G가 도입돼 자율주행차가 거리를 달리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사태가 벌어졌다면 거대한 참사가 벌어졌을 것"이라며 "단순한 화재 사고를 넘어 현대사회에서 통신 분야의 기술혁신에 앞서 공공성 확보가 왜 필요한지 여실히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분석했다.
이영주 서울시립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모든 통신망을 전부 이중화할 수 없으므로 사고 이후의 기능을 복원할 수 있는 기술적 절차와 대처 방법 등에 대해 면밀한 계획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ljungber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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