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웅열의 소유·경영 분리 실험…'4세 후계구도'도 포기하나

입력 2018-11-29 09:01   수정 2018-11-29 09:05

이웅열의 소유·경영 분리 실험…'4세 후계구도'도 포기하나
'지분 0%' 이규호에 핵심사업 맡겨…경영수업 배려 '포석'



(서울=연합뉴스) 이승관 기자 = 이웅열 코오롱그룹 회장이 28일 전격적으로 경영일선 퇴진을 선언하면서 후계구도를 특정하지 않은 것은 한국 재벌그룹 문화에서는 아주 이례적인 것으로 평가된다.
아들인 이규호 전무가 올해 만 34세로 어리기 때문에 곧바로 그룹 경영권을 물려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경영수업을 할 시간을 충분히 주겠다는 복안으로 여겨지지만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재계에서는 63세의 나이로 총수로서는 비교적 젊은 축에 속하는 이 회장의 퇴진에 대해 '신선한 충격'이라는 긍정적인 평가와 함께 또 다른 배경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과 무책임한 결정이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최근 이 회장이 최근 마곡 신사옥 건립과 함께 '제3의 창업'을 외치며 그룹 경영에 대한 의욕을 보여왔다는 점에서도 이번 결정의 의외성을 더한다.
무엇보다 이번 퇴진 결정이 코오롱의 경영승계 구도가 아직 확실해지지 않은 가운데 이뤄진 점에 주목된다.
이 회장이 선친인 이동찬 전 명예회장으로부터 그룹을 넘겨받았던 1996년은 사실상 자신에 대한 승계 작업이 마무리된 이후였다.
그러나 창업주 이원만 전 회장의 증손자로 '4세대'인 이 전무는 현재 주요 계열사의 지분이 사실상 전혀 없는 상태다. 근래 이 회장 일가의 지분이나 지배구조에도 별다른 변화가 없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이 회장이 지주회사인 ㈜코오롱[002020]의 지분 49.74%를 갖고 있고, 이밖에 코오롱인더스트리와 코오롱생명과학[102940], 코오롱글로벌[003070], 코오롱인베스트먼트 등 계열사들의 지분도 보유하고 있어 내년 초 회장직에서 물러난 뒤 경영에는 관여하지 않더라도 사실상 그룹을 계속 소유하는 셈이다.

이날 사퇴 선언을 하면서 후임 회장을 지명하지 않은 채 지주회사 중심의 그룹 경영 방침을 내놓은 것도 당분간은 지분 상속을 통한 승계 작업을 본격화하지는 않을 것임을 내비친 것으로 받아들여 진다.
과거 이 회장은 그룹 총수로서 책임과 부담을 토로하며 이 전무에게 경영권 승계를 하지 않을 수 있다는 뜻도 내비친 바 있다. 이 전무로의 경영권 승계까지 내려놓는다면 이 회장의 이번 '소유와 경영의 분리' 실험은 그 순수성을 부인하기 힘들어진다.
하지만 코오롱이 사장단 협의체를 통한 집단 경영체제의 과도기를 거쳐 단계적으로 이 전무에게 그룹을 물려줄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린다.
이 전무가 그룹 경영권을 넘겨받기에는 나이가 적은 상황에서 막대한 증여세까지 내면서 무리하게 승계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최근 다른 주요 그룹에서 경영권 승계를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는 점도 부담이다.
따라서 이 전무에게 그룹 핵심사업(코오롱인더스트리 FnC부문 최고운영책임자)을 맡겨 경영수업을 하도록 하면서 지주회사인 ㈜코오롱 등의 지분율을 점차 올려가는 방식으로 후계구도를 챙길 가능성이 점쳐진다.
이 전무는 영국에서 고교를 졸업하고 미국 코넬대에서 호텔경영학을 전공한 뒤 입대했으며, 레바논 평화유지군에 '동명부대원'으로 파병되기도 했다.
지난 2012년 코오롱인더스트리 차장으로 입사해 코오롱글로벌, 코오롱인더스트리 경영진단실 상무를 지냈으며, 공유부동산서비스업체 리베토의 지분 15%를 보유하면서 대표를 맡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이 회장은 이번 결정에 앞서 이미 사장단 협의체를 통한 집단 경영 실험을 해서 무리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것으로 안다"면서 "준비 없이 갑작스럽게 결정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코오롱은 앞으로 지주회사인 ㈜코오롱 중심으로 운영되면서 계열사 사장단 협의체인 '원앤온리'(One & Only) 위원회'를 통해 그룹 현안을 조율할 전망이다. 현재 SK그룹 계열사 사장의 논의기구인 수펙스추구협의회와 비슷하지만 보좌할 총수의 유무에 따라 두 기구의 권한과 성격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그룹 관계자는 "이 회장으로서는 그야말로 '충격요법'을 쓴 것"이라면서 "바뀌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고 수없이 외쳤지만 잘 바뀌지 않는 것을 보고 스스로 파격적인 결정을 한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내년초부터 당분간은 주로 외국에 머물면서 창업 준비를 하면서 조언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human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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