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향력 컸던 대법관 2명 영장심사 앞둬…재판도 사실상 기정사실화
제척 가능성 있는 법관들, 영장 및 형사사건 재판부 등 곳곳에
(서울=연합뉴스) 고동욱 기자 =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과 관련해 검찰이 3일 박병대(61)·고영한(63) 전 대법관의 구속영장을 청구함에 따라 영장심사와 향후 재판을 해야 할 법원의 고민도 깊어지게 됐다.
법원의 주요 보직을 두루 거친 '엘리트'이자 존경받는 선배 법관이던 두 전직 대법관을 후배 법관들이 피의자 내지 피고인 신분으로 대면해야 하는 상황이 다가온 만큼, 재판의 공정성에 대한 관심도 어느 때보다 높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당장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누가 맡느냐부터 법조계의 시선이 쏠린다.
법조계에서는 지난 9월 영장전담 업무를 맡은 명재권 부장판사나 10월 합류한 임민성 부장판사가 맡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애초 서울중앙지법은 영장전담 판사 3명을 운영해 왔으나, 사법농단 의혹 수사가 본격화된 이후인 9월과 10월 연달아 영장전담 재판부를 1곳씩 늘렸다.
이는 명분상 검찰의 영장청구가 늘어나고, 기각된 영장에 대한 재청구가 급증함에 따라 이를 처리할 재판부가 더 필요하다는 영장전담 판사들의 요청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법조계에서는 각종 영장의 잇달아 기각되면서 불거진 공정성 논란에 대응하는 측면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기존의 영장전담 법관이던 박범석·이언학·허경호 부장판사가 사법농단 의혹의 주요 수사대상과 과거 함께 근무한 인연이 있어 기피·제척 사유에 해당한다는 지적이 적지 않았던 것이다.
특히 박범석·이언학 부장판사는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과 소속 재판연구관이나 배석판사로 함께 근무한 인연이 있다.
실제로 사법농단 의혹의 핵심으로 지목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영장심사를 맡아 구속영장을 발부한 것도 새로 충원된 임민성 부장판사였다.
다만 법원은 당시 "구속영장 전담 판사 중 컴퓨터로 무작위로 배당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법원이 영장 재판부를 정하는 과정에서 공정성 시비를 비켜 가더라도 이어지는 형사 재판 역시 배당 문제를 놓고 또 고민을 이어가야 한다.
검찰은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함으로써 기소를 기정사실화 했는데, 형사사건의 심리를 맡기는 과정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발생한다.
정치권 등에서는 검찰 수사 초기부터 일찌감치 향후 재판에서 빚어질 공정성 문제에 불씨를 지폈다. 이른바 '양승태 키즈', '박병대 키즈' 등으로 불리는 법관들이 이번 사건에 대한 법원 내 여론을 한쪽으로 몰아가고 수사·재판에도 영향을 주려 한다는 의혹을 제기해 왔다.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은 사법농단 관련 사건을 심리할 서울중앙지법의 형사합의부 13곳 가운데 6곳의 법관이 사법농단 의혹과 관련 있거나 양승태 사법부 시절 법원행정처에 근무한 인사라는 분석을 내놓은 바 있다.
아울러 한 곳의 재판장은 사법농단 의혹의 피해자이므로 똑같이 기피·제척 사유에 해당한다며 기존 배당 시스템으로는 공정한 재판부 배당이 이뤄지기 어렵다는 주장을 했다. 이런 주장들은 현재 여권이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심리할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하는 근거이기도 하다.
이에 서울중앙지법은 지난달 형사합의부 3곳을 증설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임종헌 전 차장의 재판을 맡게 된 형사합의36부(윤종섭 부장판사)가 이런 과정을 거쳐 신설된 재판부다.
그러나 검찰의 수사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정면으로 향하고 있는 데다, 의혹과 관련된 다른 전·현직 고위 법관들이 무더기로 기소될 경우 재판부 배당에 어려움이 생길 가능성도 남아 있다.
1심 재판 중 인사이동이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지만, 이후 항소심을 맡을 서울고법 형사부 법관 중에도 상당수가 직·간접적으로 사건 관련자들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재판 공정성 시비는 언제 불거질지 모를 논란거리로 잠재돼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sncwook@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