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1970년 설치 의무화…식별 쉽게 빨간색 역삼각형 표시
(청주=연합뉴스) 이승민 기자 = 지난해 12월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참사 때 희생자가 가장 많이 나온 곳은 건물 2층 여성 사우나였다.
당시 여성 사우나는 비상구가 각종 물품으로 막혀있었고, 창문은 두께 2㎝ 통유리로 돼 있었다.
희생자들은 화재 직후 이 유리를 깨고 탈출하려 했지만, 맨손으로 2중 통유리를 깨기엔 역부족이었다.
유족들은 소방관들이 통유리를 서둘러 깨고 안으로 진입했다면 20명이나 되는 희생자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라정일 전 일본 돗토리국립대 사회기반공학전공 조교수는 지난 7일 충북대에서 열린 '제천 화재 참사 1주기 국제 학술 세미나'에 참석해 참사 1년 후에도 여전히 개선되지 않은 한국의 안전 문제들을 지적했다.
라 전 조교수에 따르면 일본은 호텔, 여관 등 대형 건물 화재가 잇따르자 1970년 건축법을 개정해 건물에 '탈출용 유리'를 의무적으로 설치했다.
창문을 여닫을 수 없는 통유리 건물에는 '탈출용 유리'를 설치하고, 누구나 식별하기 쉽게 빨간색 역삼각형으로 표시한다. 이 유리는 깨기 쉬운 재질로 만들었다.
화재가 발생하면 소방대는 이 유리를 깨고 진입해 구조 활동을 벌이고, 건물 내부 사람들도 이 유리를 부수고 탈출할 수 있다.
일본 거리를 걷다 보면 건물 유리창에 그려진 빨간색 역삼각형을 쉽게 볼 수 있다고 조 전 조교수는 설명했다.
일본 정부는 1974년에는 소방용 설비 설치 기준을 기존에 있던 건물에도 소급 적용해 안전 기준을 강화했다.
소방당국은 소방 설비 미흡 등 관련법 위반 사항을 확인하면 정기적으로 확인하면서 개선될 때까지 추적 지도한다.
제천 화재 참사 당시 통유리로 된 다중이용시설에 대한 안전 문제점이 지적됐지만, 1년이 지난 후에도 개선 대책이 나오지 않고 있다.
화재 예방, 소방시설 설치ㆍ유지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연면적 600㎡ 이상 건물에는 비상구나 완강기 등 피난 구조설비를 갖춰야 한다.
하지만, 화재 발생 시 소방관이 사다리차를 이용해 즉시 유리를 깨고 진입할 수 있는 '탈출용 유리'를 만들어야 한다는 규정은 없다.
참사가 난 지 1년이 지났지만, 제천 스포츠센터 건물처럼 통유리로 된 건물에서 불이 나면 인명피해가 반복해 일어날 수 있는 셈이다.
이영주 서울시립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도 일부 대형 건물에 긴급 상황 시 대피할 수 있는 탈출용 유리를 적용하고 있지만, 법적 의무는 없다"며 "통유리 사용 건물에 대한 안전조치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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