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목 통합 수업 중시…2년 전부터 현상기반학습도 의무화
교사에 수업 재량권…"부모들 성적보다 교사 상담에 관심"
(헬싱키=연합뉴스) 김수진 기자 = 겉보기에 핀란드와 한국 교육은 닮았다.
두 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3년을 주기로 시행하는 '국제 학업 성취도 평가 (PISA)'에서 늘 상위권을 차지한다. 대체로 1∼10위에서 엎치락뒤치락한다.
그러나 조금만 들여다보면 속사정은 전혀 다르다.
한국 교육은 상당 부분을 사교육에 의존하는 반면, 핀란드는 철저히 공교육 중심이다.
학생들의 행복도도 극과 극이다. 한국 학생들의 삶 만족도는 OECD 회원국 중 터키 다음으로 낮고, 핀란드는 위에서 두 번째다.
핀란드는 이러한 성과에 집착하지도 안주하지도 않는다. 교육 실험을 계속하며 그들만의 길을 만들고 있다.
◇ 통합 교육 강조…과목 구분 없는 시간표도
지난달 6일(현지시간) 헬싱키 시내 포롤라흐티 종합학교 1학년 교실.
몇 분간 수업을 지켜봤는데도 좀처럼 무슨 과목 시간인지 알 수 없었다. 모둠별로 모여앉은 아이들은 핀란드어 낱말 맞추기를 하는가 싶더니, 이내 노래를 불렀다.
칠판 옆에 붙어있는 시간표를 확인하고는 더 혼란스러워졌다. 영어를 제외하면 교시별로 과목이 구분돼 있지 않았다.
이 학급 담임교사 요하나 룬타넨은 "국가교육과정에서 과목 통합 교육을 지향하는 만큼, 여러 과목을 한 번에 배울 수 있도록 수업을 짰다"고 설명했다.
룬타넨은 "예컨대 아이들과 핀란드 동화를 읽은 뒤 인근 숲에서 돌을 주워 털실 따위를 붙여 동화 속 주인공을 직접 만들고, 관련 노래도 배운다"며 "이를 통해 국어, 공예, 생물, 음악을 함께 공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중학교 과정인 7∼9학년은 시간표상 과목이 명확히 나뉘어 있지만, 역시나 각 수업 시간에 다양한 지식을 유기적으로 습득한다.
예컨대, 영어 수업 시간에는 언어로서 영어뿐 아니라 이 언어를 사용하는 다양한 문화권에 대해 배운다.
영어교사 이리스 슈뢰더가 9학년(중학교 3학년) 학생들에게 '아프리카'에 대해 가르치고, 이와 관련된 소재를 자유롭게 정해 영어로 발표하는 과제를 낸 이유다.
이리스의 수업에서 만난 학생들은 노트북에 영국 BBC 뉴스, 위키피디아, 조리법 사이트 등 제각각 다른 화면을 띄워놓고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카훗(Kahoot)이라는 교육용 애플리케이션을 활용해 아프리카 퀴즈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던 루카스 라이티넨(15)은 "킬리만자로나 넬슨 만델라에 관해 묻는 퀴즈쇼를 진행할 것"이라고 능숙한 영어로 말했다.
각각 '아프리카 전통 음식' '콩고민주공화국(DRC) 현지어 링갈라(Lingala)'를 주제로 자료를 만들던 다른 학생들도 자신의 프로젝트에 대해 영어로 막힘없이 설명했다.
핀란드는 나아가 2016년부터 다양한 과목을 통합해 배우는 '현상기반학습(PBL·Phenomenon Based Learning)' 시행을 의무화했다.
단, 1년에 한 번 이상 각 학교 사정에 맞춰 PBL을 시도하라는 권고이지, 매번 하라는 것은 아니다. 개별 과목도 사라지지 않는다.
◇ '교사 믿는다'…폭넓은 수업 자율성
핀란드 교육 현장의 새로운 시도는 교사를 전문가로 신뢰하고, 자율성을 허락하는 문화 덕분에 가능하다.
국가가 정한 교육과정은 '학생들이 각 단계에서 어떤 역량을 길러야 한다'와 같이 큰 그림을 제시할 뿐 세부 사항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큰 목표를 수업 시간에 어떤 방식으로 구현할지는 전적으로 교사의 재량이다.
10년 차 영어교사 리나는 "국가교육과정은 거시적인 가이드라인만 주고 '어떤 문법을 가르쳐야 한다'는 등 세세하게 관여하지 않기 때문에 수업을 어떻게 구성할지 매우 자유롭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덕분에 교육과정 안에서 각 학급, 학생 개개인 수준에 맞춰 수업을 기획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약 두 달 전 임용된 신임 과학 교사 엘리사벳 라우타넨도 "커리큘럼이 존재하지만 이를 수업에 자유롭게 적용할 수 있다"며 "사람들이 나를 신뢰하기 때문에 자율성이 생기고, 이 점은 내게 큰 영감을 준다"고 말했다.
평가도 교사의 뜻에 따라 이뤄진다. 핀란드 종합학교에는 국가나 지역 단위에서 치러지는 획일화된 시험이 없으며, 고교졸업시험이 유일한 국가 단위 시험이다.
학년 말 교사가 학생에게 4~10점 점수를 부여하긴 하지만, 학생도, 부모도 숫자보다는 교사가 글로 적은 피드백과 이를 바탕으로 한 상담에 더 신경을 쓴다.
이리스는 "22년 교직 생활을 하면서 자녀 점수에 불만을 품은 학부모를 딱 한 번 만난 적이 있다"면서 "대부분 점수 보다는 학생의 어떤 역량이 향상됐고, 앞으로 개선할 점이 무엇인지에 관심을 둔다"고 말했다.
그는 핀란드의 PISA 순위에 대해서도 "참고는 할 수 있지만, 솔직히 나도, 동료들도 거의 신경을 쓰지 않는다"며 "그건 결과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gogogo@yna.co.kr
※ 본 기획물은 한국언론학회-SNU 팩트체크 센터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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