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수 감독, 준PO 앞두고 선수들에게 자신감 독려
결혼식도 비밀에 부치며 선수단 분위기 쇄신에 집중
(서울=연합뉴스) 김경윤 기자 = 1990년대 프로축구 인기를 이끌었던 고종수 대전 시티즌 감독은 라이벌이었던 안정환(MBC 해설위원), 이동국(전북)과는 다른 매력을 갖고 있었다.
안정환, 이동국이 순정만화에서 나올 법한 곱상한 외모로 많은 소녀팬의 심금을 울렸다면, 고종수 감독은 통통 튀는 개성과 반항아적 이미지로 인기를 끌었다.
선수 고종수는 자신의 이미지처럼 그라운드 위에서도 창의적인 플레이로 많은 박수를 받았다.
넓은 시야와 상대 허를 찌르는 패싱 능력, 날카로운 왼발 슈팅으로 프로축구를 흔들었다.
뭐니 뭐니 해도 앙팡 테리블'(무서운 아이)이라는 별명처럼 상대 선수가 누구든, 기죽지 않는 담대함이 돋보였다.
2002년 한일월드컵을 앞두고 펼친 한일 올스타 대 세계 올스타의 경기에서 세계적인 골키퍼 호세 루이스 칠라베르트(파라과이)를 상대로 왼발 프리킥 골을 넣은 장면은 두고두고 회자하고 있다.
이처럼 화려한 선수 시절을 보낸 고종수 감독이지만, 지도자 생활은 그렇지 않았다.
그는 2011년 수원 삼성 유스팀인 매탄고등학교 코치로 다소 초라하게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수원 코치·스카우트를 거쳐 올 시즌 프로축구 K리그2(2부리그) 대전 시티즌의 감독으로 부임했다.
지도자 데뷔시즌인 올해에도 우여곡절을 겪었다.
대전은 7월까지 10개 구단 중 9위에 머물 정도로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이때 고종수 감독은 선수들에게 경기에 임하는 태도를 강조했다.
고 감독은 선수 시절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제자들이 자신의 기량을 그라운드에서 마음껏 펼치길 바랐다.
틀에 박힌 축구가 아닌, 자기가 최고라는 자신감을 안고 운동을 하도록 유도했다.
대전 미드필더 박수일은 "고종수 감독님은 그라운드 밖에서 마치 친구처럼 선수들과 장난을 치며 각자 하고 싶은 축구를 하도록 유도한다"라며 "그러나 경기장 내에선 강한 카리스마로 긴장감을 유지한다. 많은 것을 배웠던 시즌"이라고 말했다.
대전은 8월 이후 무서운 기세로 승리를 쌓으며 정규리그를 4위로 마쳤다.
고종수 감독은 광주FC와 승강 준플레이오프(PO)를 앞두고 자신의 지도 철학을 더 강하게 선수들에게 주입했다.
단 한 경기 결과로 팀의 운명이 바뀔 수 있는 상황이라 극도의 스트레스에 시달렸지만, 고종수 감독은 내색하지 않았다.
올해 처음 지휘봉을 잡은 초보 감독 같지 않았다.
대전 공격수 박인혁은 "승강 준PO를 앞두고 감독님이 흔들리는 모습은 전혀 발견하지 못했다"라면서 "선수들에게도 기죽지 말고 경기에 임하라고 계속 말씀하셨다"라고 말했다.
고종수 감독은 선수들이 흔들릴까 봐 지난 24일 자신의 결혼식도 비밀에 부쳤다.
대다수 선수는 결혼식 이틀 전에야 고 감독이 결혼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고 감독은 자신의 결혼식에 선수들을 일부러 부르지 않기도 했다.
28일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광주와 승강 준PO 경기 당일에도 고종수 감독은 흔들림이 없었다.
그는 전반전에서 선수들이 제대로 된 경기력을 펼치지 못하자 하프타임 때 강하게 질책했다.
고 감독이 주문한 것은 단 하나, 기죽지 말고 경기를 펼치라는 것이었다.
박수일은 "감독님이 정신 차리라는 말씀을 하셨다"라면서 "'쫄지 마라'라는 말에 우리 모두 정신이 확 든 것 같다"라고 말했다.
대전은 후반전에 활발한 움직임으로 광주를 밀어붙였고, 외국인 선수 키쭈의 결승골로 1-0 승리를 거둬 승강 PO에 진출했다.
고종수 감독은 경기 후 "광주 선수들도 훌륭한 플레이를 펼쳤지만, 우리 선수들의 의지가 더 강했던 것 같다"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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