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볼런투어리즘은 현대판 노예제도", 법으로 금지

입력 2018-11-30 12:14   수정 2018-11-30 13:57

호주 "볼런투어리즘은 현대판 노예제도", 법으로 금지
"고아 이용 모금…어린이 돕기보다 상처 줘"

(서울=연합뉴스) 이경욱 기자 = 호주인들은 앞으로 해외 '볼런투어리즘'(Voluntourism)에 참여하지 못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호주가 어린이를 이용해 후원금을 모금하는 행위를 '현대판 노예제도'라고 규정하고 자국민의 볼런투어리즘 참여를 금지하는 쪽으로 법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볼런투어리즘은 제3 세계 국가 고아 등 빈곤층 어린이들을 방문해 후원금을 주고 동시에 현지 관광을 즐기는 '자원봉사를 겸한 관광'이라는 의미로, 자원봉사를 뜻하는 '볼런티어'(volunteer)와 관광을 뜻하는 투어리즘(tourism)을 결합한 신조어다.
2000년 대말 유럽에서부터 시작돼 선진국 국민들에 유행처럼 확산하는 볼런투어리즘은 그러나 어린이들을 돕기보다는 상처를 준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보육원 운영자들은 대부분 어린이를 이용해 볼런투어리즘 참여자를 모집하려고 애쓰고 있다는 것이다.
글로벌 고아 인권옹호단체 '보육원을 다시 생각하자'(Re Think Orphanages) 보고서에 따르면 호주 대학 가운데 57%가 보육원 현장실습 광고를 내보내고 있다.
호주 각급 학교 가운데 14%는 해외 보육원 등 어린이 보호시설 방문이나 자원봉사, 후원금 모금을 독려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호주 연방의회 린다 레이놀즈 상원의원은 "보육원 방문 관광은 '완벽한 21세기 사기 행위'"라며 "볼런투어리즘이 동남아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레이놀즈 의원은 볼런투어리즘 참가자들은 해외 보육원 등 시설을 방문해 좋은 일을 하고 그것을 소셜미디어(SNS)에 올리기 바쁘다고 말했다.
이런 행위는 자녀가 설탕이 많이 든 음식을 먹으면 흥분한다는 부모의 관행적인 인식에 빗댄 '슈가 러시(Sugar Rush)'에 지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일시적으로 각성·흥분 효과가 있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는 종류의 자극이라는 것이다.



볼런투어리즘에 나서는 많은 이들은 자신의 선행이 실제로는 전 세계 많은 국가에서 어린이 착취를 기반으로 생겨나는 산업을 자극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줄리아 비숍 호주 연방정부 전 외교부장관은 지난 3월 "어린이들이 볼런투어리즘의 유인책이 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네팔이나 캄보디아 등 일부 국가 보육원에서 생활하는 어린이들은 대부분 좋지 못한 환경에서 자라다가 교육을 시켜주고 잘 돌봐주고 잘 먹여주겠다는 약속을 믿고 부모를 통해 보육원으로 들어온다.
하지만 현실은 이와 달리 어린이들은 후원금 모금에 동원되고 모금된 후원금은 결국 보육원 관계자들의 손에 들어간다고 고아 구호단체 '루모스'(Lumos) 자문관 클로에 세터가 말했다.
세터 자문관은 "많은 나라가 호주를 따르기 바란다"며 "호주가 볼런투어리즘을 금지하는 법을 제정하게 되면 고아를 이용한 착취 행위가 전 세계의 관심을 끌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더 많은 나라에서 호주와 비슷한 법제화가 이뤄져야 한다"며 "이렇게 해야만 고아를 이용한 후원금 모금 행위 등이 근절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국무부에 따르면 전 세계 수많은 보육원이 후원금 모금에 어린이들을 동원하고 있다.
kyungle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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