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민·재외동포·빈곤국·북한동포 상대로 나눔과 봉사
"70년대 해외근로자 생각해야"…"이주민 배려가 공공외교"
(서울=연합뉴스) 이희용 기자 = 이주노동자와 다문화가정, 재외동포, 저개발국 빈곤층, 그리고 북한 동포까지 두루 살피며 나눔과 봉사에 앞장서는 사람이 있다. 아무리 성직자라고 해도 웬만한 원력(願力)과 자비심이 아니고서는 힘든 일이다. 부천 석왕사 주지 영담 스님이 주인공이다.
영담 스님은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상임공동대표 자격으로 28일 평양을 방문한다.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대표단의 방북은 6년 만이다. 내년 1월에는 국제구호단체 하얀코끼리 단원들과 함께 미얀마에서 봉사활동을 펼칠 계획이다.
석왕사는 지난달 다문화 나눔장터를 열었는가 하면, 그가 이끄는 재외동포교육진흥재단은 지난 17∼18일 미국 애틀랜타 한국교육원을 방문해 교사 연수를 진행했다.
영담 스님은 1966년 12살의 나이로 출가한 뒤 범어사 강원과 동국대 불교대학을 거쳐 1982년부터 석왕사 주지를 맡고 있다. 부천신문 발행인, 대한불교조계종 중앙종회 의원과 총무부장, 불교방송 이사장, 불교신문 사장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영남학원(영남중·부산정보고) 이사장도 겸하고 있다.
평양으로 떠나기 하루 전인 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계동길 백상정사에서 스님을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 평양에 가는 건 얼마 만인가.
▲ 윤이상평화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던 2014년, 윤이상음악연구소 창립 30주년 기념음악회에 초대된 것이 마지막이었다.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은 2012년 10월 이후 처음이다. 지금까지 평양과 개성을 포함해 30여 차례 방북했는데 불교계에서는 가장 많을 것이다.
-- 이번에 가는 목적은 무엇인가.
▲ 우리가 평양 조선적십자병원에 수술실과 수액공장 등을 지어줬는데 그동안 연락과 지원이 끊겨 어떤 상태인지 모른다. 협력사업 현장의 실태를 점검하는 한편 대북 제재가 풀리면 곧바로 지원사업을 벌일 수 있도록 준비하려는 것이다. 3박4일간 머물며 북측 관계자들과 협의할 예정이다. 함께 상임공동대표를 맡은 최완규 신한대학교 탈분단경계문화연구원장과 상임위원인 박남수 전 천도교 교령 등 14명이 동행한다.
-- 올봄만 해도 금세 한반도에 평화체제가 구축되고 남북교류가 활발해질 것으로 기대됐으나 주춤한 기색이다.
▲ 정부 주도로 해야 할 일이 있고 민간이 나서야 풀릴 일이 있다. 민간 차원의 남북교류 물꼬를 과감히 풀고, 그 성과를 바탕으로 비핵화를 끌어내는 수순이 필요하다.
-- 이주민 돕기는 언제 시작했는가.
▲ 1995년 3월이다. 당시 시민단체와 종교계를 중심으로 부천외국인노동자의 집을 발족했다. 내가 초대 이사장을 맡고 석왕사에 사무실을 마련했다. 정보 제공, 인권 침해 상담, 한국어 교육, 무료 진료 등이 주 업무였다. 부천외국인노동자의 집은 2001년 근로자종합복지관으로 옮겨갔지만, 여전히 석왕사는 이주노동자의 아늑한 쉼터이자 든든한 벗이다. 부처님오신날 봉축 기간에 다문화 축제를 마련한 것이 올해 11년째고, 10월 중창 기념 개산대제(開山大祭) 때도 다문화 나눔 장터를 열고 있다.
-- 석왕사에는 외국인 스님도 있다고 들었다.
▲ 스리랑카 출신 스님 3명이 석왕사에 머물며 한국 불교를 공부하고 있다. 스리랑카 노동자를 모아 법회도 이끈다. 능타란 법명을 지어준 내 상좌도 한 명 있다. 조계종 승적과 한국 국적도 취득했는데 현재 미국에서 포교 중이다.
-- 국제구호단체를 설립한 동기는 무엇인가.
▲ 미얀마의 아웅 산 수치 여사가 이끌던 NLD(민족민주동맹) 한국지부가 부천에 있어 미얀마 이주노동자들을 돕다가 NLD도 지원하게 됐다. 2005년 미얀마 난민촌 교육 지원에 나선 것을 시작으로 해외 봉사에 눈을 돌렸고, 2012년 하얀코끼리를 설립했다. 미얀마 말고도 스리랑카, 베트남, 중국, 인도 등에도 지원과 교류사업을 펼치고 있다.
-- 내년 1월 미얀마에서는 어떤 활동을 펼치는가.
▲ 봉사단원 30명과 함께 부서진 집을 고쳐주고 위생교육 등을 실시할 예정이다. 컴퓨터, 학용품, 식품 등을 선물하고 동대문시장 상인들이 기부한 옷도 전달한다.
-- 재외동포교육진흥재단을 이끌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 대한적십자사 총재를 지낸 서영훈 이사장이 간곡히 부탁해 맡게 됐다. 민간에서도 재외동포 교육을 지원하자는 취지로 2001년 설립된 이 재단은 2009년 상임이사의 횡령 사건으로 문을 닫을 지경이었다. 2010년 이사장에 취임해 사재를 털고 후원금을 모아 재단을 살려놓았다. 재외동포 교과서와 교재 공급, 재외 한국어교육자 국내 초청 학술대회 개최, 온라인 e-러닝 한국어교육자 학습센터 운영, 현지 방문 교사 연수 등이 주요 사업이다.
-- 2016년 외국인과 재외동포 대상 한국어 교육을 통합하기로 한 조치는 어떻게 보는가.
▲ 2세, 3세가 현지화됐다고 해도 재외동포와 외국인은 엄연히 다르다. 동포에게는 정체성 교육도 함께 해야 한다. 세종학당 브랜드를 널리 알리는 게 필요하다 해도 교육 대상은 구분해야 한다. 교재 개발도 일원화하지 말고 교육부와 문화체육관광부가 나눠 맡는 게 바람직하다.
-- 애틀랜타 방문 연수의 성과를 말해 달라.
▲ 교육부 산하 애틀랜타 한국교육원, 주 정부에 등록된 애틀랜타 한국학교, 애틀랜타한인교회가 운영하는 냇가에심은나무 한국학교를 방문했다. 60여 명의 한국어 교사가 참석한 가운데 한국외대 허용 교수와 계명대 박성태 교수가 강의하고 토론을 펼쳤다. 현지 교사들의 건의 사항도 듣고 발전 방향을 모색했다. 나는 가지 못하고 재단의 상임이사인 신정아 총괄본부장이 참석했다.
-- 신정아 씨는 언제부터 재단에서 일했는가.
▲ 2007년 학력 위조 파문이 불거졌을 때 동국대 이사로 있던 내가 진상조사위원장이었다. 그때 알게 된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미얀마에서 가택연금 중인 아웅 산 수치 여사를 2012년에 만날 때 통역을 해줬고, 2015년 가수 조영남 씨가 석왕사에서 현대미술 전시회를 열었을 때 큐레이터를 맡았다. 미얀마 봉사에도 여러 차례 동행했다. 재외동포교육진흥재단에는 내가 요청해 2016년 8월 합류했다. 본인이 업무를 파악한 뒤 급여를 받겠다고 해서 1년간은 무보수로 일했다. 지난해 미국 방문 연수에도 참석했다.
-- 올해 들어 예멘인 난민 신청을 둘러싸고 격론이 일었다. 최근에는 인천의 다문화가정 중학생이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다가 추락사하는 일도 있었다. 사회 일각에서 일고 있는 반다문화 현상을 어떻게 보는가.
▲ 절에 가면 댓돌 옆에 조고각하(照顧脚下)라고 써놓았다. 발밑을 비춰보라는 뜻이다. 불과 한 세대 전에 우리는 독일로, 베트남으로, 중동으로 가서 힘들게 돈을 벌어 경제 대국의 꿈을 이뤘다. 이제 막 도움받던 나라에서 도움 주는 나라로 탈바꿈했는데, 자신을 돌아본다면 이주노동자를 차별하거나 박대할 수 있겠는가. 요즘은 실시간으로 전 세계와 SNS로 소통하는 시대다. 이주노동자가 사장에게 욕설을 듣거나 동료에게 놀림을 받으면 곧바로 고향의 친지들에게 하소연할 것이다. 반대로 따뜻한 말 한마디 듣거나 도움을 받으면 우리나라와 한국인을 칭찬할 것이다. 그게 바로 공공외교다.
--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종교나 민족을 따지지 않고 적극적으로 돕는 힘의 원천은 무엇인가.
▲ 불교 집안에 사섭법(四攝法)이 있다. 남에게 베푸는 보시섭(布施攝). 남을 이롭게 하는 이행섭(利行攝). 남에게 사랑스러운 말을 하는 애어섭(愛語攝), 남들과 함께 어울려 일하는 동사섭(同事攝)이다. 남과 나는 끊임없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남을 돕는 게 결국 나를 위한 것이다. 세계일화(世界一花), 즉 지구가 한 떨기 꽃인데 인류는 한 가족이 아니겠는가.
heey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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