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 '비주택' 거주실태 및 제도개선 방안 토론회
열악한 환경에 노출…국일고시원 거주자 "임시거주처 살려면 세간살이 새로 사야"
(서울=연합뉴스) 성서호 기자 = 판잣집이나 고시원처럼 적절한 주택의 기준에 못 미치는 열악한 거처를 뜻하는 '비주택'의 거주자 10명 중 2명은 범죄 피해를 경험한 것으로 조사됐다.
국가인권위원회는 4일 서울 중구 인권위 배움터에서 2018홈리스추모제공동기획단·주거권네트워크·세계인권선언 70주년 인권주간 조직위원회와 공동으로 개최한 '고시원 화재참사 한 달, 비주택 주거실태와 과제를 말하다' 토론회에서 한국도시연구소를 통한 연구 용역 결과를 발표했다.
한국도시연구소는 이번 연구에서 올해 7월 23일∼8월 31일 비주택 거주 203구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와 함께 지역조사, 자료조사, 심층 면접조사를 병행했다.
설문조사 대상 중 84.2%(171가구)가 혼자 살고 있었고, 장애인이나 만성질환자가 있는 가구는 각각 32.0%(65가구), 53.2%(108가구)였다.
가구주를 성별로 나누면 남자가 80.3%(163가구), 여자가 19.7%(40가구)였다. 나이로는 60세 이상이 41.4%(84가구)로 가장 많았고, 학력으로는 중학교 졸업 이하인 경우가 56.7%(115가구)로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평균 주거 면적은 17.6㎡였다. 면적이 2평(약 6.5㎡) 미만인 곳이 54.2%에 달하는 등 주거로 사용하는 면적이 1인 가구 최소 주거면적 기준인 14㎡에 미치지 못하는 가구 비율이 75.4%였다.
10가구 중 2가구(19.7%)는 비주택에서 살면서 범죄 피해를 본 경험이 있었다.
응답자들은 현재 거처에서 겪는 어려움의 주요 원인으로 '거처의 열악한 시설'(55.2%)을 꼽았다.
비주택 거주공간에 독립된 부엌이 없는 비율은 33.0%였다.
특히 거처에 난방시설이 없는 가구가 24.1%, 겨울철 실내온도를 적절히 유지하지 못하는 가구도 57.5%로 나타나 겨울철 추위대비가 매우 부족한 것으로 조사됐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따른 수급가구는 절반이 넘는 107가구(52.7%) 수준이었다.
한국도시연구소는 "비주택에 거주하는 가구 중 수급가구 비율이 절반을 넘는 것은 기초생활보장에 의한 주거 급여를 받더라도 적정한 주거생활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설명했다.
심층 면접조사에서는 함께 살 적정한 주택을 마련할 경제적인 여유가 없어서 가족이 흩어져 살 수밖에 없는 비자발적인 독립 가구인 사례도 있었다. 보증금 없는 저렴한 주거공간을 찾는 과정에서 고등학교 때부터 혼자 고시원에서 생활한 한 여성은 성인이 된 후에도 교회에서 살고 있었다.
이날 토론회에 나온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 거주자 A씨는 "노숙 생활하는 동안 몸이 안 좋아져 다리를 절단해야만 했는데 지금 사는 곳에서는 화장실이 구식이라 제대로 일을 보지 못한다"며 "오래된 건물인 데다 창문도 없어서 먼지 때문에 호흡기 질환도 많이들 앓는다"고 전했다.
지난달 9일 7명의 목숨을 앗아간 서울 종로구 국일고시원 화재 사고 피해자 B씨는 "구청에 대책위원회라는 게 만들어졌는데 보여주기식일 뿐"이라며 "주민센터에서도 구호물품이 들어왔는데도 우리에게 제대로 통보를 해주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국일고시원에서 4년을 살았다는 B씨는 "열악한 환경도 문제지만, 구청이나 주민센터의 태도도 문제"라며 "공무원들은 아무것도 없는 임대주택에 딱 6개월만 살라고 들어가라는데 가뜩이나 돈 없는 고시원 거주자들은 세간살이를 다 사서 들어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인권위는 이번 실태조사 결과와 토론회 논의 내용을 바탕으로 제도개선 방안을 마련해 권고할 예정이다.
so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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