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클린턴과 같은 인화력, 옛친구도 없어
(서울=연합뉴스) 유영준 기자 = "백악관 비서실장은 무척 힘든 자리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의 경우에는 사정이 다르다. 그는 조지 H.W. 부시나 빌 클린턴과 같은 이전 대통령들이 가졌던 '레버리지'(방편)가 없다".
존 켈리 백악관 비서실장 사임에 따른 후임자 인선이 예상 후보자들의 잇따른 고사로 예상 밖 난항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켈리 실장의 사임설이 나돌면서 수개월 전부터 후임자로 유력하게 거론돼온 닉 에이어스 마이크 펜스 부통령 비서실장이 실장 제의를 고사함으로써 차질을 빚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0일 시사지 애틀랜틱에 따르면 에이어스의 고사는 트럼프 대통령이나 백악관 직원들에게는 다소 충격으로 받아들여 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비서실장을 고르는 데 애를 먹고 있는 것은 우선 비서실장직이 '끔찍한' 직책이기 때문이라고 애틀랜틱은 지적했다.
켈리 현 실장을 예로 들면서 해병 4성 장군 출신인 켈리 실장이 취임 후 백악관의 혼란을 가까스로 수습했으나 트럼프 대통령과는 현재 아주 불편한 관계이며 개인적으로도 그의 명성에도 많은 오점을 남긴 상태라고 지적했다.
또 새로 비서실장을 맡는 사람은 '심각한 법적 위험성과 자칫 패배로 끝날 수 있는 재선 운동에 직면한, 통제되지 않는 상관'을 상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애틀랜틱은 그러나 이러한 상황은 트럼프 대통령만의 독특한 상황이 아니며 재선 운동을 앞두고 법적 문제에 직면했던 대통령들의 경우도 적지 않다고 언급했다.
근래 가장 성공적이고 유능한 백악관 비서실장으로는 레이건-조지 H.W. 부시 행정부에서 두 차례 비서실장을 지낸 제임스 베이커 3세와 빌 클린턴 행정부 비서실장을 지낸 리언 패네타가 꼽힌다.
두 사람 모두 공통점은 당초 비서실장 제의를 탐탁지 않게 생각해 고사 의사를 밝혔으나 당시 대통령이 적극 설득에 나서 영입에 성공했던 점이다.
베이커 실장은 레이건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후 이어진 부시 행정부에서 국무장관을 지냈으나 부시 대통령이 재선 가도에서 빌 클린턴 아칸소 지사의 강력한 도전에 직면하면서 비서실장을 맡아주도록 설득했다.
베이커 장관은 대통령을 직접 보좌하는 외에 재선 운동까지 관장해야 했던 만큼 실장직을 고사했으나 부시 대통령의 강력한 설득과 주위의 권유로 결국 실장을 수락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당시 부시 대통령이 '그의 팔을 비틀어' 강제로 들여앉혔으며 주변의 옛 친구들이 이를 적극적으로 거들었다고 애틀랜틱은 전했다.
1992년 부시 대통령을 누르고 승리한 빌 클린턴 대통령은 2년 후 곤경에 처했다. 그의 간판 정책이던 건강보험 개혁정책이 좌초하고 각종 스캔들과 사법 조사가 진행되면서 백악관 웨스트윙은 '지금의 트럼프 백악관을 방불케 하는' 전례 없는 혼란에 빠졌다.
클린턴 대통령은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당시 백악관 예산국장이던 리언 패네타를 비서실장으로 발탁하려 했으나 백악관 내부 권력 투쟁에 휘말리길 싫어했던 패네타가 고사했다.
클린턴 대통령은 그를 캠프데이비드 별장으로 그를 불러 실장직을 설득했다. "당신이 탁월한 예산국장인 줄 알지만, 백악관이 무너지면 아무도 당신을 기억하지 못할 것"이라고 그를 설득했다.
클린턴은 패네타 실장 기용 후 내부 혼란을 극복하고 2년 후 재선에 성공했으며 패네타는 이후 백악관을 떠나 중앙정보국(CIA) 국장과 국방장관을 지내는 성공적인 경력을 거쳤다. 시기적으로 운 좋게 클린턴 탄핵도 모면했다.
애틀랜틱은 부시나 클린턴 전 대통령과는 다른 트럼프의 문제점으로 '옛 친구들'이 없다는 점을 들었다. 베이커와 같은, 힘든 순간에 자신을 기꺼이 도와줄 친구가 트럼프에게는 없다는 점이다.
베이커 실장은 실장직 제의가 탐탁지 않았지만, 과거 자신의 첫 부인이 암으로 사망했을 때 부시 대통령이 보내준 따뜻한 위로를 잊을 수 없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트럼프는 수많은 친구가 있다고 자랑했지만 정작 필요한 순간 이른바 친한 친구들은 모두 자리를 고사했다. 사업가 절친인 톰 배럭은 실장 제의를 거절했고 개인 변호사이던 마이클 코언은 현재 사법 조사를 받으면서 그에게 등을 돌린 상태다.
또 트럼프 대통령은 이제 '소명의식'을 동기로 앞세워 후임자를 물색하기도 힘든 상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행정부 초기 비교적 소명의식에 충실한 전·현직 군 장성을 대상으로 상당수 행정부 요인들을 발탁했다.
그러나 켈리 실장과 H.R.맥매스터 등이 백악관 직책을 거치면서 명성에 오점을 남기고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이 군내에서 따돌림당하는 상황을 지켜본 많은 전·현직 장성들은 이제 트럼프 행정부를 극력 기피하는 상황이라고 애틀랜틱은 지적했다.
민간인 후보인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의 경우 정치적 초짜로 소명의식이 아니라 단순한 개인적 야심을 위해 워싱턴에 진출한 케이스이며, 멀베이니 예산국장이나 마크 메도스 하원의원(노스캐롤라이나)은 행정부의 효율적인 기능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정치적 이념을 추진하기 위해 정치에 입문한 케이스라고 애틀랜틱은 지적했다.
또 재선에 성공하면 대부분 그동안 내부에서 키워온 인물들을 실장에 기용하는 것이 흔하며 오바마 2기의 람 이매뉴얼 실장을 예로 들면서 그러나 트럼프 주위에는 이러한 내부 발탁 가능 인사들이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애틀랜틱은 앞서 법무장관 대행으로 지명한 맷 휘터커 같은 의외의 '함량 미달' 인물이나 뉴욕과의 연고를 강조하기 위해 랜디 레바인 메이저리그 뉴욕 양키스 사장과 같은 인물이 등장할 가능성도 예견하면서, 트럼프 자신이 무엇보다 강력한 실장을 원치 않기 때문에 베이커나 패네타 같은 인사가 등장할 가능성은 전무하다고 덧붙였다.
yj378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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