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천500만원 투자해 가게 열었는데 1년여 만에 "나가라"
법원 '묵시적 의사 표현' 인정…"임차권 갱신 요구 명확히 전달해야"
(서울=연합뉴스) 박초롱 기자 = 가게를 빌려 운영하는 임차인이 임대차계약을 갱신할 의사를 명시적으로 표시하지 않았더라도 1년 치 임대료를 한꺼번에 내는 등의 묵시적 갱신 의사 표현이 있었다면 임차권을 보호받을 수 있다는 판결이 나왔다.
9일 대한법률구조공단에 따르면 A씨는 2015년 9월부터 제주시에 있는 2층 건물에 6평짜리 점포를 얻어 떡볶이 가게를 운영했다.
가게를 여는 데는 권리금 1천150만원, 떡볶이 사업 기술 전수금 500만원, 가게 인테리어비용 700만원 등 2천500만원이 들었다. 그런데 개업 후 불과 1년 3개월이 지난 2016년 12월께 A씨는 건물주에게 문자 한 통을 받았다.
"귀하가 임차한 건물은 노후로 심각한 위험에 노출돼 있습니다.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제10조에서는 건물이 노후·훼손 또는 일부 멸실되는 등 안전사고의 우려가 있는 경우 임대차계약 갱신을 거절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기에 더이상 귀하와 임대차계약을 갱신하는 것을 거절합니다."
지은 지 50년이 지난 건물이라 비가 많이 오면 물이 새기도 했지만 이미 투입된 비용이 큰 터라 1년 만에 장사를 접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건물주는 임대차계약 기간 만료 1개월 전까지 A씨가 갱신을 요구하지 않았으며, 설령 요구했다 해도 건물 재건축이 필요하기 때문에 가게를 비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은 임대인이 계약 갱신을 거절하더라도 임차인이 계약 만료 1개월 전까지 갱신 요구를 하면 임차권을 5년간 보장받을 수 있도록 했다. 법 개정으로 올해 10월 이후 새로 체결되는 상가임대차 계약의 경우 10년 임차권을 보장받는다.
단, 건물 노후·훼손 등으로 안전사고 우려가 있어 철거·재건축하려 할 때는 임차인의 계약 갱신 요구를 거절할 수 있다.
A씨는 '안전사고 우려가 있다는 전문기관 의견을 제시해달라'고 요구하며 영업을 이어갔다. 이에 건물주는 명도소송(소유자 외의 사람이 부동산을 점유하고 있는 경우 넘겨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1심은 "피고(A씨)가 명시적으로 갱신을 요구한다는 의사를 표명하지 않았더라도 묵시적으로는 임대차계약을 계속 유지하고자 하는 의사를 표시했다고 볼 수 있다"며 A씨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A씨가 점포를 개업하기 위해 권리금과 인테리어 비용 등으로 큰돈을 지출했던 점, 원고(건물주)에게 다음 해(2017년) 연간 임대료 전액을 지급한 점 등에 비춰 묵시적 갱신 의사가 있었다고 봤다.
또, 건물 안전 문제에 대해선 건물주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안전사고 우려가 있다는 점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지난 10월 있었던 2심에서도 건물주의 항소는 기각됐다.
A씨 소송을 도운 법률구조공단 제주지부의 양성순 공익법무관은 "상가임차권은 5년(개정 상가임대차보호법은 10년)을 보장받을 수 있지만, 갱신 거절 통지나 갱신 요구가 불명확한 경우가 많다"며 "A씨가 갱신 요구 통지를 내용증명 우편 등의 형식으로 임대인에게 전달했다면 소송까지 갈 여지가 상당히 줄어들 수 있었다"고 말했다.
chopar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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