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리병원 첫 허가…의료계 "서비스 향상" vs "공공성 약화"(종합)

입력 2018-12-05 17:05   수정 2018-12-05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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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리병원 첫 허가…의료계 "서비스 향상" vs "공공성 약화"(종합)
찬성측 "의료산업 자본 투자 늘어 R&D·의료경쟁력 확대"
반대측 "건강보험체계 무력화…의료비 상승 유발할 것"
복지부 "의료정책 변화 없다"…"국내 의료기관 파장, 당장은 미미할듯"


(서울=연합뉴스) 강애란 기자 = 제주도가 5일 중국 국유 부동산개발업체인 녹지그룹이 추진한 녹지국제병원 개원을 허가함으로써 십수년간 논란을 빚어온 영리병원이 이르면 내년부터 진료를 시작할 전망이다.
국내에서 영리병원이 문을 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제주도는 이날 "내국인 진료는 금지하고, 제주를 방문한 외국인 의료관광객만을 대상으로 하는 조건부 개설 허가를 했다"고 설명했다.
제주도의 이번 결정은 의료계 안팎에서 의료 분야의 새 활로를 개척했다는 주장과 의료 공공성을 약화할 것이란 우려가 맞서며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원희룡 "'영리병원 조건부 허가' 정치적 책임 지겠다" / 연합뉴스 (Yonhapnews)
◇ "영리병원이 의료산업 키울 것…환자선택권 확대 효과도"
영리병원은 외국 자본과 국내 의료자원을 결합해 외국인 환자 위주의 종합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다.
정부는 외국인 투자 비율이 출자총액의 50% 이상인 외국계 영리병원을 제주도와 경제자유구역만 허용하고 있다.
그동안 영리병원 도입을 주장해온 측은 새로운 자본 투자가 이뤄지면서 의료서비스 향상이 이뤄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정기택 경희대 의료경영학과 교수는 "의료 분야에서도 다른 산업처럼 회사 형태로 자본을 조달할 수 있게 된 것이라고 보면 된다"며 "투자를 통해 국내 의료 수준을 높이고 국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길이 마련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기존 병원들은 대출을 통한 투자에 의존했기 때문에 병원이 잘못되면 의사가 신용불량자가 되는 구조를 갖고 있다"며 "하지만 영리병원은 회사 형태로 자본을 조달하기 때문에 첨단 의료기술에 대한 과감한 투자와 새로운 분야에 대한 연구·개발이 이뤄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영리병원이 보건의료 산업 육성을 통해 국부 창출을 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2009년 발표한 '투자개방형 의료법인 도입 필요성' 연구 결과를 보면 영리병원에 해외환자 30만명이 온다고 가정하면 생산유발 효과가 1조6천923억원∼4조8천818억원, 고용창출 효과는 1만3천152명∼3만7천939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영리병원을 찬성하는 쪽은 "환자 입장에서 의료서비스에 대한 선택권이 확대된다"는 주장도 내세우고 있다. 서울 소재 대학병원 경영진인 한 교수는 "우리 사회에 영리병원 자체에 대한 부정적 편견이 깔려있어 안타깝다"며 "환자 입장에서는 영리병원은 기존에 없는 새로운 선택지로 의료서비스의 다양성 측면에서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 "'뱀파이어 효과'로 영리병원 늘 것…의료 공공성 악화·양극화 심화"
반면 영리병원 도입으로 의료 공공성이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와 비판도 거세다.
녹지국제병원은 제주를 찾는 외국인만을 대상으로 하지만, 이번 허가를 계기로 향후 이익을 추구하는 의료서비스가 확대될 경우 건강보험체계가 무너지고 의료비가 폭등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재헌 무상의료운동본부 사무국장은 "녹지국제병원은 이익을 내려는 병원들 사이에 '뱀파이어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며 "한명이 물리면 순식간에 여러 명에게 전파가 되듯 처음에는 경제자유구역에서, 다음에는 전국 곳곳에서 영리병원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정형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정책국장은 "영리병원은 우리가 가진 보건의료체계 규제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다"며 "의료비를 결정하는 수가와 환자 알선 금지, 의료광고 규제 등 각종 안전장치가 다 무너지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영리병원에서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진료를 받으면 진찰료가 수십만원에서 수백만 원까지 올라갈 수 있다"며 "이런 가격 설정은 시간이 흐르면 어떤 식으로든 국내 의료기관의 의료비를 전반적으로 상승시키는 방향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당장 국내 환자와 무관하더라도 외국인 환자들이 비싼 진료비를 내고 의료서비스를 받으면 향후 국내 의료비 인상을 유발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그러면서 "병원들이 정당한 사유 없이 건강보험을 거절할 수 없도록 하는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도 유명무실화될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만약 영리병원 진료 대상이 국민까지 확대된다면 경제적 수준에 따라 의료 양극화가 심해질 것이라는 우려도 크다.
비싼 치료비를 낼 수 있는 환자들은 영리병원에 가서 첨단 의료서비스를 받지만 가난한 환자들은 이보다 못한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김 사무국장은 "우리나라 의료시스템도 미국처럼 가난한 사람들만 건강보험에 가입하고 부자들은 비싼 민간보험에 가입하는 구조가 될 것"이라며 "건강보험으로 누릴 수 있는 의료의 질은 바닥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 복지부 "정책 방향 유지…의료영리화 없을 것"
정부는 제주도의 이날 녹지국제병원 개원 허가에 따른 보건정책 방향 변화는 없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6월 '조직문화 및 제도개선 이행계획'을 통해 영리병원 등 공공성을 훼손하는 의료영리화 정책은 추진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녹지국제병원 개설과 관련해 2015년 12월 사업계획을 승인했다"며 "이후에는 제주도에서 자체적으로 추진된 사업으로 복지부의 정책 방향과는 관련성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어 "그동안 의료영리화를 추진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혀온 대로 정책이 추진될 것"이라며 "녹지국제병원 설립이 정책 방향에 영향을 미치지도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 녹지국제병원은 '제주특별자치도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이하 제주특별법)에 따라 설립되는 것으로 최종허가 권한은 물론 행정감독권도 제주도에 있다.
보건정책 방향뿐 아니라 녹지국제병원 개원이 당장 국내 의료기관에 미치는 영향 역시 크지 않을 것이라고 보는 이가 많다.
제주도가 녹지국제병원에 대해 '외국인에 한해 의료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조건부 개원 허가를 내리면서 국내 환자는 이용 자체가 불가능하게 됐다.
그동안 국내 병원을 찾았던 외국인 환자 역시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성형수술, 건강검진 등 비급여 진료를 받기 때문에 녹지국제병원에서도 동일한 의료서비스를 받게 된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 박재산 의료서비스개선팀장은 "녹지국제병원 개원이 당장 국내병원에 미치는 영향은 극히 미미할 것"이라며 "외국인 환자 역시 강남의 여러 병원 외에 새로운 선택지가 하나 더 늘어난 것이라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박 팀장은 "다만 제주도 내에서 영리병원과 연계한 의료관광 활성화 등 지역경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사회 전반으로 보면 중장기적인 측면에서 의료산업 육성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aera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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