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들이닥치자 사무실 비워…켜둔 컴퓨터에서 증거인멸 공모한 대화창 발견
검찰 "적법 절차로 압수수색한 자료…위법수집증거 아니다"
(서울=연합뉴스) 고동욱 기자 = 검찰이 삼성그룹 차원에서 자회사의 노조와해 공작을 벌인 혐의를 포착해 사실상 재수사에 돌입하게 된 구체적 경위를 법정에서 밝혔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뇌물 혐의와 관련해 삼성전자 수원 본사를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직원들이 증거를 은닉하려는 정황을 검찰 수사관이 컴퓨터 모니터 화면을 통해 확인하면서 수사의 실마리가 발견된 것으로 나타났다.
검찰은 4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김태업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노조와해 의혹 사건 2차 공판에서 이와 같은 수사 과정을 공개했다.
검찰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는 올해 2월 8일 삼성전자가 이명박 전 대통령을 위해 자동차부품업체 다스의 미국 소송비를 대납해 준 의혹을 수사하기 위해 수원 본사 등을 압수수색했다.
저녁 무렵 도착한 검찰 수사관들에게 삼성 직원들은 입구에서부터 여러 가지 핑계를 대며 압수수색에 필요한 직원 명단과 배치표 등 정보 제공에 비협조적 태도를 보였다.
처음 본사 입구에 도착한 지 1시간 20분여가 지난 뒤에야 검찰 수사관 중 일부가 인사팀 사무실에 도착했지만, 그곳에는 압수수색 과정에 참여할 직원이 남아 있지 않았다.
사무실을 살펴보던 수사관은 인사팀을 지휘하는 송모 전무의 컴퓨터가 켜져 있고, 그 모니터에서 인사팀 직원들이 사내 메신저로 이야기를 주고받은 흔적을 발견했다.
메신저에는 직전까지 직원들이 압수수색 진행 정보를 공유하고, 사무실 내 자료를 빼돌려 숨기겠다는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인사팀 사무실로 검찰이 들이닥칠 것으로 예상되자 퇴근한 것처럼 서둘러 탈출한 정황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검찰이 공개한 메신저 대화 중에는 "책상 위의 서류를 전부 치우고 서랍을 잠가라", "하드는 이미 제 차에 넣어뒀다", "전무가 (사무실에)있지 말라고 해서 다 나간다"는 등의 표현이 있었다.
당직이던 직원 심모씨가 메신저로 동료들과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전무 컴퓨터에 있는 자료 영구삭제 프로그램을 실행하다가 급히 달아났던 것이다.
검찰은 심씨를 사무실로 불러내 은닉한 자료들을 추궁했다. 그 결과 지하주차장의 심씨 트렁크에서 숨겨둔 외장하드디스크 등을, 회의실 구석에서 감춰둔 공용 컴퓨터 등을 발견했다.
검찰은 심씨를 증거인멸 혐의로 현행범 체포했고, 숨겨둔 하드디스크는 압수했다.
그렇게 압수한 하드디스크에서는 삼성그룹 차원에서 자회사인 삼성전자서비스의 노조와해 공작을 조직적으로 벌인 정황이 담긴 문서가 무더기로 발견됐다.
이는 미완의 사건이던 삼성의 노조와해 의혹 수사를 약 3년 만에 검찰이 재개하는 계기가 됐다. 노조와해 의혹 수사는 2013년 정의당 심상정 의원이 공개한 이른바 'S그룹 노사 전략' 문건을 실마리로 해서 진행됐으나 전모를 밝히지 못한 상태였다.
이처럼 노조와해 의혹 단서가 확보된 경위는 삼성 임직원들의 변호인이 "하드디스크 속 문건은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라고 주장하자 이를 검찰이 반박하는 과정에서 공개됐다.
검찰은 "변호인이 주장하는 것처럼 심씨를 증거인멸 혐의로 현행범 체포한 것을 기회 삼아 하드디스크를 압수한 것이 아니다"라며 실제 하드디스크는 다스 뇌물 혐의와 관련해 삼성전자 본사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것이라며 관련 압수수색 영장 등 증거를 제시했다.
아울러 심씨와 변호인, 삼성 관계자 등이 참관하는 가운데 하드디스크를 포렌식 하는 과정에서 부당노동행위 관련 증거들이 발견됐고, 이를 담당 수사부서에 통보한 즉시 압수수색 영장 발부가 이뤄져 절차상 문제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sncwook@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