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용의 글로벌시대] 미·중 수교 40년과 무역전쟁 1라운드

입력 2018-12-03 08:57  

[이희용의 글로벌시대] 미·중 수교 40년과 무역전쟁 1라운드


(서울=연합뉴스) 미국 대통령 특별보좌관 헨리 키신저는 베트남, 태국, 인도를 거쳐 1971년 7월 8일 파키스탄을 방문했다. 이튿날 오전 9시 미국은 "키신저 보좌관이 배탈이 나 오늘로 예정된 줄피카르 알리 부토 대통령과의 공식 만찬을 취소하기로 했으며, 수도 이슬라마바드에서 90㎞가량 떨어진 휴양지 나티아갈리에서 쉴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휴양지에는 키신저가 미국에서 타고 온 전용기가 대기 중이었고 키신저 전용차가 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숙소 주변을 돌아다녔다. 그러나 전용차에는 키신저가 타고 있지 않았다. 이 시각에 그는 베이징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중국 하늘을 날고 있었다. 취재진을 완벽하게 따돌린 것이었다. 오후 1시께 베이징에 도착한 키신저는 20시간에 걸쳐 저우언라이(周恩來)와 비밀리에 회담하며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중국 방문 일정과 의제 등을 조율했다. 7월 12일 파키스탄으로 돌아온 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음 목적지인 프랑스 파리로 향했다.


키신저의 방중 사실은 7월 15일에야 공개됐다. 닉슨 대통령은 TV로 생중계된 기자회견에서 "저우언라이 총리의 초청을 받아 1972년 5월 이전에 베이징을 방문하겠다"고 발표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닉슨은 이듬해 2월 21일 베이징으로 날아가 마오쩌둥(毛澤東) 중국공산당 주석을 만난 뒤 상호불가침과 평등호혜 등 5가지 원칙을 담은 상하이 공동선언을 발표했다.

이에 앞서 미국과 중국 간 화해와 교류의 물꼬를 튼 것은 이른바 '핑퐁 외교'였다. 1971년 3월 말 일본 나고야에서 개막한 제31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 출전한 미국 대표팀은 대회가 끝난 뒤 4월 10일 중국을 방문해 친선 경기를 벌였다. 이들은 22년 만에 중국 대륙을 방문한 최초의 미국인이었다. 4월 13일 1만8천 명의 관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미국의 남녀 대표님은 중국 대표팀에 각각 3-5. 4-5로 패했다. 그러나 세계 각국은 승부에는 별 관심이 없었고, 이를 계기로 중국이 죽(竹)의 장막을 걷고 국제무대로 나오느냐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흥미로운 사실 가운데 하나는 당초 미국 대표단 가운데 재미동포가 있었다는 것이다. 나고야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 출전한 미국 대표팀 주장은 이달준이었는데, 중국의 정치 선전에 이용될지도 모른다고 우려해 중국행을 포기함으로써 전 세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1940년 강원도에서 태어난 그는 1958년 도쿄 아시안게임 단체전 동메달, 1960년 인도 봄베이(뭄바이) 아시아선수권대회 단식 은메달을 차지한 국내 일인자였다. 1964년 영국 초청을 받아 1년간 활동하다가 미국으로 건너갔다. 미국 여성과 결혼해 영주권을 얻은 뒤 국가대표로 발탁됐고 주장까지 맡았다.

이달준은 미국 여성과 이혼한 뒤 신탁은행 소속이던 탁구선수 박혜자와 재혼했다. 이들 부부는 1979년 4월 북한의 평양에서 개막한 제35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 각각 미국팀 코치와 선수로 출전했다. 그는 은퇴 후에도 탁구용품 판매업에 종사했으며 2010년 사망했다.


닉슨과 마오쩌둥의 세기적인 만남 뒤에도 미국과 중국이 정식으로 수교하기까지는 6년여의 세월이 더 필요했다. 국교 수립 이전에는 서로 연락사무소를 두고 외교적 현안을 논의했다. 1974∼1975년 베이징 주재 연락사무소장을 맡아 사실상 초대 주중 대사 역할을 한 인물이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세상을 떠난 조지 H.W. 부시 전 대통령이다. 그는 1971∼1973년 유엔 주재 대사를 지내며 1971년 10월 중화인민공화국(중공)의 유엔 가입과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피선, 자유중국(대만)의 탈퇴로 이어지는 과정의 실무를 담당했다.

지금으로부터 꼭 40년 전인 1978년 12월 15일 미국과 중국은 1979년 1월 1일 국교를 맺는다는 내용의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미국은 중공이 중국 내 유일한 합법 정부임을 인정하고 대만과의 외교 관계를 단절하며, 4개월 안에 대만 주둔 미군을 철수하기로 했다. 지미 카터 대통령과 중국 실권자 덩샤오핑(鄧小平) 부총리의 상호 방문과 상주 대사관 설치 등의 내용도 담겼다. 국제사회에는 영원한 적도 친구도 없다는 말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같은 날 덩샤오핑은 중국공산당 중앙공작회의 폐막 연설에서 시장경제 도입을 선언하는 선부론(先富論)을 제창했다. 3일 뒤 중국공산당은 제11기 중앙위원회 제3차 전체회의(3중전회)를 열어 당과 국가 업무의 중심을 경제 건설로 옮기는 개혁개방의 역사적인 결정을 단행했다. 미국과의 수교를 바탕으로 명실상부한 세계 경제의 한 축으로 나선 것이다.


지난 1일(현지시간)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중국의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열리고 있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정상회담을 열고 90일간 무역협상을 진행하는 동안 추가적인 관세를 부과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치킨 게임'을 방불케 하는 무역전쟁을 벌이던 G2 양강(兩强)이 전면 충돌 직전에 서 질주를 멈추고 잠시 숨 고르기에 들어간 것이다.

수교 40주년 기념일을 눈앞에 두고 두 정상이 웃는 낯으로 손을 잡긴 했지만 근본적인 타결이 아니라 일시적인 봉합에 그쳤다는 관전평이 지배적이어서 전 세계가 가슴 졸이며 앞으로의 추이를 주목하고 있다. 특히 양국에 대한 무역 의존도가 높고 외교·안보적으로 두 나라의 영향력이 절대적인 한국 처지에서는 이들의 한마디 한마디에 온통 신경을 집중할 수밖에 없다.

미중 수교의 산파역인 키신저는 지난달 8일 중국 베이징에서 시진핑을 만나 트럼프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95세의 노정객은 반세기 만에 또다시 두 정상 사이를 오가며 어떤 느낌을 받았을까. 키신저의 외교 전략을 충실히 수행한 부시는 미중 정상회담 하루 전 눈을 감으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핑퐁 외교의 주역이 될 뻔한 이달준은 미중 수교로 이어진 과정을 어떤 시선으로 자켜봤을까.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 1라운드가 끝난 시점에서 미중 관계의 현대사를 더듬어보니 여러 상념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한민족센터 고문)


heeyong@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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