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서 공개…"내일이 오는 게 두려워…씻지도 먹지도 자지도 못해"
(서울=연합뉴스) 황재하 기자 = 4일 극단적 선택을 한 서울 마포구 아현2 재건축구역 철거민이 유서에 '강제집행으로 쫓겨나 갈 곳이 없다'며 어려움을 호소한 것으로 드러났다.
빈민해방실천연대와 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는 5일 오후 2시 서울 마포구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전날 숨진 철거민 박 모(37) 씨의 유서를 공개했다.
공개된 유서에서 박씨는 "아현동 OOO-OO호에 월세로 어머니와 살고 있었는데 3번의 강제집행으로 모두 뺏기고 쫓겨나 이 가방 하나가 전부"라며 "추운 겨울에 씻지도 먹지도 자지도 못하며 갈 곳도 없다"고 밝혔다.
이어 "3일간 추운 겨울을 길에서 보냈고 내일이 오는 것이 두려워 자살을 선택한다"고 설명했다.
박씨는 또 "어머니가 갈 곳 없이 전국철거민연합회와 투쟁 중이라 걱정"이라며 "저는 이렇게 가더라도 어머니께는 임대 아파트를 드려서 저와 같이 되지 않게 해 달라"고 호소했다.
그는 "하루가 다르게 야위며 주름이 느는 어머니를 보며 마음이 아팠다"며 "어머니께 힘이 돼 드려야 했는데 항상 짐이 돼 부끄럽고 죄송하다"고 썼다.
박씨의 어머니는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해 "다른 것은 필요 없고 내 아들만 살려주면 된다. 내 전부인 아들을 잃었는데 임대 아파트가 필요하겠나"라고 말했다.
빈민해방실천연대 등은 박씨의 죽음을 '사회적 타살'로 규정했다.
이들은 "박씨는 '용역 깡패'가 동원된 폭력적인 강제집행으로 거주지를 잃었다"며 "재건축 사업 관리·감독 책임이 있는 마포구청이 책임을 규명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기자회견에는 경찰 추산 100명 가량이 모였고, 민중당 최나영 공동대표도 참석했다.
서울 마포경찰서에 따르면 박씨는 전날 오전 양화대교와 성산대교 사이 한강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마포구 망원유수지에서 전날 오전 11시께 박씨의 옷과 유서가 발견된 점에 비춰 처지를 비관한 박씨가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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