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시론] 헌법 예산 시한 무력화하고 끝까지 파행한 입법부

입력 2018-12-06 17:00  

[연합시론] 헌법 예산 시한 무력화하고 끝까지 파행한 입법부

(서울=연합뉴스) 정기국회 마지막 본회의를 하루 앞두고 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이 6일 내년도 예산안에 잠정 합의했다. 7일 본회의에서 예산안이 가까스로 처리될 공산은 커졌다. 하지만 바른미래당, 평화당, 정의당은 예산안 처리의 전제조건으로 내건 선거제 개혁이 양당 합의에 빠지자 "기득권 양당의 기득권 동맹"이라며 반발했다. 예산안이 처리되더라도 일부 야당이 본회의에 불참하는 사태까지 빚어지는 파행이 끝까지 이어질 수도 있다.

올해 예산안 처리 과정은 국회에 불명예를 안길 것이다. 여야 협상의 진통으로 당초 '윤창호법'으로 불리는 도로교통법 개정안 등 200여건의 법안을 처리하기로 예정됐던 6일 본회의도 취소됐다. 예산안 법정 처리시한(12월 2일)을 넘긴 지 오래인 데다 2014년 국회 선진화법 시행 이후 가장 늦은 예산안 처리라는 오명을 남길 판이다. 법을 어기는 것을 무신경하게 여기는 입법부의 악습이 언제 사라질지 개탄스럽다.

헌법 제54조 2항은 "정부는 회계연도마다 예산안을 편성하여 회계연도 개시 90일 전까지 국회에 제출하고, 국회는 회계연도 개시 30일 전까지 이를 의결하여야 한다"고 적시하고 있다. 즉 12월 2일까지 이듬해 예산안을 의결하도록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입법부가 헌법 규정을 어기는 나쁜 관행은 1988년 여소야대 국회부터 되풀이됐다. 13대 국회부터 예산 처리시한 파기는 예삿일이 됐다. 심지어 새해 예산안이 새해 들어 1월 1일에 처리되는 일도 있었다.

예산 수난사가 그나마 멈춘 것은 '국회 선진화법'이라 불리는 개정 국회법이 만들어진 2014년부터이다. 개정 국회법 85조가 예산안과 세입예산 부수 법안에 대한 심사를 11월 30일까지 마치지 못하면 본회의에 자동부의 되도록 규정한 영향이 컸다. 이에 따라 2014년 12월 2일 예산안이 처리됐고, 2015년, 2016년에는 12월 3일 새벽 처리됐지만 그나마 시한을 염두에 두는 모습이 보이다 지난해는 시한을 나흘 넘긴 12월 6일 처리됐다. 이번에 양대 정당의 막판 합의로 7일 본회의에서 예산안이 처리되더라도 선진화법 시행 이후 '지각 처리 신기록'을 세우게 된다. 헌법은 물론이고 자신들이 만든 국회법의 예산심의 규율까지 스스로 어기는 것은 심각한 도덕적 해이다.

과거 해마다 예산처리가 늦어지고 심지어 준예산 편성까지 거론될 경우 경제와 사회의 불확실성만 커지는 부담을 안아야 했다. 새해 예산이 짜임새 있게 계획적으로 집행될 수 있으려면 정부 살림살이 규모가 시한 내 확정돼야 한다. 예산안 지각 처리는 이번 정기국회서 되풀이된 파행으로 일찍이 예고됐다. 고용세습 의혹 국정조사를 둘러싼 대치로 예결위 예산 소위 구성이 한참 지체됐고, 막판에는 선거제 개혁과 예산안 처리 문제가 연계되면서 또 난항을 겪어 또 심사가 지연됐다.

나라 살림살이 문제가 다른 정치적 사안과 엮이며 심사가 지체되고 시간에 쫓기면서 예산안의 '졸속심사', '밀실심사'라는 또 다른 폐해가 동반될 수밖에 없다. 올해도 투명성이 결여된 비공식 '예산 소소위' 구성을 토대로 한 깜깜이 심사가 이어졌고, 주요 쟁점 예산은 기록이 남지 않는 원내대표 간 정치적 담판으로 조정됐다. 국회의 가장 큰 책무인 예산심의가 충분한 기간을 보장받지 못한 채, 졸속처리되는 일은 없어져야 한다. 국민 살림살이인 예산안 심의와 처리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 선진정치로 가는 길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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