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 배급사 체제 지각변동 올까
(서울=연합뉴스) 조재영 김승욱 기자 = 최근 영화계가 두 남자의 행보에 주목하고 있다.
영화사월광을 이끄는 윤종빈 감독과 '신세계'(2013) '무뢰한'(2014) '아수라'(2016) 등을 만든 사나이픽처스의 한재덕 대표다.
영화사월광과 사나이픽처스는 '군도:민란의 시대'(2014)를 시작으로 '검사외전'(2016) '보안관'(2017) '공작'(2018) 등을 공동 제작했다.
두 사람은 최근 코스닥 상장사인 도자기업체 행남사와 손잡았다.
윤 감독과 한 대표는 유상증자에 참여해 행남사의 공동 2대 주주가 됐고, 행남사는 영화사월광과 사나이픽처스 지분을 각각 60%씩 인수해 두 회사를 자회사로 뒀다.
윤 감독은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그동안 여러 기업에서 콘텐츠업을 함께 하고 싶다는 제안을 많이 받았다"면서 "그 중 행남사를 선택했다"고 말했다.
윤 감독은 "두 영화사는 기존 대로 영화, 드라마를 제작하고, 행남사가 투자배급을 맡는 구조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행남사는 내년 1월 4일 열리는 주주총회에서 상호를 변경하고, 투자배급업에 뛰어들 것으로 보인다.
시장 일각에서 두 영화사의 코스닥 우회상장 가능성이 제기된 데 대해 윤 감독은 "우회상장을 할 수도 없고, 그렇게 할 이유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영화계는 유력 제작사와 흥행 감독, 신생 투자배급사가 손을 잡고 향후 시너지를 낼지 주목하고 있다.
영화계 관계자는 "행남사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영화업계에 들어왔는지, 어느 정도 의지를 갖추고, 얼마를 투자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인 만큼 좀 더 행보를 지켜봐야 알 것 같다"고 말했다.
◇ 투자배급업계 춘추전국시대…신생업체 잇따라 진출
올해 들어 행남사뿐만 아니라 메리크리스마스,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네이버 웹툰, 카카오페이지 등이 영화업에 뛰어들었다.
유정훈 전 쇼박스 대표가 중국 화이브러더스의 투자를 받아 설립한 메리크리스마스는 내년 1월 9일 첫 투자배급작 '내 안의 그놈'을 선보인다. 현재 '양자물리학' '로망' 등도 제작 중이며, 240억 원 규모 SF 우주영화 프로젝트도 추진 중이다. 영화뿐만 아니라 게임, 웹툰 등을 아우르는 대형 프로젝트로 알려졌다.
화장품 브랜드 AHC를 1조원에 매각한 이상록 전 카버코리아 회장이 투자한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도 라인업을 가다듬고 있다. 안재홍·강소라 주연의 '해치지 않아', 중견 배우 정진영의 연출 데뷔작인 '클로즈 투 유' 등 3~4편을 준비 중이다.
바이오기업 셀트리온홀딩스가 세운 셀트리온엔터테인먼트는 현재 제작 중인 '자전차왕 엄복동'을 내년 상반기에 첫 배급 작품으로 선택할 가능성이 있다.
◇ 4대 배급사 중 롯데 새 맹주로 떠올라
그동안 국내 영화계는 CJ엔터테인먼트, 롯데엔터테인먼트, 쇼박스, 뉴(NEW) 등 4대 투자배급사가 주도해왔다. 특히 CJ의 독주 체제가 오랫동안 이어져 왔다.
그러나 올해는 구도가 달라졌다.
영화진흥위원회가 올해 1~10월 전체영화 배급사별 관객점유율을 집계한 결과, 롯데가 17.4%로 1위를 차지했다. '신과함께' 1, 2편과 '완벽한 타인' 등을 흥행시키며 새 맹주 자리를 차지한 것이다.
2위는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16.5%), 3위는 CJ(13.3%), 4위는 뉴(10.6%) 등이다. 쇼박스는 9위(5.0%)에 머물렀다.
주요 배급사의 올해 흥행 성적은 신통치 않은 편이다.
CJ의 경우 '공작' '탐정:리턴즈' '그것만이 내 세상'을 제외한 나머지 영화들은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했다. CJ ENM은 지난달 정기인사에서 정태성 영화사업부문장을 글로벌지원 담당임원(부사장 대우)으로 보직 변경했다. 현재 영화사업 부문은 허민회 대표가 직접 챙기고 있다.
쇼박스는 메리크리스마스 대표로 자리를 옮긴 유정훈 전 대표와 에이스메이커 대표로 이직한 정현주 전 투자제작본부장 등 10여명의 직원이 이직함에 따라 전열을 재정비하는 중이다.
뉴는 올해 창립 10주년을 맞아 대작들을 내놨지만, 220억원을 들인 '안시성'은 손익분기점을 넘는 데 그쳤고 '염력' '창궐' 등 기대작들은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다.
이에 따라 각 배급사는 '스윙키즈'(뉴), 'PMC-더 벙커'(CJ), '마약왕'(쇼박스), '범블비'(롯데) 등 연말 개봉을 앞둔 대작들에 사활을 거는 분위기다.
◇ 투자배급업계 지각변동일까…관건은 콘텐츠
기존 메이저 배급사들의 위상이 예전같지 않은 가운데 신생업체들이 잇따라 도전장을 내밀면서 기대와 우려가 교차한다.
제작사들은 영화계에 돈이 몰리면 제작 기회가 늘 것으로 보고 반기는 분위기다. 또 신생 배급사의 활약에 따라 배급업계에 지각변동이 일 가능성도 제기된다.
한 영화계 인사는 "좋은 콘텐츠만 있다면 성공할 확률이 높다"면서 "비(非) 대기업 계열 영화사로 2008년 시장에 진입해 메이저 배급사가 된 뉴(NEW)의 성공사례처럼 제2, 제3의 뉴가 나올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반면, 국내 영화시장이 수년째 관객 2억1천만 명 선에서 정체된 가운데 새로운 플레이어들이 늘어나면 제살깎아먹기식 경쟁이 펼쳐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한 배급사 관계자는 "제작사 역시 시장에서 경쟁하는 작품이 많아지면 성공 확률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배급사 관계자도 "라인업 경쟁으로 불필요한 콘텐츠가 늘어날 경우 오히려 경쟁력이 떨어져 공멸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영화계 인사는 "'돈이 좀 되겠네' 하고 단순하게 접근했다가는 큰일 날 수 있는 곳이 영화업계"라며 "신생업체들이 메이저로 진입할지, 아니면 그대로 주저앉을지는 몇 년 내 판가름 날 것"이라고 관측했다.
성패는 결국 콘텐츠에 달렸다는 게 공통된 목소리다.
비록 극장 관객은 정체돼 있지만, IP TV(인터넷TV) 등 부가매출 시장 규모가 점차 커지고 있어 콘텐츠 경쟁력만 있다면 성공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는 것이다.
영화계 관계자는 "중저예산 영화와 대작 영화들이 다양하게 나올 수 있도록 포트폴리오를 잘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이는 개별 업체만의 문제가 아니라 업계 전체가 고민해야 할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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