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념 뛰어넘은 탭댄스…흥과 슬픔 솜씨좋게 버무린 '스윙키즈'

입력 2018-12-05 09:32  

이념 뛰어넘은 탭댄스…흥과 슬픔 솜씨좋게 버무린 '스윙키즈'



(서울=연합뉴스) 조재영 기자 = 탭댄스의 현란한 스텝과 징을 박은 구두 밑창이 마룻바닥을 경쾌하게 두드리는 소리가 흥을 한껏 돋운다.
몸이 저절로 들썩이고 발이 까딱거릴 즈음, 영화는 현실로 시선을 옮긴다. 분단과 전쟁이 빚어낸 반목과 갈등이 응축된 곳, 포로수용소가 현실 속 공간이다.
이달 19일 개봉하는 영화 '스윙키즈'는 한국전쟁과 춤이라는 이질적인 소재를 스크린에 동시에 불러냈다. 비극과 희극이 공존하는 소재인 만큼, 133분 러닝타임 동안 감정의 저울추는 흥과 슬픔 사이를 오가다 묵직한 슬픔과 여운을 남기고 멈춰선다. 시대의 아픔을 에둘러 말하지 않고 직설화법으로 보여주는 정공법을 택한 덕분이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유엔군이 설립한 거제 포로수용소가 무대다. 포로들은 수용소 내 철책선을 사이에 두고 공산 포로와 반공포로로 나뉘어 연일 서로 비방한다.
새로 부임해온 미군 소장은 공산 포로들을 전향시켜 체제 우월성을 알리기 위해 '미제 댄스'인 탭댄스단 결성을 지시한다. 브로드웨이 탭 댄서 출신인 미군 잭슨(재러드 그라임스)이 책임자가 돼 단원 모집에 나선다.
우연히 본 탭댄스의 매력에 푹 빠진 로기수(도경수). 그는 '인민영웅'의 동생으로, 미제의 춤을 췄다가는 반역자로 찍힐 판이다. 그러나 몸과 발이 비트에 먼저 반응하자 몰래 댄스단에 합류한다.
생계를 위해 통역을 자처한 양판래(박혜수), 잃어버린 아내를 찾기 위해 유명해져야 하는 남편 강병삼(오정세), 반전 춤솜씨를 지닌 중국 포로 샤오팡(김민호)이 나머지 댄스단 멤버다.
이들은 부푼 꿈을 안고 크리스마스 공연을 준비하지만, 수용소 분위기는 갈수록 험악해진다. 이들은 과연 공연을 무사히 마칠 수 있을까.




'과속스캔들'(2008·824만명), '써니'(2011년·736만 명)의 강형철 감독은 이번에도 자신의 장기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음악과 이야기, 상업적 요소와 진중한 메시지를 적절히 안배하며 솜씨 좋게 요리해냈다.
초반은 비교적 가볍고 경쾌하게 출발한다. 오합지졸 댄서들의 첫 만남부터 연습 과정은 다소 과장됐다고 느껴질 정도로 코믹하게 그려진다. 속도감 있는 편집과 운율이 느껴지는 대사들도 분위기를 띄운다.
백미는 단연 탭댄스 장면. 정수라의 '환희'에 맞춰 미군과 스윙키즈 댄스단이 벌이는 댄스 배틀, 로기수와 양판래가 각각 수용소 안과 밖에서 질주하듯 역동적으로 춤을 추는 장면 등 여러 공간을 활용해 연출한 다채로운 탭댄스 장면이 눈과 귀를 사로잡는다. 각 인물의 복잡한 감정 역시 춤에 실려 전해진다. 아이돌 그룹 출신 도경수를 비롯해 배우들은 몇 달씩 훈련을 통해 수준급 탭댄스 실력을 선보였다. 실제 브로드웨이 댄서인 그라임스의 화려한 발재간도 혼을 쏙 빼놓는다.



영화는 뻔한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뒤로 갈수록 이념 때문에 서로에게 총구를 겨누는 동족상잔의 비극을 보여준다. 자연스럽게 흥보다는 슬픔 쪽으로 무게중심이 기운다.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대목이다.
이 작품에서 공공의 적은 이념 그 자체다. 개인의 욕망을 짓누르는 이념의 부질없음을 직접적인 대사로 설파한다. 화합의 매개체로 춤을 보여주지만, 결국은 이념을 뛰어넘을 수 없는 한계도 명확히 보여준다. 그래서 울림은 더 크게 다가오는 편이다.
강형철 감독은 "이념이 어떻게 보면 인간이 행복하기 위해 존재하는 시스템인데 그 시스템이 인간을 휘두르는 것이 부조리하다고 생각했다"면서 "결국 이 영화의 악당은 이념"이라고 말했다.


도경수는 153억 원짜리 영화를 짊어질 주연으로서 손색없는 연기를 보여준다. 사상적 신념과 춤에 대한 개인적 욕망 사이에서 고뇌하는 젊은이의 모습을 세밀하게 표현해냈다. 신인 박혜수를 비롯해 오정세, 김민호 그리고 그라임스까지 모두 개성 있는 캐릭터지만 극에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이외에 몇몇 반전 캐릭터들이 숨어있어 극을 더욱 풍성하게 한다.
동명 뮤지컬이 원작이지만 사실상 모티프만 따왔을 정도로 상당한 각색을 거쳤다. 엔딩 크레디트에는 한국 영화 최초로 비틀스의 '프리 애즈 어 버드'(Free as a bird)를 원곡 그대로 사용하는 데 성공했다. 비틀스는 원곡 사용을 거의 허가하지 않지만, 영화 메시지에 공감해 원곡 사용을 승인했다고 한다.
fusionjc@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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