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애미 헤럴드 "아코스타노동장관, 당시 검사로 이례적 불기소합의"
국제인신매매 협의까지 받던 엡스타인 변호인은 레프코비츠 대북인권특사
(서울=연합뉴스) 윤동영 기자 = 미국의 억만장자 헤지펀드 매니저가 종신형에 처할 수도 있는 미성년자 상대 상습 성범죄를 저질렀는데도 터무니없는 감형을 받았던 10년 전 사건에서, 당시 연방검사로 책임자였던 알렉산더 아코스타 미 노동장관의 역할을 재조명한 마이애미 헤럴드 기사가 미국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이 신문이 1년여에 걸쳐 제프리 엡스타인의 성범죄 사건의 전말을 추적해 28일(현지시간) 보도한 기사에 따르면, 엡스타인은 2001년부터 2006년 사이 당시 확인된 것만 36명에 이르는 14세 여자아이 등 미성년자들을 대상으로 성행위 강요 등 성범죄를 저질렀다.
피해자는 마이애미 헤럴드의 취재 과정에서 80명으로까지 늘어났다.
뿐만 아니라 당시 수사관들은 엡스타인이 자신의 `성 파티'를 위해 브라질, 에콰도르로부터 13세 여자아이들을 공급하는 국제 인신매매와 연루된 증거도 입수했다.
그러나 엡스타인은 2008년 고작 2건의 매춘부 상대 성매매 혐의만 인정하고 13개월의 징역형을 받는 것으로 끝났다. 그것마저 사설 감방에서 복역하면서 1주일에 6일간, 하루 12시간은 감방에서 벗어나 자신의 사무실에서 일할 수 있는 '근로 석방' 제도의 특혜를 받았다.
그가 받은 특혜는 아코스타 당시 검사와 맺은 감형 협상 덕분이었다.
특히 아코스타와 감형 협상을 통해 '불기소 합의'를 끌어낸 엡스타인의 변호인은 제이 레프코비츠. 한국에도 낯익은 인물이다.
조지 W. 부시 행정부 때인 2005년 대북 인권특사로 임명돼 북한의 인권문제를 세계에 고발하는 활동을 했던 그 레프코비츠다. 대북 인권특사는 비상근직이었기 때문에 변호사 활동도 계속하고 있었다.
레프코비츠가 2007년 엡스타인의 변호인으로 아코스타 검사를 만나 합의한 '불기소 합의'엔 엡스타인 뿐 아니라 연방범죄 혐의를 적용받을 수 있는 "어떤 잠재적 공범들"에 대해서도 모든 관련 연방범죄 기소를 면해주는 내용이 담겼다.
이는 국제 성 인신매매 혐의에 대한 연방수사국(FBI)의 수사를 중단하는 것을 의미했고, 당시 엡스타인의 성폭행 범죄 가담자들도 모두 소급해 면죄부를 받는다는 것을 의미했다.
근로 석방 등 수형 생활의 특혜도 이 '불기소 합의'에 담긴 것이다.
또한 이런 감형 협상을 한 사실 자체과 내용을 피해자들에게 알리지 않는다는 것도 합의에 포함됐다. 이 때문에 피해자들은 법정에서 이 합의의 부당성에 이의를 제기하고 무효로 할 수 있는 기회마저 박탈당했다.
검찰이 피해자들에게 비밀로 한 것은 명백한 위법 행위이기 때문에 일부 피해자들은 이를 근거로 당시 감형 협상의 무효화 소송을 제기해 내달 관련 재판이 열린다.
마이애미 헤럴드에 따르면 당시 아코스타 검사가 이끌던 연방 검사팀과 엡스타인의 변호인단간 관계는 유착 상태였다.
대부분의 피해자가 살던 팜비치 카운티가 아닌 마이애미의 법정에서 재판이 열리도록 함으로써 피해자들이 재판이 끝난 후에야 알게 됐다. 기록이 남는 이메일보다는 전화통화를 하거나 직접 만나 얘기하자고 하기도 하고, 언론의 관심을 최소화하는 방안에 관해서도 논의했다.
아코스타 검사는 왜 엡스타인 측에 끌려다니는 감형 협상에 동의했을까? 마이애미 헤럴드도 이에 관해선 명확한 대답을 내놓지 않았다.
이와 관련, 이 신문은 엡스타인이 거느린 거물 친구들을 소개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 당시는 아직 부동산 사업가였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영국의 앤드루 왕자, 앨런 더쇼비츠 하버드대 법대 교수 등.
뉴욕매거진은 마이애미 헤럴드의 탐사보도 내용을 소개하면서 앱스타인이 2008년 금융위기와 관련 다른 펀드 매니저 2명의 범죄 입증에 유용한 증인 역할을 한 대가일 수 있으나 미국 검찰은 경제범을 아동 대상 성범죄나 인신매매보다 중범으로 보지 않기 때문에 설득력이 없는 설명이라고 말했다.
뉴욕매거진은 '합의' 중에 모든 공범자들에 대한 면책 조항이 있는 것을 지적, "연방 검사들이 엡스타인보다 더 힘이 센 특정 한 개인이나 여러 개인들을 보호할 필요성을 느꼈을 것이라는 음울한 의심을 일으키는 대목"이라고 주장했다.
yd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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