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아이 악소이 ICOM 회장 "대고려전, 남북 교류 측면서 의미"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박물관은 사회문제를 직접 해결하지 못합니다. 정치적(political)인 공간이 돼서도 안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박물관이 중립적(neutral)인 곳은 아닙니다. 박물관이 전시로 주는 메시지는 누군가의 삶을 고무할 수 있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특별전 '대고려 918·2018 그 찬란한 도전'을 기념해 마련한 심포지엄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한 수아이 악소이(Suay Aksoy) 국제박물관협의회(ICOM) 회장은 지난 4일 연합뉴스 기자와 만나 박물관의 역할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유네스코 협력기관인 아이콤은 박물관 교류를 통해 국제 협력을 촉진하고, 박물관 관련 정보를 공유하는 국제기구다.
터키 출신인 악소이 회장은 정치과학을 공부해 석사학위를 받고, 박물관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획득했다. 2016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3년 임기 회장에 선출됐다.
악소이 회장의 한국 방문은 이번이 세 번째. 그는 국립중앙박물관이 "놀랍고 좋다"면서 "중국이나 일본과 비교하면 한국 박물관 직원들은 개방적"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박물관의 중요성을 논하면서 유럽 난민 문제를 거론했다. 박물관이 난민을 주제로 특별전을 열면 자연스럽게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논의의 장이 형성된다고 설명했다.
악소이 회장은 "박물관은 주민들이 신뢰하는 기관으로서, 지속가능한 발전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며 "박물관이 인권과 환경에 대해 더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역설했다.
아시아와 유럽에 걸친 터키에서 아시아 대륙 동쪽 끝에 위치한 한국에 오려면 비행기를 10시간 정도 타야 한다.
악소이 회장에게 대고려전에 대한 감상평을 말해 달라고 부탁하자 "고려를 잘 알지 못한다"면서도 "고려는 다른 나라에 영감을 준 창조적이고 지혜로운 나라였던 것 같다"고 밝혔다.
그는 "유물을 보면 고려는 예술과 공예가 발달하고 문화가 융성한 나라임을 알 수 있다"며 "고려가 1천100년 전에 건국했는데, 우리는 1천100년 뒤에 후손들에게 어떠한 유산을 남겨줄지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대고려전에 나온 유물 450여 점 가운데 악소이 회장이 꼽은 인상적인 문화재는 청자 학무늬 매병과 고려시대 사회상을 보여주는 회화.
그는 북한 왕건상이 올 자리에 둔 연꽃 설치미술 작품에 대해서도 높이 평가했다. 박물관은 사제 간인 희랑대사와 왕건의 만남을 기원하며 해인사 소장 건칠희랑대사좌상(보물 제999호) 옆에 다른 유물을 진열하지 않았다.
악소이 회장은 "시각적으로 충격을 주고 시선을 끄는 전시 기법"이라며 "남북통일에 대해 떠올려보는 계기가 됐다"고 강조했다.
그는 왕건상을 비롯한 북한 고려 유물이 특별전 종료 전에 오기를 고대한다고 말한 뒤 "유물이 서울에 오지 않더라도 학예사들이 교류를 시작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주장했다.
아이콤은 1990년대에 내전을 겪은 발칸 반도 국가들이 제3국에서 전시를 개최하는 데 도움을 준 적이 있다.
악소이 회장은 당시 상황을 회고하면서 "협의회에 있는 학예사와 문서 전문가, 보존과학자가 남북 교류전을 지원할 수 있다"는 의견을 내비쳤다.
평소 여성 문제에 관심이 큰 악소이 회장은 "세상의 절반은 여성이고, 박물관은 여성 이야기를 더 많이 해야 한다"며 "박물관은 여성은 물론 민족, 종교에서 다양성이란 가치를 지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남성에게도 어머니와 부인, 딸이 있잖아요. 평화를 원한다면 여성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특히 한국에서는 북한에 가족을 둔 여성들이 통일에 기여할 수 있다고 봅니다."
psh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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